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하는 외출
그땐 왜 그리도 못 나가서 안달이었던지….
나는 아직도 우리 딸 채연이를 데리고 첫 나들이 했던 날의 설렘과 흥분을 잊을 수 없다.
2016년의 내 여름휴가 마지막 날이었던 7월 30일(채연이 생후 84일째), 우리는 채연이와 함께하는 첫 외출을 감행했다.
우리가 향한 곳은 바로 신세계백화점 본점이었다.
우리가 거기서 한 일이라곤 선물로 들어온 아기 옷을 다른 사이즈로 교환하고, (출국 계획도 없는 주제에) 갓 오픈한 신세계 면세점을 둘러본 다음, 영유아 동반 가능한 라운지에서 채연이 분유 먹인 게 전부였다.
비록 외출 준비에 걸린 시간이 신세계 본점에 체류한 시간보다 훨씬 더 길긴 했지만, 채연이 앞에 달고 바깥으로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았더랬다.
채연이 데리고 외출 한 번 할라치면 바리바리 짐 싸 대는 일이 정말 만만치 않았지만, 우리 세 가족은 참 무던히도 뻔질나게 싸돌아다녔던 것 같다.
가장 많이 간 곳은 역시 백화점이나 쇼핑몰이었다. 어린아이를 동반했다고 눈치 볼 필요 없고 영유아를 위한 편의시설도 완벽하게 갖춰진 그곳은 애 데리고 가기 가장 부담 없는 장소이니까.
뭐, 그렇다고 우리 부부가 남의 눈치만 살피는 타입은 절대 아니었다.
우리는, 아이 데리고 가기 좀처럼 쉽지 않은 교대 곱창 거리나 청담동 양대창 집, 혹은 번식기 이전의 남녀가 주로 모이는 강남역이나 이태원 등의 번화가에도 서슴없이 유모차를 끌고 진출하기도 했다.
심지어 구름 인파로 미어터지는 핼러윈의 이태원 거리에 채연이를 데리고 나간 적도 있다.
한데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타난 우리를 본 젊은 친구들의 반응은 의외로 호의적인 경우가 많았다.
KTX 열차칸이나 비행기 객실 등에서 영유아 동반 가족이 흔히 접하게 되는 싸늘한 시선 같은 걸, 젊은이들이 주로 모이는 거리나 업소에서 마주한 기억은 별로 없다.
"넘 귀여워! 어떡해?"
"어머, 저 애기 좀 봐! 인형 같애!"
오히려 아이에게 좀 과하다 싶은 친절을 베풀거나 다소 오버스러운 리액션을 보내오는 청춘 남녀를 더러 보았는데, 그건 아마도 잘 보이고 싶은 이성 앞이라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는, 남녀 관계에 있어 서로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우리에게로 향하는 여러 종류의 시선을 접하게 된다.
개중엔 감동스러우리만치 프렌들리한 눈빛이 있는가 하면, 마치 우리 애가 잠재적 범죄자라도 되는 양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맞닥뜨리는 순간도 있다.
예를 들면, 잠실 롯데타워 에비뉴엘에 있는 레스토랑 '쌩 메종(Saint Maison)'은 유모차를 끌고 나타난 우리 가족을 아주 극진하게 맞이해준 바 있다.
채연이가 탑승 중인 유모차를 두 명의 훤칠한 웨이터가 마주 잡고는, 레스토랑 입구에 있는 계단 위로 덜렁 들어서 올려주는 훈훈한 장면은 우리를 감동시키고도 남았다.
그런가 하면,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1 스타를 받은 바 있는 청담동 B 레스토랑은 미취학 아동이 있다는 이유로 예약 단계에서 딱 잘라 거절했다.
그 레스토랑은 이른바 노키즈존(No Kids Zone)이었던 것이다.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예약조차 받아주지 않거나 입구에서 입장을 저지당했을 때, 거부당한 우리로선 당연히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어이없는 문전박대를 당할 때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심한 욕설과 내가 끌어올 수 있는 가장 나쁜 기운을 모아, 해당 업소를 향해 한바탕 저주를 퍼붓고 싶어 진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내 기분은 나쁠지언정, 우릴 응대한 직원이나 그 윗선을 불러내어 '왜 아이는 들어갈 수 없느냐?'라고 따져 물을 명분은 내게 없다.
왜냐 하면, 그 업소의 룰을 정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해당 업주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 업주 입장에서는 아이 동반 고객을 받지 않음으로 발생하는 손해를 감수하고 그런 방침을 세운 것이다. 물론 그런 결정에는, 아이 없는 공간을 선호하는 손님을 더 많이 받으려는 계산도 포함되어 있었을 테지만 말이다.
여하 간에 아이 손님을 받을지 말지는 순전히 사장 마음이다.
국가에서조차도, 업주가 그런 규칙을 세우지 못하도록 강제하지 못한다. 적어도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말이다.
요컨대, '노키즈존'은 찬반에 붙일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며, 공론화시킬 문제는 더더욱 아니라는 얘기다.
성낼 필요도, 미워할 이유도 없다.
화난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을 오래 갖고 있으면 결국 나만 손해라는 걸, 살다 보니 깨닫게 되더라.
분노와 증오심이 담기는 건 결국 내 마음이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털어버리는 것이 평정심을 더 빨리 되찾는 방법이다.
노키즈존이라는 같잖지도 않은 편견의 구획을 만들어두곤 아이 가진 우리를 밖으로 내치는 그들이 아무리 얄미워도, 절대 화내거나 미워하지 마시길 권유드린다.
별 가치 없는 분노와 증오심으로 우리의 고결한 마음을 더럽힐 필요는 없지 않은가?
꼭 거기가 아니라도, 우릴 환영해줄 곳은 숱하게 널렸다.
노키즈존 그까짓 거, 그냥 무시하고 거르면 그만 아닌가?
이담에 우리 아이가 큰 다음에도 노키즈존 업소에는 절대 안 데려갈 것이다.
대신 우리 애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곳은 두고두고 잊지 않고, 오랜 단골로 남을 것이다.
그것이 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실행 가능한 나의 소심한 복수다.
[커버 이미지 by Yuganov Konstan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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