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된장 비빔밥

어머니 밥상의 비밀

by 곽재혁

어머니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갑작스러운 아들의 등장에 당황하신 기색이 역력한데도, 어머니는 짐짓 태연한 척하셨다.


“그만두려고요!”


단호한 결의를 실어서 전한 내 한마디에도, 어머니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잠깐의 침묵 끝에 어머니가 내뱉은 한마디는 천만뜻밖이었다.


“뭐, 먹고 싶은 건 없냐?”


본가로 향하는 내내 어머니를 설득시킬 궁리만 했던 일이 무색하리만치, 어머니의 그 한마디에 그만 전의를 상실하고 마는 나였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했던 ‘설득 시나리오’는 온데간데없이, 내 입 밖으로 염치없이 튀어나온 대답은 이랬다.


“된장 비빔밥이요!”




때는 2003년 12월.

그 당시에 나는 분당차병원에서 수련받는 소아과 레진던트 1년 차 신분이었다.

소아과의 극성수기인 12월이었던 데다, 중환이 가장 많은 소아 신경 파트를 돌며 육체적·정신적 에너지가 바닥나버린 나는 야간 당직을 마친 후 아침 회진을 앞두고 병원을 뛰쳐나온 참이었다.

밤새 잠을 거의 못 잔 상태였기 때문에 어디 가서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는 소아과 레지던트 수련을 포기하겠다는 결심이 무너지기 전에 부모님을 꼭 뵈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구 본가로 향한 것이었다.


졸음을 달래 가며 분당에서 대구까지 가는 세 시간 반 동안, 레지던트를 그만둔 후의 구체적 계획과 부모님을 설득할 묘안까지 완벽하게 짜둔 나였다.

그런데 먹고 싶은 건 없냐는 어머니의 물음 한마디에 내 머릿속 계획은 백지화되어버렸고, 나는 어느새 갓 지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과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두부 된장 뚝배기를 마주하고 있었다.

딱 보는 순간 입안 가득 침이 고이는 열무김치, 자작한 국물에 홍고추 채와 통깨가 올라간 애호박 볶음, 곱게 채 썬 무에 생기 넘치는 붉은색을 입힌 무생채 등이 된장 비빔밥을 위한 고명으로 준비되었다.

그리고 된장 비빔밥엔 절대 빠질 수 없는 자반고등어 구이가, 그릴에서 막 꺼내진 상태로 지글거리고 있었다.

거기다 김장한 지 며칠 안 되어 겉절이 상태인 배추김치까지 더해지니, 밥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머릿속이 텅 비워지는 것 같았다.


거의 무아지경 상태로 된장 비빔밥 한 사발을 뚝딱 비운 후, 티슈로 이마와 콧잔등에 맺힌 땀방울을 닦고 있는 내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 먹었으면 이제 올라가자.”


“네? 지금요?”


“그래, 지금 당장…. 아버지 퇴근하시기 전에 가야지, 아버지까지 아시면 일이 더 복잡해진다.”


“…….”


“그 대신 엄마가 따라 올라가 주마. 운전해서 가다가 졸릴 수도 있으니.”


어떻게 해볼 여지도 없이 어머니의 기세에 떠밀려 다시 차에 올라탄 나는, 그 길로 다시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을 타야 했다.

조수석에 동승하신 어머니는 간간이 내가 졸지 않는지 확인만 하셨을 뿐, 내내 한 말씀도 안 하셨다.

나 역시, 단단히 준비했던 말을 한마디도 꺼내지 못한 채 묵묵히 운전만 했다.


대구에서 경기도로 돌아오는 세 시간 반 동안, 그리고 수원에 있는 큰누나 집에 도착한 후에도, 어머니는 나에게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다음 날 오전, 나는 바로 병원으로 복귀했다.

30시간 남짓한 일탈 행위로 인해 1주일 벌당직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긴 했지만, 나는 그 후로는 다시 도망치는 일 없이 무사히 수련을 마칠 수 있었다.




의대 졸업과 동시에 수도권에서 객지 생활을 시작한 후로, 나는 다른 지역 출신의 친구들로부터 경상도 음식에 대해 경시하는 발언을 자주 듣곤 했다.


“대구에도 맛집이 있어?”

“경상도에도 어머니 손맛이란 게 있긴 하냐?”


사실 처음 그런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발끈했었다.

하지만 객지 생활을 해보고 다른 지방에도 두루 다녀보니, 한국 음식 문화에서 경상도 음식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더라.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신 우리 어머니에겐 타지역 출신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어머니 손맛’이라는 게 정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의 밥상에는 손맛을 떠나 어떤 신비로운 마법 같은 힘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소아과 레지던트 수련을 포기하려던 생각을 접고 병원으로 돌아가게 만든 힘이 과연 어디서 나왔던 것인지, 나는 아직 다른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16년 전의 기억을 꺼내어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봐도, 나를 치유하고 움직이게 한 힘은 어머니의 된장 비빔밥 반상에서 나왔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어머니와 채연이


요즘도 두어 달에 한 번 정도 대구 본가에 내려가면, 어머니는 한 상 가득 진수성찬을 차려내시곤 한다.


“아들이 내려와야, 나까지 덩달아 이런 밥상 한 번 받아보는구나!”


아버지의 그런 볼멘소리를 들으면서도, 어머니는 한껏 솜씨를 발휘해 정성 가득한 밥상을 상다리 부러질 듯 차려주신다. 물론 우리 딸이자 어머니의 유일한 친손주인 채연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무게중심이 나에게서 채연이로 이동했지만 말이다.


한데 이 글을 쓰기 위해 16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설핏 든 생각이 있다.


‘지금의 어머니가, 16년 전 기억 속의 어머니만큼만 젊으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을 살다 보면, 언제 다시 16년 전과 같은 위기의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럴 땐 언제라도 어머니를 찾아가 그 신비로운 마법의 된장 비빔밥 반상을 받아야, 상처를 치유받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마흔 중반의 애 아빠가 되어도 여전히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이 아들놈을 위해서라도, 어머니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만 한다.


‘엄마, 이 늦되고 못난 자식 오래오래 책임져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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