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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재혁 Jun 09. 2019

1주일 넘어도 감기 안 나으면 소아과 바꿔야 하나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 소아과를 바꿔야 할 이유

 며칠 전 수지 이마트 문화센터에서 육아 강연을 마친 후, 나는 이런 질문을 받은 바 있다.


 1주일 넘어도 감기 안 나으면 소아과 바꿔야 하나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버린 나는 얼마간 질의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어야 했다. 그런 내 시선이 다소 부담되었는지, 질문한 엄마는 슬쩍 눈길을 피했다.

 안면이 없는 거로 봐선, 우리 소아과에 다니는 아이의 보호자는 아닌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내가 진료한 환아의 보호자로부터 공개석상에서 그런 질문을 받은 거였다면, 진땀께나 빼었을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간에 병원을 옮기게 되면, 처방을 불필요하게 바꿔야 할 수 있고…. 실제로 감기가 1주일 이상 가는 경우도 있거든요? 글쎄요, 어려운 문제이긴 한데요. 그래도 암튼, 보시던 선생님에게 계속 다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1주일 넘게 감기가 낫지 않더라도 소아과를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라는 취지로 대답하긴 했지만, 두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무 말 대잔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대답이 되었나요?"


 그렇게 되묻지만 않았어도 최악은 면했을 텐데….

 알맹이 없는 횡설수설만 잔뜩 늘어놓고선 그런 사족 같은 부가 의문문을 덧붙인 나의 어리석음을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왜 좀 더 설득력 있는 대답을 하지 못했을까?'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머릿속으로 그 장면을 리플레이하며 연신 이불만 뻥뻥 걷어차던 나는, 결국 브런치 글쓰기 버튼을 누르기에 이른다. 연락처는커녕 성함도 모르는 그 엄마를 다시 만나 추가적인 설명을 할 방도는 없으니, 이 글을 통해서라도 속 시원한 답변을 해야 비로소 '회한의 이불 킥'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만히 되짚어 생각해보니, 소아과를 바꾸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1주일이 넘도록 해당 선생님의 진료에 만족하지 못했다면, 다른 소아과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니까. 더구나 요즘에야 흔하디 흔한 게 소아과지 않은가?

 만약 우리 소아과에 다니는 환아 보호자가 내 진료 내용에 만족하지 못해서 다른 선생님을 찾아간다고 해도, 나로선 할 말이 별로 없을 것이다.

 요컨대 소아과를 선택하고 변경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보호자의 소관인 게 맞다.


 다만, 다니던 소아과 선생님을 불신임하고 딴 데로 가는 이유가 '1주일이 넘도록 감기가 낫지 않기 때문'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감기 증상이 1주일 이상 지속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때마다 소아과를 바꾼다면 지역 내 병의원을 모조리 순회해도 모자라지 않겠는가?

 

 내가 생각하는 '소아과를 바꿔야 할 이유'는 감기가 1주일 이상 가는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해서 보호자가 납득할만한 설명을 듣지 못했을 경우라고 생각한다. 병의 자연 경과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통해 보호자를 이해시키는 것도 의사의 역할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감기 증상이 1주일 이상 지속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필자 나름의 소견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순수한 바이러스성 감기(상기도 감염)로도 증상이 1주일 이상 지속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3세 미만의 소아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경우, 1주일 정도 경과된 시점에는 호전되는 양상을 보여야 한다.

만약 기침이나 콧물 등의 증상이 차도 없이 1주일 이상 지속되거나 더 심해지는 양상이면, 축농증이나 기관지염, 혹은 폐렴 등의 세균성 합병증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필요한 검사를 시행하거나 항생제 추가 등의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발열 동반 여부 또한 중요하다. 3~5일 이상 열이 지속되거나 없거나 사라졌던 열이 다시 나는 경우에도 합병증 발병 여부를 체크해야 한다.

환아가 알레르기 소인을 갖고 있으면 감기증상이 1주일 이상 지속될 수 있다. 실제로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천식 등의 알레르기 질환은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더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 즉 알레르기 소인에 감염 요인이 더해지면, 증상이 더 심해지고 더 오래 갈 수 있다.



 

 앞서 나열한 경우의 수를 바탕으로, 이제 '1주일 넘어도 감기 안 나으면 소아과 바꾸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본격적인 답변을 해볼까 한다.

1주일 넘어도 감기 안 나으면 소아과 바꿔야 하나요?

 만약 의사가 병의 진행 경과와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설명 없이 1주일 넘도록 똑같은 처방전만 발행하거나 합병증 발생 여부에 대한 적절한 확인 및 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라면, 당연히 다른 선생님을 찾아가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사가 현재의 진행 상황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을 해주고, 병의 경과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면 조금 더 기다릴 필요가 있다. 특히 항생제를 이미 추가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우리가 만약 중이염이나 하기도 감염을 유발한 원인균을 밝혀서 항생제를 선택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런 표적 치료가 이루어지긴 힘들다. 모든 경우에 세균 배양 검사를 시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검사한다고 해도 세균을 배양하고 동정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진료 현장에선 대부분 '경험적 항생제 치료'라는 걸 시도한다.

 경험적 항생제 치료란, 환아의 연령 및 생활 환경·질환의 유형·과거력·시기적 유행 등의 제반 요소를 고려해 가장 유효할 것이라고 추정되는 항생제를 선택해서 쓰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1차적으로 선택한 항생제가 해당 질환에 잘 듣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대개, 1차 항생제를 시도한 후 2~3일 후에 치료 반응을 살펴 항생제의 지속 또는 변경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항생제를 썼는데도 증상이 잘 낫지 않는다고 하루이틀 만에 다른 소아과로 가버린다면, 해당 선생님은 치료 반응을 확인할 기회를 잃게 된다. 그리고 너무 빨리, 혹은 불필요하게 항생제를 교체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1차적으로 선택한 치료의 반응이 좋다면, 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그보다 다행스러운 일은 없다.

 하지만 의사가 신이 아닌 이상은, 모든 경우에 처음부터 적절한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환자와 보호자는 의사를 믿고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믿고 기다려 달라고 일방적으로 부탁하는 건 절대 아니다. 의사가 신실하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판단이 드는 경우에만 그렇게 하시라는 얘기다.


 설명에 인색하면서 본인의 처방에 대해 진중하게 고민하지 않는 의사라면, 환자로부터 거부당해도 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실한 설명을 통해 환자와 보호자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려는 노력이 느껴지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치료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보이는 의사라면, 설령 1주일 넘게 감기가 안 낫더라도 조금만 더 믿고 기다려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커버 이미지 출처 : us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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