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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재혁 Jun 21. 2019

우리 애가 침대에서 떨어졌는데…

괜찮다는 말 한마디가 어려운 이유

 며칠 전, 감기로 내원했던 7개월 남아의 엄마가 진료실을 나서려다 다시 되돌아서며 이렇게 물었다.

  

 "사실은 어제 ○○이가 침대에서 떨어졌는데, 괜찮겠죠?"


 이미 그 아이에 대한 진료를 마친 상태에서 처방을 입력하느라 여념이 없던 나는, 그 질문을 받은 즉시 하던 동작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떠나려던 그들을 다시 내 앞에 불러 앉히고선, 소아 낙상 사고 대처에 관한 일장 연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 놓아야 했다.




우리 애가 침대에서 떨어졌는데, 괜찮을까요?

 

 소아과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보면, 이런 질문을 불시에 받게 된다.

 대개 낙상 사고 발생 직후에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안고 달려오는 보호자들이 많지만, 때론 하루 혹은 며칠이 지난 후에야 뒤늦게 물어오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 질문을 던지는 보호자들이 내 입을 통해 가장 듣고 싶은 대답은 그저, 괜찮다는 말 한마디일 것이다.
 하지만 그 '괜찮다는 말 한마디' 해주는 일이 소아과 의사에겐 결코 쉬울 수 없다.

 

 왜냐하면, 소아과 의사들은 정말 괜찮지 않은 경우도 보기 때문이다.


 대체로 예민하고 소심한 족속인 소아과 의사들은 어쩌면 보호자보다 더 많은 걱정을 하고 있을 터이다.

 그런 태생적 걱정 부자들에게 '괜찮을까요?'라는 질문을 잘못 던졌다가는, 외려 더 큰 걱정과 불안감을 떠안게 될 지도 모른다.




 사실은 괜찮은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침대에서 떨어져서 X-ray 혹은 CT 촬영을 위해 응급실을 방문한 아이들 대부분은 이상 없다는 의사의 소견과 함께 면책성 경고 멘트를 잔뜩 들은 후에 무사히 귀가한다.

 그렇지만 개중엔 간혹 두개골 골절 소견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고, 두개강 내 출혈이 발견되는 경우도 분명 있단 말이다.

 심각한 손상이 있는 경우라면 신경학적 징후가 곧바로 나타나겠지만, 경미한 골절이나 출혈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없거나 뒤늦게 나타날 수도 있다.

 따라서 아무런 검사 없이 이학적 진찰만으로는 괜찮은 지 안 괜찮은 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는 얘기다.


 바로 그런 이유때문에, 괜찮다는 말 한마디 해주기가 어렵다는 거다. 의사의 말 한마디에는 가볍지 않은 책임이 실리니 말이다.

 

 "에이, 괜찮습니다. 걱정 마세요!"


 만약 이런 식의 무한 긍정 멘트를 아무 꺼리낌 없이 내뱉는 의사가 있다면, 그 선생님은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거나 간만 크고 책임감 없는 의사라고 생각하셔도 좋다.




 뒤집기 신공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생후 4~6개월 무렵의 아기가 내원하면, 나는 꼭 이런 당부를 하곤 한다.


 "어른 침대나 소파에 아기를 절대 혼자 올려두지 마세요!"


 하지만 아무리 조심을 한다고 해도,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어나는 낙상 사고를 100% 방지하긴 진심 어렵다.


 솔직히 밝히자면, 우리 딸도 그 무렵에 두어 번은 침대에서 떨어진 바 있다.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에 와서야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 있지만, 그 순간순간엔 나 역시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이 심각한 걱정과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내가 소아과 의사인데도 불구하고, 그 속상하고 염려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기 쉽지 않았다.


 실제로 한 번은 대학 병원 응급실에 가서 (차마 CT까진 찍지 못 하고) 두개골 X-ray를 찍고 온 일도 있다.

 그 당시 우리 딸은 구토도 없고 별다른 컨디션 변화도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결국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게 되더라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막상 '낙상한 아이'의 보호자 입장이 되고 보니, 나 역시 판에 박힌 듯한 설명과 경고보단 괜찮다는 말 한마디에 더 집착하게 되더라.


 하지만 다시 의사의 입장으로 돌아와 생각해보면, 낙상 사고 후에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능성에 대해 보호자에게 충분히 설명할 의무 역시 소홀히 해선 안 되는 게 맞다.





  "우리 애가 침대에서 떨어졌는데 괜찮을까요?"


 소아과 전문의가 된 지 만 12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침대에서 떨어져서 온 아이를 숱하게 접해온 필자지만, 요즘도 이 질문을 받으면 숨이 턱 막힌다. 보호자의 불안과 걱정을 달래면서도 의사로서 해야 할 설명의 의무까지 다해야 한다는 부담이 극심한 압박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아직도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을 찾지 못한 것 같다.


 다만, 내가 아빠가 되면서 침대에서 떨어진 아이의 보호자 입장까지 되어본 이후로는 이 질문에 대처하는 내 태도가 크게 달라지긴 했다.

 우선은, 보호자를 야단 치지 않게 되었다.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자책에 빠져있을 부모에게 그들을 책망하는 발언을 하는 건, 상처에 소금물 들이붓는 격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경험을 공유하며 보호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노력한다. 우리 애도 침대에 떨어진 적이 있고, 나 역시도 속상하고 걱정스러웠으며, 내가 의사이면서도 대학 병원 응급실에 가서 X-ray라도 찍어보고 나서야 어느 정도 안도했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나의 그런 진솔한 고백이 보호자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그리하여 그들이 자괴감에서 벗어나 올바른 대처를 할 수 있길 바라며….

 

Honesty is the best policy.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속담을, 나는 믿는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도….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중요한 건 예방이다.

 영유아를 키우고 있는 부모는 낙상 사고 예방을 위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커버 이미지 : https://pixab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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