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재혁 Jun 25. 2019

부모와 자식 간에도 권태기라는 게 있나요?

자녀의 사춘기에 대처하는 부모의 자세

 진료실에서 만나는 보호자 중 가장 대하기 까다로운 부류를 꼽자면 그건 바로 갓난아기의 보호자, 즉 초보 엄마들이다.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엄마들은 대개 산후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해 잔뜩 예민해진 데다 처음으로 엄마가 된 긴장과 불안까지 더해져 신경과민상태인 경우가 많다.


 “우리 아기가 딸꾹질을 너무 자주 하는데 괜찮나요?”

 “아기가 온몸이 빨개질 정도로 용을 자주 쓰는데, 어디가 아픈 걸까요?”

 “우리 아가는 자꾸 깜짝깜짝 놀라는데 괜찮은 건가요?”     


 이처럼, 그들은 아가의 미세한 몸짓이나 반응 하나에도 지나치게 걱정하며 소아과 의사인 나를 향해 속사포 같은 질문 공세를 퍼부어대곤 한다.




 그런가 하면, 아이가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보호자가 진료에 임하는 태도는 사뭇 달라진다.

 내가 ‘어디 아파서 왔어요?’라고 물으면, 팔짱을 낀 채 멀찌감치 물러서 있던 엄마는 아이를 향해 퉁명스럽게 쏘아붙인다.


 네가 말해!     


 물론 중고등학생이 된 자녀와도 다정하게 잘 지내는 부모님도 더러 있다.

 하지만 아이가 질풍노도의 사춘기 터널을 지나는 시기에는, 살갑고 애틋한 부모·자식 관계를 유지해가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인 듯하다.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진료 보는 내내 심드렁한 표정인 저 어머님도, 한때는 아기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던 뜨거운 엄마였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면, 좀 씁쓸한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 나와 우리 딸 사이에도 언젠가 저런 기류가 덮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가끔 딸아이가 말을 잘 안 들을 때면, 아내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벌써 나한테 말대꾸해대는데, 중2 정도 되면 어떻게 감당하지?”

    

 그 걱정은 비단 엄마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아빠에겐 그런 순간이 더 빨리 올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빠에게 잘 안기고 굿나잇 뽀뽀도 잘해주지만, 어느 순간 아빠 근처에도 안 오려고 하거나 아예 눈길 한번 제대로 안주는 딸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무너지는 것만 같다.

  

 그런 슬픈 상상과 함께, 나는 우리 부모님을 떠올려 본다. 내가 한창 사춘기였던 20세기 말에 지금의 내 나이셨던 우리 어머니·아버지 말이다.

 그 당시의 두 분은 애물단지 막내아들의 기나긴 사춘기를 어떻게 감당해내셨을까?

 내가 막상 그 나이가 되어보니, 나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존재일 뿐인데….

 새삼, 두 분에게 존경스러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아직은 때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조심스럽게 이런 소망을 가져 본다.


 ‘딱 나 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봐야 부모님 심정을 이해한다는 그 말이 우리 부녀 관계에 만큼은 통하지 않기를….’


 ‘우리 딸이 나보다는 훨씬 더 어질고 착한 자식이기를….’


 ‘설령 우리 딸이 나를 거부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꿋꿋이 참고 기다려주는, 딱 우리 부모님만큼만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있기를….’





 이 글에 덧붙여, 한 가지 당부드릴 게 있다.


 "네가 말해!"

 이 말은, 적어도 진료실에서만큼은 하지 마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아이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능력과 자립심을 길러주는 것도 좋지만, 그 훈련이 꼭 아파서 온 진료실 안에서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상태를 엄마가 잘 파악해서 의사 선생님에게 제대로 잘 설명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엄마에게 특별하고 애틋한 친밀감을 느낀다. 그리고 보호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위안을 받는다.

 아플 땐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어른들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애들은 더하지 않겠는가?     
 우리 애가 자신의 상태를 충분히 설명할 만큼 컸다는 생각이 들고, 아이에게 스스로 발언할 기회를 주고 싶더라도, 적어도 병원에 왔을 때만큼은 ‘네가 말해!’라고 안 하셨으면 좋겠다.
 아이가 아파서 소아과에 왔을 때는, 환아 본인이 아닌 동행하신 보호자께서 자녀의 상태를 잘 파악해 상세히 잘 설명해달라는 부탁을 드린다.

 혹시 아나?
 엄마와 동행한 소아과 진료실에서의 긍정적 경험이, 잠시 소강상태였던 부모·자식 간의 애정에 다시 불을 지펴줄지도….



http://www.yes24.com/Product/Goods/89479041?scode=032&OzSrank=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