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3스타 식당에 부모님 모시고 가기

룽킹힌(龍景軒, Lung King Heen)

by 곽재혁

(龍景軒, Lung King Heen)

철없고 꿈 많던 어린 시절에, 나는 이런 다짐을 하곤 했다.


'내가 이담에 크면, 부모님 세계 일주 꼭 시켜드려야지!"


그땐 그랬다.

내가 커서 어른이 되기만 하면, 부모님 해외여행 같은 것도 척척 보내드릴 수 있는 능력자가 될 줄로만 알았던 나였다.

한데 지금의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부모님 세계 일주는커녕 국내 여행 한 번 내 카드로 결제해드린 일 없는 고만고만한 생계형 어른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나 스스로 참 잘했다 싶은 기억이 하나 있긴 있다. 그것은 바로, 미슐랭 3스타 식당에 부모님을 모시고 간 일이었다.




내가 아직 독신이었던 2013년 8월, 홍콩으로 가족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어떤 이에겐 쇼핑 말곤 딱히 할만한 게 없고 그닥 새로울 것도 없는 시시한 여행지일지도 모르지만,



유난히 길고 힘든 한 해를 보낸 후에 함께 떠난 우리 가족에게는 아주 특별하게 다가온 홍콩이었다.


여행 계획표 초안


휴가 기간을 맞추지 못해 불참한 자형을 제외하고는 직계 가족 전원(아버지, 어머니, 큰누나, 작은누나, 나, 그리고 조카 서연이)이 동행하는 가족 여행에 가이드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던 나는 여행 계획을 세우는 데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인 바 있다,


그리고 내가 그 여행 스케줄 안에 꼭 넣고 싶었던 플랜이 바로 '미슐랭 3스타 식당에서 식사 하기'였다.

미슐랭 3스타의 의미가 '요리가 매우 훌륭하여 맛을 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Exceptional cuisine, worthy of a special journey)'인 만큼, 미슐랭 3스타 식당이 우리의 여행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해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당시만 해도 아직 '미슐랭 가이드 서울판'이 나오기 전이라, 미슐랭에서 스타를 받은 식당에 대한 동경심이 지금보다 훨씬 더 컸었던 것 같다.

사실 그 무엇보다도, 세계 최고 수준의 레스토랑에 부모님을 모시고 싶은 욕심이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이었다.


2013년 기준으로 홍콩에 있는 4개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가운데, 가장 내 마음을 끌었던 곳은 바로 룽킹힌(龍景軒, Lung King Heen)이라는 중식당이었다.


내가 룽킹힌으로 보낸 예약 이메일


내가 짧은 영어로 최대한 짤막하게 써서 보낸 이메일에 대해


룽킹힌에서 내게 보내온 예약 확인 메일


이렇게 길고 친절한 답변을 받으니, 기분이 무척 좋아졌더랬다.


Four Seasons Hotel Hong Kong


여행 2일 차 되던 날 저녁, 침사추이의 페닌슐라 호텔에서 묵고 있던 우리는 포시즌스 호텔이 있는 센트럴로 이동했다.

바로 그 포시즌스 호텔 4층에 룽킹힌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안내받은 자리는 멋진 선착장 뷰가 있는 창가 테이블이었다.



잔뜩 멋이 들어간 포즈로 샴페인을 따라준 미스터 버나드에게 (당시에 내가 사용하는 기종이었던) 라이카 X2를 건네며 반셔터가 어쩌고 저쩌고 설명을 하려니까, 다 안다고 설명 필요 없다며 자신 있게 카메라를 받아 들더니



꽤 멋진 가족사진을 남겨주었다.



누룽지에 소고기 어쩌고 하던 웰컴 디쉬를 시작으로, 산해진미의 향연이 펼쳐졌다.



Barbecued Suckling Pig

요리 제목을 보고선 , 아기돼지가 통째로 나오는 불쌍한 장면을 상상했었는데, 그런 내 예상과는 달리 먹기 좋게 슬라이스 되어서 나왔다.

먹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은 다음, 두반장 소스를 위에 올려서 입안에 넣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바삭거리는 껍데기의 고소함에다 아기돼지의 부드러운 육질과 입안 가득 흘러넘치는 육즙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Baked Crab Shell Stuffed with Onion and Fresh Crab Meat

흡사 크로켓 같은 외관의 이 음식의 내부는 부드러운 게살로 채워져 있고, 바닥은 게딱지로 되어있었다.

인당 하나씩 시켜먹었는데, 약간 물컹거리는 식감을 싫어하는 서연이 외에는 모두가 만족했던 요리다.



Barbecued Pork with Honey

아기 돼지 바비큐가 생각보다 양이 적어서 추가로 더 시킨 '꿀 돼지 바비큐'.

꿀이 육즙인지, 육즙이 꿀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훌륭한 궁합을 보여준, 그야말로 '꿀맛' 요리였다.



Crispy Spring Rolls with Mushrooms and Vegetables

딤섬도 몇 가지 먹어보고 싶었지만 점심메뉴라서 주문이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주문 가능한 덤플링류 중에서 춘권을 시켜보았다. 포만감이 살짝 밀려오던 참이었는데도 아주 맛있게 잘 먹혔다.



채소를 너무 안 시킨 것 같아서 주문해본 ‘마늘과 함께 볶은 청경채’.



Lung King Heen Lobster Fried Rice with Seafood

두말할 필요 없이 '최고'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던 볶음밥.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그보다 더 맛있는 볶음밥을 먹어보지 못했다.



Shrimp Wontons with Noodles in Supreme Soup

이미 포만감을 느낀 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술술 잘 넘어갔던 완탕면.

정말 깔끔한 맛이었다.



홍콩 가족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던 룽킹힌 디너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공 들이고 기대했던 시간에 비해선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느낌이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는,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만찬이었다.


'이왕 룽킹힌까지 간 김에 부모님께 샥스핀, 제비집 같은 귀한 요리도 맛보게 해 드릴 걸….'


지금에 와서야 그런 후회가 밀려오기도 하지만, 함께 하는 기쁨만으로도 세상 행복해하시던 두 분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두 분과 함께하는 기회를 되도록 많이 가져야겠다고 다짐해본다.



Lung King Heen


Four Seasons Hotel Hong Kong
8 Finance Street, Central, Hong Kong
voice: (852) 3196 8888
fax: (852) 3196 8899
e-mail: lungkingheen.hkg@fourseasons.com

web: http://www.fourseasons.com/hongkong




2013년 7월 31일부터 8월 2일까지 자형을 제외한 직계 가족 6인이 함께한 바 있는 홍콩 여행.

그 여행을 가장 간절히 고대하셨던 분은 바로 어머니였다.

그 당시 69세셨던 어머니께 홍콩은 처음이었다. 70년대에 일본에서 3년간 거주한 적도 있고 큰누나 유학 시절엔 미국도 다녀오신 분이 유독 홍콩 방문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떠나기 몇 주 전부터 홍콩 주간 날씨를 찾아보시고 일주일 전부터 짐을 싸시며, 마치 첫 해외여행을 떠나는 소녀처럼 설레 하셨다. 돌아온 후에도 여운이 많이 남고 장면 장면들이 자꾸 떠오른다고 두고두고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여행 첫째 날 저녁.

갑자기 떨어진 빗방울로 인해 일정이 틀어지면서, 내가 버럭 화를 내버리는 바람에 분위기가 싸해졌던 순간이 있었다.


꼭 보려고 했던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놓쳐버린 아쉬움을 달래며, 걸어서 숙소로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의기소침해진 나로 인해 일행 전체에 정적이 흐르고 있던 바로 그때, 어머니가 나즈막하게 불러주신 노래 한소절이 문득 떠오른다.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


엄마!
엄마의 첫 홍콩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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