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에겐 항생제 절대 안 쓰겠다는 아무개 엄마께
지난 4월 초, 필자는 M 방송국의 한 아침 프로그램에 의학 패널로 참여한 바 있다. 그날 방송분에서 다룬 주제가 ‘어린이 면역’이었기 때문에, 소아과 의사인 내가 섭외된 것이었다.
그런데 방송에 합류할 것을 결정한 후 담당 작가가 보내온 ‘기획안과 질의서’를 읽어 내려가던 중, 나는 출연 수락을 번복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고 말았다. 기획안 내용 중에 심히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방송 섭외를 받고 사뭇 고무되어있던 나로 하여금, 자주 오지도 않는 방송 출연 기회를 포기할 뻔하게 만든 문구는 바로 이것이었다.
항생제를 먹으면 면역력이 떨어진다. (○)
연예인 패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OX 퀴즈 문항 중에 저런 글귀가 버젓이 동그라미를 단 채 쓰여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방송에서 저 문항의 정답을 발표하고 해설을 덧붙여야 할 사람은 바로 나였다.
진료과적 특성상 하루에도 수십 건의 항생제 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는 나더러 저런 멘트를, 그것도 방송에 나가서 하라니, 나는 적잖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작가에게 이런 내용이 담긴 피드백 메일을 보낸다.
‘항생제를 먹으면 면역력이 떨어진다.’라는 문항에 대해 한 말씀 드립니다.
항생제 복용으로 인해 우리 몸속의 병원균뿐만 아니라 유익균까지 파괴되어 장내 세균총(intestinal flora)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항생제의 남용이 항생제 내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선 일정 부분 맞는 말이긴 합니다.
다만, 이 내용만 덩그러니 방송이 된다면 시청자들에게 항생제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과 거부감을 심어줄 우려가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엔 항생제를 무조건 나쁘다고 받아들여 기피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거든요. 바로 그런 풍조로 인해서, 진료 현장에서 항생제 치료에 대해 심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보호자가 적지 않습니다.
꼭 필요한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항생제 치료를 거부할 시에는 자칫 더 심각한 상태로 빠질 위험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때 적절한 항생제 치료를 하면 기관지염으로 끝날 병이 심한 중증 폐렴으로 진행된다거나, 국소적인 피부감염이 전신적인 패혈증으로 발전해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도 합니다.
따라서 '항생제 남용은 피해야 하지만, 꼭 필요한 경우에는 항생제를 써야 한다.'라는 내용도 꼭 덧붙여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행히 내 피드백은 받아들여졌다. 전문가 패널들의 의견과 답변을 반영하여 정식으로 배포된 대본에서 저 OX 퀴즈 문항의 정답은 세모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방송에 나가서도 소신껏 내 의견을 펼칠 수 있었다.
아픈 아이들을 진료하면서 다양한 성향의 보호자를 만나다 보면, 항생제를 향한 양극단의 시각을 종종 접하곤 한다.
물론, 내가 처방을 내리는 대로 잘 따라와 주는 보호자가 대다수다. 하지만 개중에는 의사로서의 내 소견에 반하여 일방적 요구를 해오는, 다음과 같은 보호자들도 있다.
나 : 열이 있긴 하지만 아직 다른 증상이 심하진 않아서, 항생제 없이 증상에 대한 약 쓰면서 지켜보죠!
보호자 A : 우리 아이는 항생제 안 쓰면 잘 안 났던데, 그냥 써주시죠?
이렇듯 무조건 항생제 처방을 요구하는 보호자가 있는가 하면,
나 : 가래 기침이 심해지는 걸 보니, 기관지염으로 진행되는 소견으로 보입니다. 이번엔 항생제를 추가해야 할 것 같아요.
보호자 B : (무슨 독극물이라도 대하는 표정으로) 우리 아이에겐 항생제 절대 안 먹일 거예요!
이처럼, 항생제라는 말만 꺼내도 기겁하는 보호자가 있다.
사실 환아의 질병을 치료해가는 과정에 있어선 의사와 보호자 간의 라뽀(rapport, 신뢰 관계) 형성이 중요하고 복약 순응도도 고려해야 하므로, 보호자의 의견까지 수렴해서 처방을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극단적인 생각과 신념을 가진 보호자 앞에선 마치 거대한 암벽을 만난 것처럼 암담한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그나마 항생제 지상주의 빠진 보호자 A에게는 설득과 타협이 어느 정도 먹혀든다. 항생제 남용의 위해성에 대한 내 설명에 수긍하는 보호자도 있고, 정 설득이 안 되면 ‘그럼, 일단 항생제를 함께 처방해 드릴 테니 하루 이틀만 기다렸다가 심해지면 먹는 쪽으로 합시다!’라는 정도의 타협도 가능하니까.
한데 항생제 치료를 막무가내로 거부하는 보호자 B와 같은 경우엔 정말 답이 없다.
아주 심하지 않은 경우라면 하루 이틀 정도 유예 기간을 가지며 경과를 관찰해볼 여지가 있지만, 항생제 필요성이 명백한 화농성 중이염이나 부비동염, 혹은 상태가 더 심각해질 소지가 다분한 하기도 감염인데도 불구하고 항생제 투여를 거부하는 경우엔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다. 완강한 태도의 보호자를 설득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보호자 B의 굳건한 신념대로, 정말 우리 아이에게 항생제를 ‘절대’ 안 쓰면 어떻게 될까?
항생제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 보면,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렇게 먼 옛날도 아니다.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장미 가시에 얼굴이 긁히거나 개에게 물리는 등의 가벼운 상처로도 세균이 온몸으로 퍼져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요즘 세상에 만약 그 정도의 상처로 사람이 죽는다면 해외 토픽감이 되겠지만, 항생제가 없던 시절에는 그렇게 쉽게 사람이 죽어 나가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페니실린이 대량 생산되어 보급되기 전까지만 해도, 전쟁 중에 부상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상처 감염으로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그리고 항생제만 제대로 쓰면 어렵지 않게 치료되는 탓에 지금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 성홍열로도 상당수의 소아가 사망했고, 지금은 죽을병으로 생각하지 않는 폐렴이 그 당시에는 수많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우리 아이에겐 항생제 절대 안 먹일 거예요!
페니실린의 개발과 보급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45년에 노벨 의학상을 받은 바 있는 알렉산더 플레밍·언스터 체인·하워드 플로리, 이 세 사람이 만약 보호자 B의 저 발언을 듣는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쩌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모른다.
직접적으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수명을 적어도 10년 이상 연장시킨,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과학적 업적을 남겨준 그분들에게, 나라도 대신 머리 숙여 사죄를 드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알든 모르든 항생제의 혜택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항생제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을 심어준 건, 따지고 보면 의사들에게 1차적 책임이 있다. 굳이, 자극적인 꼭지를 따서 여론을 호도해온 언론에 잘못을 돌리진 않겠다.
선대의 훌륭한 과학자들이 일생을 바쳐 이룩한 소중한 과학적 유산을 적절히 쓰지 못하고 남용하여 ‘항생제 내성’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유발했다는 사실에 대해, 후대 의사 중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무턱대고 항생제를 거부하는 일부의 세태를 한탄하기 전에, 우선은 의사들이 똑바로 잘해야 할 것이다.
꼭 필요한 경우를 위해서, 꼭 필요하지 않으면 항생제를 쓰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의사들이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항생제 남용 문제에 대해 고민함과 동시에 자정과 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쪽은, 환자가 아닌 의사라는 말이다.
그리고 의사의 처방에 환자가 의심을 품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신뢰를 구축하는 일 역시 의사의 몫이다.
환자나 보호자가 믿고 따라와 주지 않는다고 한탄하기 전에, 우선 나부터 믿고 맡길 수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나의 판단으로 결정되는 처방 하나하나에 더 신중해지자! 그리고 더 깊이 고민하자!’
이것이 바로 인류 구원에 일생을 바친 선대 과학자들에게 입은 은혜를 갚는 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별로 대단한 것 없는 동네 소아과 의사인 내가 동 세대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작게나마 공헌할 방법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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