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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재혁 Apr 30. 2019

층간 소음 가해자 가족의 변명

피해자 가족께 드리는 서한 첨부

 결혼 후에 아이가 두 돌을 넘길 때까지 살았던 아파트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같은 동네에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사한 지 2일째 되던 날부터 우리 집 인터폰이 수시로 울려댔다.

 발신자는 주로 우리 아랫집 바깥주인 또는 안주인이었고, 때론 그 집으로부터 민원을 받은 경비실에서 걸려오기도 했다.


 “너무 쿵쿵거리네요.”


 주로 층간 소음에 대한 항의였다.


 “죄송합니다!”


 처음엔 인터폰이 걸려오는 족족, 우리는 일말의 변명도 없이 ‘죄송합니다’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 나름대로는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인터폰에 일일이 응답하는 일은 정말이지 고역이었다.

 어쨌든 우리가 원인을 제공하는 가해자의 처지라 묵묵히 참고 응대할 수밖에 없었지만, 여덟 시도 안 된 초저녁이나 휴일 낮까지 인터폰을 해대니 ‘이건 좀 심하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가 또 뛰네요!”


 이러다 또 인터폰 오겠다 싶은 직감이 들면 어김없이 바로 치고 들어오는 피드백을 받거나,


 “방금 의자 끄셨죠?”

 “밤에는 안방 화장실에서 샤워 안 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이런 소리까지 들을라치면, 우리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받고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우리 부부는 한동안, 마치 빅 브라더의 감시망 안에서 살아가는 초거대국 주민들처럼 초긴장 상태가 되어 ‘뛰지 마!’, ‘살살 걸어!’, ‘안 돼!’와 같은 부정형 명령어를 입에 달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밤 10시 이후에는 안방 욕실을 이용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아무리 조심시킨다고 해도, 에너지 넘치는 학령 전기의 인간을 완벽하게 통제하기란 불가능했다.

 딴에는 조심한다고 하는 데도 시시때때로 항의 인터폰을 받다 보니 우린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뻔뻔함으로 멘탈 방어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아랫집은 아랫집대로 포기 상태가 되었는지 인터폰 오는 횟수는 점차 줄어갔다.

 그러다 결국 아래층 가족과 우리는, 어쩌다 엘리베이터에서 부딪혀도 의례적인 묵례 후엔 서로 딴 곳만 쳐다보는 데면데면한 이웃이 되고 말았다.




 통계청에서 2017년에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 결과에 따르면, 아파트가 1,038만 호로 전체의 60.6%를 차지한다. 여기에 연립과 다세대주택(15.0%)까지 포함하면, 전체 가구의 75.6%가 공동주택에서 거주하는 셈이다. 그만큼 많은 비율의 가구가 층간 소음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한국의 아파트들은 대부분, 기둥 없이 천장을 받치는 형태인 벽식 구조여서 소음에 취약하다고 한다.


 피해자나 가해자나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 살인까지 불러오기도 하는 층간 소음 문제, 뭐 좋은 수가 없을까?


 물론 일차적으로는 층간 소음을 유발하는 가해자 쪽에서 소리가 덜 나도록 주의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주의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우리에게 공중 부양 능력이 생기지 않는 이상,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생활 소음을 완전히 안 나게 하는 방법은 없다.

 더구나 아무리 조심시키고 야단을 쳐도 그때그때 뿐인 철부지 아이들을 완벽하게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윗집이 아랫집을 배려해, 소음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아랫집도 윗집의 불가항력적 사정을 좀 일아 달라고 하는 건 무리한 부탁일까?

 공동주택은 여러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곳인 만큼, 천방지축 세 살배기 이웃의 통제 불가한 생태학적 특성을 조금만 너그럽게 이해하고 받아줄 수는 없을까?




 아랫집 가족께 바치는 글


 먼저 저희로 인해 불편과 고통을 안겨드린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이런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저희 나름대로는 소음을 줄이려고 노력해왔던 점은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만 2~3세 무렵의 유아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일은 강아지에게 말을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힘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은 대학생인 댁의 따님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지 않았습니까?

 네? 따님은 얌전한 아이였다고요?

 아무리 얌전한 아이라고 해도 통제가 어려운 순간이 전혀 없진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거실에 매트를 깔아놓긴 했지만, 아이가 꼭 매트 안 깔린 곳에서만 뛰네요. 그렇다고 온 집안 바닥에 다 매트를 깔아놓을 순 없지 않을까요?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를 아파트 마당이나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싶지만, 미세먼지가 나쁨일 때가 많다 보니 바깥 놀이를 할 수 있는 날은 제한적입니다.

 주말에는 어떻게든 집 밖으로 나가 보려고 하지만, 이 도시에서 아이를 데리고 갈만한 곳은 정말 뻔하더라고요. 주말마다 우리 가족은 백화점, 쇼핑몰, 박물관 등지를 돌려막기 식으로 떠돌고 있답니다. 날씨 좋을 땐 동물원이나 놀이공원도 가긴 하지만, 자주 가긴 쉽지 않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희 윗집도 아이가 둘이라 쿵쿵거리는 소리가 자주 들려오곤 한답니다. 하지만 같이 아이 키우는 처지라 저희는 그냥 그러려니 한답니다. 그렇다고 꼭 아랫집에서도 그렇게 여겨 달라는 뜻은 아니고요.


 그래도 요즘은 좀 나아지지 않았나요? 아이가 쿵쿵거리며 걷거나 뛰다가도 ‘아랫집 아저씨 또 올라오신다!’라고 말하면, 즉각 알아듣고 멈추곤 한답니다. 아이에게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습관이 생길 정도라니까요?


 아무튼, 앞으로 더욱 주의하며 살겠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어쩔 수 없는 소음이 발생할 수는 있을 테니, 혹여 쿵쿵거리는 소리가 나더러도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세요.

 참기 힘든 소음이 좀 길어지는 것 같으면, 그땐 인터폰을 주세요. 지적해주시는 즉시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간 폐 끼친 것을 사과하고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로, 조만간 제철 과일 한 상자라도 사서 문 앞에 가져다 놓을게요. 썩 달갑지 않으시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세요!


 저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여, 최대한 폐 덜 끼치는 이웃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귀댁의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깃들길 기원합니다.


                                        - 윗집 올림 -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290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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