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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재혁 May 12. 2019

누군 뭐, 프랑스 육아 몰라서 못 하나?

육아를 둘러싼 가치 충돌과 그 해법

 2010년대 초중반, 프랑스 육아 붐이 일었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관심의 열기가 다소 사그라들긴 했지만, 요즘도 서점에 가보면 프랑스 육아법과 관련된 책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세계 럭셔리 브랜드 서열에서 에르메스, 샤넬, 루이뷔통 등의 프랑스 업체들이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프랑스 육아’도 육아계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프랑스 육아’라고 쳐봤더니, 이렇게 다양한 책들이 검색되었다.


「프랑스 아이처럼 (아이, 엄마, 가족이 모두 행복한 프랑스식 육아) / 파멜라 드러커맨 저」

「프랑스 육아법 (파멜러 드러커맨 프랑스 아이처럼의 실전편) / 파멜라 드러커맨 저」

「(프랑스 육아의 최고 권위자 안느 바커스가 밝히는) 프랑스 육아의 비밀 / 안느 바커스 저」

「프랑스 엄마 수업 (안느 바커스의, 소리 지르지 않고 때리지 않고 말 잘 듣게 하는 100가지 방법) / 안느 바커스 저」

「아이를 낳아도 행복한 프랑스 육아 (유럽 출산율 1위, 프랑스에서 답을 찾다) / 안니카 외레스 저」

「프랑스 뽀아뽀 육아법 (아이는 엄마의 살냄새를 맡으며 큰다) / 최은주 저」

「프랑스 부모는 아이에게 철학을 선물한다 / 나카지마 사오리 저」

「프랑스 아이는 편식하지 않는다 (프랑스 육아법의 핵심) / 캐런 르 비용 저」

「프랑스 아이는 말보다 그림을 먼저 배운다 (생각하는 아이를 만드는 프랑스 교육의 비밀) / 신유미, 사도니 벤칙 저」

「프랑스 영재 교육법 (지능이 뛰어난 아이를 잘 키우는 100가지 아이디어) / 올리비에 르볼, 로베르타 풀랭 외 1명 저」

「프랑스 엄마처럼 (일등이 아니어도 행복한 프랑스식 긍정 교육법) / 안느 바커스 저」

「프랑스 엄마의 행복수업 (삶의 가치와 감동을 가르치는 프랑스식 자녀교육법) / 다카하타 유키 저」

「프랑스 부모들은 권위적으로 양육한다 (맞벌이 부모들을 위한 맞춤형 양육법) / 프레데릭 코크만 저」

「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 / 캐서린 크로퍼드 저」

「프랑스 엄마처럼 똑똑하게 야단쳐라 / 안느 바커스 저」


 이 중에서도 프랑스 육아 붐의 시초가 된 책은 바로,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세 아이의 엄마인 파멜라 드러커맨이 쓴 「프랑스 아이처럼」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은 출산을 준비하는 예비 엄마나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서 여전히 필독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고….


 육아 지침서를 표방하면서도 백과사전식 안내서가 아니라 에세이 형식으로 된 「프랑스 아이처럼」은, 구체적인 방법론보다는 육아에 대한 철학을 정립하는 데 도움되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미국 중산층의 육아법에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던 미국 엄마의 시각으로 바라본 프랑스 육아 이야기는, 뉴욕 맘들 못지않게 경쟁적인 속도전 육아를 펼치느라 고단한 한국 맘들에게도 생각의 각도를 조금 바꾸는 계기를 마련해주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을 통해 계몽된 육아 철학을 갖고 보니, 우리 애도 프랑스 아이처럼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

 그런데 막상 이 책에 나오는 프랑스식 육아법을 현실에 적용하기란 마음처럼 쉽지 않다.


 이 책이 제시하는 육아 방법론 중 가장 핵심이 되는 키워드는 ‘attend(아탕)’과 ‘non(농)’이다.

attend 아탕 : 기다려. 멈춰. 프랑스 부모들이 아이에게 하는 명령어. 아이가 즉각적인 욕구 충족을 요구하지 않으며 혼자서 잘 놀 수 있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non 농 : 안 돼. 절대로 안 돼.

 물론 이 두 용어는 모두, 아이 키우다 보면 수시로 입에 담게 되는 말이긴 하다.

 한데 이 책은, 아이에게 ‘기다려!’ 또는 ‘안 돼!’라고 외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할 당위성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네 현실은 책 내용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게 함정이다.


[장면 #1] 수유할 시간이 안 되었는데도 배고프다고 우는 아기를, ‘기다려!’ 하며 그냥 울도록 내버려 둔다면?

- 남편 : (자다 깨서 짜증 내는 목소리로) 애 안 달래고 뭐 해? 얼른 좀 가 봐!
- (사사건건 간섭하며 육아 체계를 뒤흔들려하는) 시어머니 : 넌 왜 애를 울리고 그러니? 애, 그렇게 오래 울리는 거 아니다!

 아이에게 기다리는 법을 알게 하고 싶은 엄마는 규칙적인 시간에 수유하고 싶지만, 다른 가족들, 특히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협조를 안 해주면 실행하기 쉽지 않다.

 사실 요즘의 젊은 아빠들은 대체로 아내 말을 잘 듣는 편이라 별문제 없을지도 모르지만, 시어른의 간섭은 같이 살든 따로 살든 갈등 요인이 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진료실에서, 시어머니와의 의견 차이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엄마들의 토로를 자주 듣곤 한다.


[장면 #2] 옥토넛 옥토포드 상어 플레이 세트 사달라고 백화점 장난감 매장 바닥에 주저앉아 떼쓰는 아이에게, 며칠 전에 대형 탐험선 세트를 샀으니 오늘 또 사는 건 안 된다고 말하며 외면한다면?   

- 점원을 비롯하여 매장 내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

 아이가 떼쓰건 말건 안 되는 건 절대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지만, 녀석이 사람 많은 공공장소에서 난리 치면 어쩔 도리가 없다.


[장면 #3] 밥 먹을 땐 절대 스마트폰 안 보여준다는 규칙을 세워 놓았는데, 조용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에서 아이가 유튜브로 콩순이 보여달라며 큰소리로 조른다면?


-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눈에서 발사된 레이저 광선이 우리 부부의 뒤통수에 날아와 꽂힌다.

 일단 한번 정한 규칙은 일체의 타협 없이 일관성 있게 밀어붙이고 싶은데,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게 되는 상황에선 어쩔 수 없이 규칙을 어기게 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최선의 양육에 대한 사회적 큰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는 프랑스와는 달리 중구난방의 육아 지론이 혼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 아이에게 ‘아탕’과 ‘농’을 외치기 위해선, 육아를 둘러싼 다양한 가치관의 충돌과 맞닥뜨려야 한다. 앞서 나열한 장면들이 바로 그 실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 충돌은 비단 서로 다른 가치체계의 상충으로 인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 안의 내부적 갈등에 의해서도 생겨날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걱정 말이다.


 ‘프랑스 육아법에 따라 우리 아이에게 참고 기다리는 법만 가르쳤다가, 남을 배려한 나머지 자기 것마저 빼앗긴 채 살벌한 경쟁에서 뒤처지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무조건 안 된다고 윽박지르며 기를 죽여 놓으면, 우리 아이가 어디 가서 주눅 든 채 눈치만 보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우리 아이들은, 전반적으로 여유롭고 느긋한 프랑스 사회가 아닌, 일각을 다투며 분주하게 돌아가는 살벌한 경쟁사회인 한국에서 살아가야 하는 만큼, 이런 걱정이 드는 게 당연하다.

 괜히 기다리는 법과 남을 생각하는 마음만 가르쳤다가 우리 아이만 경쟁에서 도태되는 게 아닌지 불안하고, 우리나라에선 인내심과 배려심보다는 오히려, 자기 걸 잘 챙기고 남보다 좀 더 빨리 더 많이 쟁취하며 사는 법을 알려줘야 하는 게 아닌지 혼란스럽다는 말이다.




 아이·엄마·가족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프랑스 육아가 좋다는 건 충분히 잘 알겠는데,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론을 고수하기 위해선 싸우고 극복해야 할 장애 요소가 너무 많다.

 앞서 언급한 몇 가지 내·외부적 가치 충돌만으로도 실행 의지가 쉽게 꺾여버리고 마는 게 현실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육아를 둘러싼 가치 충돌을 해소하고, 내가 우리 아이에게 적용하고 싶은 육아 원칙을 지켜나갈 방법은 없을까?




 해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보는 거다!


 좀 더 그럴싸한 워딩으로 바꿔보면, 프랑스 육아 이론과 우리네 현실 사이의 절충점을 찾아가 보자는 거다.


 프랑스 부모들이 자기들만의 육아법을 무리 없이 고수할 수 있는 건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적 여건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육아에 관해 일관된 생각을 갖는 사회적 합의가 이미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힘으로 당장 우리나라를 프랑스처럼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로 만들긴 어렵고, 육아에 대한 한국인들의 가치관을 통일시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바로 그런 이유로 절충이 필요한 거다.

 즉, 프랑스 육아의 방법론을 너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우리의 실정에 맞는 한국식 재해석을 통한 토착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장면 #1에 대한 해법]

 한껏 무게 잡고 야단 좀 치려는데 좀처럼 협조 안 해주는 남편이 얄밉고, 혹은 일관성 있게 훈육하고 싶은데 할머니·할아버지가 나타나시면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리는 것 때문에 속상하더라도, 너무 스트레스받지는 마시라고 말하고 싶다.

 가족 모두가 일관성 있는 양육 태도를 보이는 게 좋다고 주장하는 육아 전문가들이 많지만, 나는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집안 어른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엄하게 훈육하는 것이 아이의 정서에 결코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훈육 담당은 한 집에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엄마일 수도 있고, 아빠일 수도 있고, 혹은 할머니가 될 수도 있다. 될 수 있으면,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제1 양육자가 훈육 담당을 맞는 게 가장 유리하지 않나 싶다.

 우리 집에서 훈육은 아이 엄마 담당이다. 아빠는 딸애에게 만만한 친구 같은 존재다. 아주 특별한 경우, 이를테면 아이가 위험한 행동을 하려 할 때를 제외하면, 소리 지르며 야단치는 일은 주로 아내 몫이다. 아이에게는 경외심을 갖고 따를 수 있는 대상도 필요하지만, 편안하게 비빌 언덕도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아이 엄마 입장에서는, 본인이 악역을 도맡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렇게 맨날 아이에게 화만 내다가 아이가 엄마를 싫어하게 되면 어떡하나 불안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언컨대, 아이는 엄마를 가장 무서워하면서도 가장 사랑한다. 훈육을 위해 자신을 야단치는 엄마를 아이가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일랑 접어두셔도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물론, 스스로 감정 제어를 잘해야 한다는 점은 훈육 담당자가 지켜야 할 기본 윤리이자 과제일 것이다.

 그리고 훈육담당자가 훈육 중일 때, 나머지 가족들은 잠시 거리를 두고 물러나 있어줘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조부모의 개입으로 훈육의 일관성이 흐트러지는 것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딸아이는 엄마와 단둘이 있을 때는 대체로 고분고분 말 잘 듣고 어른스러운 면모를 보이는데, 할머니 댁에 다녀오고 나면 어리광이 말도 못 하게 늘어서 온다. 그래서 대구 본가에 다녀온 직후엔 무척 다루기 힘든 아이가 되곤 한다. 하지만 그것도 일시적일 뿐이고 하루 이틀 지나니 정상화되더라.

 엄마는 아이가 잠시 그렇게 일탈했다가도 얼마 안 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만드는 포털 같은 존재라고, 나는 생각한다.


[장면 #2에 대한 해법]

 공공장소에서 생떼 쓰는 아이에게 대처하는 일은 정말이지 풀기 어려운 숙제이다.

 원하는 것을 항상 얻을 수 없다는 걸 아이에게 인식시키기 위해서, 혹은 생떼 쓰는 행위를 더 강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요구를 들어주면 안 된다는 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생각 같아선, 아이가 울건 말건 외면하고 내버려 두거나, 아이가 스스로 감정을 추스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싶다.

 하지만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 그 상황을 무작정 방치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나 같은 경우엔, 일단 딸아이를 덜렁 들어 안고 다른 장소로 이동해버린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울어서 안 사주는 거야!”


 어쨌든 그 순간만 잘 넘기면, 아이는 이내 수긍을 하고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더라. 그리고 아이의 관심을 돌릴 만한 다른 대상이 있으면 아이는 더 빨리 울음을 그친다.



 이 문제에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각자가 순간의 기지를 발휘해 최선의 솔루션을 찾는 것밖에는….


 한데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이가 땡깡 부릴 때 부모가 당황하거나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내 직업이 소아과 의사이다 보니, 아이 울음소리에 만큼은 이력이 나 있다. 그래서 웬만한 울음 기술로는 내가 쉽게 걸려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 딸도 잘 알고 있다.

 ‘울어서 안 사주는 거야!’라는 말을 몇 번 듣고, 우는 거로는 잘 안 통한다는 걸 깨닫게 된 딸의 다음 선택은 바로 애교와 설득이었다.


 “아현이가 엘사 물병을 갖고 있는데, 채연이도 하나 사면 안 될까?”


 세상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저렇게 사랑스럽게 얘기하는 딸아이의 모습에 심장이 사르르 녹아버리고 마는 우리 부부는, 어느새 스마트폰으로 엘사 물병을 검색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 딸에게 땡깡 대신 설득의 기술을 알게 한 건 우리 나름의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아이가 갖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마다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부모를 설득할 기회를 준다는 가족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우리 딸이 좀 더 크면, 우리 가족도 그 방법을 도입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장면 #3에 대한 해법]

 ‘밥 먹을 때 스마트폰 안 보여주기’라는 규칙을 외식할 때만큼은 어쩔 수 없이 어길 수밖에 없는 현실은, 그냥 말 그대로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규칙에는 예외 조항이란 것도 있으니까. 그리고 ‘밥 먹을 때 스마트폰을 볼 수 있는 경우는 외식할 때만으로 한정한다!’라는 규칙을 새로운 규칙으로 정하면 되는 거니까.


 솔직히, 해외여행을 가보면, 식당에서 아이에게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보여주는 건 만국 공통이더라.

 「임신! 간단한 일이 아니었군」이란 책을 쓴 프랑스 작가, 마드무아젤 카롤린의 내한 인터뷰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프랑스에선 부모들이 아이들을 얌전하게 하려고 너무 쉽게 아이패드나 스크린 앞에 붙어 있게 해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지켜야 할 규칙과 틀을 중요시한다는 프랑스도, 알고 보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필자가 생각하는 ‘프랑스 육아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아이를 부모에게 속한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한다는 점이다.

 단호한 제한과 부모의 강력한 권위로 꽤나 엄격한 훈육을 하면서도, 아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믿고 기다려주는 태도는 우리가 그들에게서 꼭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어쩌면 아이의 영역에 너무 깊이 개입하려 하고, 그들에게 너무 많은 걸 해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이해하고 있고, 스스로 가야 할 길을 자기만의 속도로 잘 찾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나를 포함한 한국의 부모들은 제 자식을 끔찍이 위하고 사랑하는 것에 비해선, 그들을 믿어주는 데는 좀 취약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아이가 스스로 깨닫고 해내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해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일단 나부터가 그렇다.


 ‘아이가 스스로 깨닫고 행동할 때까지, 그리고 스스로 자기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이것은 외부적인 제약이 문제가 아니라, 나 스스로 생각을 바꾸면 가능한 것이므로 별 무리 없이 실천 가능한 지침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를 좀 더 잘 키워볼까?’를 고민하면서, 별 볼 일 없는 작가가 쓴 이런 시답잖은 글까지 찾아보고 있는 당신은 이미 좋은 부모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당신은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육아법, 스칸디나비아식 육아, 유대인식 교육법 등등 다 좋지만, 우리 아이를 키우는 주체는 당신이고, 우리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바로 당신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가끔은 먼 길로 돌아갈 때도 있고, 때론 길을 잃을 잃어버리는 순간도 찾아올 것이다.

 그래도 결국에 당신은 올바른 길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육아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이 순간에도, 우리 아이들은 자기만의 속도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저만치 앞서가 있는 우리 아이가 외려 나를, 우리를 먼저 이끌어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기다림은 우리 아이들보다, 외려 우리 부모들에게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급함과 욕심은 버리고,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믿고 기다려주기!


 오늘도 아이에게 뭔가 해줄 게 없을지를 고민하며, 아이의 삶에 깊이 개입하려 드는 나,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외쳐 본다.


 ‘아탕(attend)!’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290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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