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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재혁 May 23. 2019

울게 하리까?

필요와 욕구를 구분하는 방법

 마의 새벽 3시.
 그제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어김없이 들려오는 아기 울음소리.
 아기 침대 옆에 붙어 선 채 고뇌하는 여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화면에 잡힌다.
 지금부터 이 여인을 ‘여인 A’라 부르기로 한다.

 아기 침대 안에서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아이는 바로 여인 A의 아들이며, 생후 6개월을 갓 넘겼다.
 늘 새벽 3시경에 하던 모유 수유를 과감하게 중단한 지 오늘로 3일째.
 아이가 6개월이 되자마자 이 무모한 시도를 감행한 이유는, 아는 언니로부터 ‘생후 6개월 이후의 아기에겐 야간 수유가 해롭다!’라는 말을 들은 바 있기 때문이다.
 어젯밤에는 아이를 한 시간 넘게 울리다가 끝내 수유하고 말았는데, 오늘도 결국엔 그래야만 하는 건지 고심하는 여인 A.

 만약 이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헨델의 「울게 하소서」가 카스트라토의 보컬로 삽입되면 제격이겠다는 발상에 속웃음을 떠올렸던 나는, 이내 정색하며 표정 관리를 한다. 그 순간엔 그보다 더 심각할 수 없을 그녀를 두고, 그런 짓궂은 장난을 쳐선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앞서 묘사한 장면은, 며칠 전 내 진료실을 방문한 한 엄마가 토로한 고충을 재구성해본 것이다.

 사실 이 장면은, 아기를 키우고 있거나 키워본 이들에겐 그리 낯선 광경은 아닐 것이다. 우는 아이 앞에서 난감한 딜레마에 빠져본 경험은 어느 부모에게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를테면, 먹을 시간이 안 되었는데도 보채는 아기에게 수유할지 말지 갈등한다거나, 혹은 한밤중에 깨어나 온 동네 떠나갈 듯 울어대는 아기를 어떤 식으로 달래야 하나 고민해본 경험 따위 말이다.


 영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수유와 수면 문제와 관련해 ‘울리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기란, 부모에게 있어 정말 쉽지 않은 과제다.

 특히, 아직 육아 경험이 짧은 초보 엄마·아빠라면 그 고민을 더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주변 사람들의 의견은 제각각이다.

 애 울리는 거 아니라고 말하는 시어른이 계신가 하면, 애를 울리더라도 엄마 뜻대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이웃집 언니도 있다.

 전문가의 소견을 구하고자 육아 서적을 찾아볼라치면, 오히려 더 헷갈리기 일쑤다. 책마다 주장하는 의견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책에는 아이의 울음에 즉각 반응해서 문제를 해결해줘야 좋은 애착 관계가 형성된다고 쓰여있는가 하면, 또 다른 책에는 아이가 울어도 조금 기다리게 하는 욕구의 지연이 필요하다고 나와 있으니, 대체 어느 쪽 말을 들어야 할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시대에 따라 육아 철학의 트렌드가 수시로 바뀌면서, ‘애를 울리느냐 마느냐?’에 대한 생각 또한 변화를 겪어왔다.


 이른바 ‘애착 육아’가 대세를 이루었던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이의 울음에 즉각 반응해야 한다는 쪽 주장에 더 힘이 실렸었다.

 생후 초기의 안정적 애착이 아이의 지적·정서적 발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애착 육아’는 영국의 정신분석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존 볼비(John Bowlby)가 정립한 애착 이론에 기초한다.

 존 볼비는 만 2세 이전에 안정적 애착을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아이의 발달에 영구적 손상이 생길 위험이 발생하며, 이 손상으로 인한 결핍은 이후에 어떤 보상을 한다고 해도 만회되기 어려워서 성인기에도 성격적 결함 또는 정신병리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를 향해 애착을 형성하고자 하는 신념이 있는데, 엄마 쪽에서 제대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나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경우 ‘부분적 박탈’이나 ‘완전한 박탈’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존 볼비의 애착 이론에 영향을 받아 기술된 듯 보이는 육아서를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로 재직 중인 신의진 선생님이 쓴 ‘아이심리백과’라는 책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막 태어난 아이는 자신이 느끼는 모든 불편한 감각을 울음으로 표현합니다. 엄마 배 속에서 엄마와 하나가 되어 편안하게 살던 아이에게 세상은 춥고 무서운 곳입니다. 안정적인 ‘밥줄’도 끊겨 수시로 배가 고프고, 때로는 추워지고 때론 더워지고, 기저귀로 인해 축축한 느낌까지 더해져 하루 중 편안한 때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부모는 아이가 울음으로 기분 나쁘다는 것을 표현할 때마다 즉시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출처 : 신의진의 아이심리백과 119P]


 그 당시 ‘애착 육아’라는 키워드가 한국 엄마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지대했다.

 엄마가 힘들건 말건, 아기와 엄마와의 애착 형성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여겼던 시절이었다고 할까?

 그만큼 엄마보다는 아기가 중심이 되는, 희생적 육아가 강조된 바 있다.

 특히 애착 형성이 지능 발달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는 주장은, 교육열에 있어선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국 엄마들을 더 안달하게 했다.

 그렇게 애착 육아가 높은 지지를 받음에 따라, 애착 형성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모유 수유가 신성시되기도 했다. 모유를 늘리기 위한 엄마들의 노력은 약물 복용(실제로 그 당시에 모유 늘리는 약 달라고 소아과를 방문하는 엄마들이 꽤 많았다.)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고, 분유 먹이는 엄마들에겐 나름의 사정과 이유를 막론하고 괜한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2013년에 무상보육이 시작되면서, 육아 트렌드에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다.

 다른 건 모두 접은 채 오직 아이에게만 올인하는 희생적 육아에 지쳐있던 엄마들은 독박육아의 고충을 세상에 어필하면서, 너도나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엄마 혼자 육아 부담을 짊어지기보다는, 하루 몇 시간이라도 육아 전문가에게 맡기는 편이 아이에게 더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믿음이 더 지지를 받게 된 시기가 그때였다.


 그리고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파멜라 드러커맨이 2012년에 출간한 책 「프랑스 아이처럼」이 시발점이 된 프랑스 육아 열풍이 한국에까지 상륙하면서,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다는 ‘엄마 중심의 육아’가 새로운 육아 트렌드로 부상했다.


 관심의 열기는 다소 가라앉긴 했지만, 현재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는 프랑스 육아 책에는 ‘아이의 울음에 곧바로 반응하지 말고 기다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라고 쓰여있다. 그리고 아이에게 좌절을 경험하게 해서, 운다고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없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애착 육아’에서 제시하는 지침과는 완전히 상반된 내용이다.


 우리가 혼란에 빠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아이의 울음에 대처하는 문제’ 하나에 대해서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생각의 각도가 180도로 바뀌어버리니,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것이다.


 애착 이론이 지금은 한물간 육아 철학이라고 해서, 그 이론에서 주장하는 바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을까? 아이에게 기다리는 법과 좌절을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엄마와 아이의 애착 형성도 중요해 보이는데….

 대세를 따라가는 게 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트렌드를 따르자니 어딘가 찜찜한 게 사실이다. 현시점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꼭 정답은 아닐지도 모르니 말이다.




- 국외 : 장 피아제(스위스), 장 자크 루소(프랑스), 프랑수아 돌토(프랑스), 존 브로더스 왓슨(미국), 벤저민 스포크(미국), 존 볼비(영국)

- 국내 : 방정환(아동보호운동의 선구자), 홍창의(소아과학 교과서 쓰신 분), 오은영(2015년 종영 시까지 근 10년간 대한민국 간판 육아 프로였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히로인)


 상기 인물들은, 육아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립하는데 유·무의식적으로 크고 작은 영향력을 끼친 육아 권위자들이다.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만도 이렇게나 많은 육아 멘토들이 존재하고, 각각의 권위자들이 내세우는 철학과 지침은 제각각이다 보니, 대체 누구 말을 따라야 좋을지 혼란스럽다.

 거기에다, 우릴 둘러싼 수많은 주변인의 훈수까지 더해지면 결정 장애는 더 심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우는 아이에 대처하는 문제’ 하나를 두고도, 행동의 방향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도입부에 등장했던 여인 A가, 그리고 때때로 그녀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곤 하는 우리가, 그 고뇌의 딜레마에서 탈출할 방법은 없을까?


 「삐뽀삐뽀 119 소아과」의 저자이면서 소아과 개원가에선 레전드로 통하는 하정훈 선생님의 육아 강의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필요와 욕구를 구분하라!


 이 워딩의 원조가 따로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하정훈 선생님을 통해 이 말을 들었다.

 얼핏 경제 관련 지침처럼 들리기도 하는, 참 간명한 메시지다.

 이 문구처럼 필요(need)와 욕구(want)를 제대로 구분하기만 한다면, 우리가 갇혀있던 딜레마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를 아이의 수유 문제에 대입하면, ‘아이가 정말 배고파서 우는지(=필요)’와 ‘딱히 배고픈 건 아닌데, 그냥 빨고 싶어서 우는지(=욕구)’를 구별해낼 수만 있으면 ‘울리느냐 마느냐?’에 대한 고민도 끝낼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지침대로만 하면, 아기가 정말 필요로 하는 요구에는 즉각 반응하여 애착 형성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불필요한 욕구는 걸러내어 기다림과 절제도 깨닫게 하는 절충적 육아가 가능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처럼 단순명료하게 다가오는 해법에도, 난관은 있다. 필요와 욕구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아기가 정말 배고파서 우는지, 아니면 그냥 우는 건지를 구분하는 일은 초보 엄마에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지나친 걱정에 빠져있을 필요는 전혀 없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가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의 우리는 육아에 대해 너무 지식적으로만 접근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은 듯하다.


 동물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제 새끼를 키워낸다. 사람도 엄연히 포유류로 분류되는 동물인 만큼, 그 어떤 다른 포유류보다 강력한 모성 본능이 있다.

 그런데 검색 육아, 훈수 육아 등에 길든 요즘의 엄마들은 자기 자신의 모성 본능을 믿지 못하고, 다른 무엇인가를 배워서 그 가르침대로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육아를 더 어렵고 힘들게 느끼는 것이다.


 육아는 감성적이고 본능적인 것이다. 눈을 감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그리고 그 소리에 따르라. 그것이 답이다!
(메레디스 스몰, 코넬대 인류학과 교수)


 그리고 애착 형성이란 것도, 엄마 쪽의 일방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기가 엄마를 끌어당기는 힘 또한 모성 본능 이상으로 강력하다는 걸, 아마도 애 키워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내가 낳은 아기를 내 품에 안았을 때 느끼는 그 충만한 희열, 아기가 엄마를 필요로 하는 순간의 그 강렬한 눈빛으로부터 전해오는 전율, 아기의 요구를 성공적으로 만족시켰을 때 느끼는 통제감과 성취감 등은, 다른 그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위안과 행복을 안겨준다.

 밤낮 없는 육아 전쟁에 지쳐있다가도, 세상 환하게 웃어주는 아기의 미소 한방에 피로와 시름을 잊곤 하는 우리 아닌가?


 도입부의 여인 A가 내게 던진 궁극적인 질문은, 6개월 이후까지 야간 수유를 지속하는 게 정말 아기에게 해롭냐는 물음이었다.
 아기에게 해가 되지만 않는다면, 본인은 야간 수유를 지속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이랬다.

 “6개월 이후부터는 야간 수유의 필요성이 없어지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6개월이 되자마자 반드시 야간 수유를 끊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너무 오래 야간 수유를 지속하는 건 해로울 수도 있지만, 6개월 넘어서 야간 수유를 한다고 해서 곧바로 아기에게 악영향이 가진 않습니다.”

 여인 A는 자신의 의지보다는 아는 언니의 훈수에 못 이겨, 너무 갑자기 야간 수유 끊기를 시도했다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사실 필요와 욕구를 구분하는 취지에서 생각한다면, 6개월 이후의 아기가 밤에도 깨서 먹으려 한다는 건 이미 ‘필요’는 없어진 ‘욕구’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아무리 불필요해진 욕구라고 해도, 새벽 3시마다 규칙적으로 먹던 엄마 젖을 갑자기 뚝 끊는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쉽겠나? 더구나 아직 이성적으로 사고하기 힘든 6개월 영아에겐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아기가 한 시간을 울든 두 시간을 울든 냉정하게 버텨낼 엄마가 아니라면, 밤중 수유 끊기 시도는 일단 유보하는 게 맞다고 본다. 한 시간을 울리다 결국 수유하고 말 것이라면, 끊기 시도를 안 하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아이에게 밤중 수유 끊기보다 더 먼저 시도되어야 했던 건, 혼자 잠드는 연습이었다. 여인 A는 지금껏, 젖을 물려서 애를 재워왔다고 고백한 바 있다. 꼭 젖을 물어야 잠이 드는 아이에게 젖 무는 행위는 일종의 수면의식인 셈이다.
 정상적인 수면에서도 각성이 잘 되는 주기가 하룻밤에도 수차례 찾아온다. 스스로 잠드는 훈련이 된 아기는 잠깐 깼다가도 다시 스스로 잠들 수 있는데, 젖을 물어야 잠이 들도록 훈련된 아이는 밤중에 깼을 때도 꼭 젖을 물어야 다시 잠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 혼자 잠드는 연습이 되지 않으면, 야간 수유 끊기 시도도 번번이 실패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혼자 잠드는 연습은 과연 쉬울까? 이른바 수면 교육이라고 불리는 그 시도 역시 어렵긴 마찬가지다. 수면 교육을 시도하려면, 여인 A는 또다시 ‘울리느냐 마느냐?’의 딜레마에 직면해야 할 것이다.

 정말이지 육아의 세계란, 길을 찾은 것 같다가도 금세 난감한 선택의 갈림길에 직면하고 마는, 복잡한 미로 속 같다.

 그래도 그 모든 헤맴의 과정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주는 자식이란 존재가 있기에, 엄빠는 오늘도 그 혼돈의 미로 속을 기꺼이 헤매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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