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와 함께한 김연아 아이스쇼

All That Skate 2019 - 2019년 6월 7일 공연 리뷰

by 곽재혁

우리집 두 여자와 함께 김연아 아이스쇼 All That Skate 2019 둘째 날(6월 7일) 공연에 다녀왔다.


정말 오래간만에 해본 승냥질이었다.

승냥질 : 연아 팬을 뜻하는 ‘승냥이’와 (주로 좋지 않은 행위에 비하하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질’의 합성어로, 연느님에게 충성하는 모든 행위를 스스로 낮추어 부르는 말


연느님이 특별 출연한 바 있는 작년 All That Skate 2018에 다녀온 이후로는, 가끔 '김연아'라는 검색어를 입력해서 떡밥 떨어진 것 없는지 체크하는 거 외에는 승냥질에 소홀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All That Skate 2018 : 2018. 5. 22 막공 @ 목동 아이스 링크

사실 내가 작년 아이스쇼에 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친구 잘 둔 덕이었다.

All That Skate 2018의 총연출을 맡은 김태욱 감독이 바로 내 동갑내기 친구였지 뭔가?

국제 스포츠 행사 개·폐회식 등의 굵직굵직한 작업을 주로 해오던 그가 이례적으로 아이스 쇼 총감독을 맡은 일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다. 티켓팅에 실패해 실의에 잠겨있던 가엾은 승냥이를 위해 티켓을 마련해준 그 친구 덕분에, 나는 4년 만에 아이스쇼 무대에 복귀한 연느님을 무사히 영접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역대 올댓스케이트 프로그램 북

연느님이 시니어로 데뷔한 해인 2007년에 입덕한 나는 2010년 4월에 처음으로 아이스쇼에 가본 이래로 이번 All That Skate 2019까지, 총 여덟 번의 아이스쇼와 한 번의 컴피티션을 직관한 바 있다.


내 비록 해외 원정까지 다니는 최상위 등급 승냥이는 아니었지만,

아이스쇼 때마다 가족 친지 번갈아 데려가느라 해마다 백만 원에 육박하는 티켓값을 부담해 왔으며,

나이키·코카콜라·KB국민은행·애니콜·갤럭시·하우젠·스마트에어컨·매일유업·맥심화이트골드·포스트라이트업·하이트·프로스펙스·뉴발란스·SK텔레콤 등, 연아가 광고하는 브랜드 제품이라면 생리대 빼고는 다 써봤을 만큼 충성도 높은 승냥이었음은 자부할 수 있다.




10년이 넘는 승냥질의 역사를 가진 진성 아재 승냥이에게도 미처 이루지 못한 버킷리스트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내 아이와 함께 연아 아이스쇼 보러 가기'였다.


작년 All That Skate 2018 때는 아직 우리 딸, 채연이가 너무 어려서 어머니에게 맡기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채연이라면 주변 관객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관람하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공연 도중에 채연이가 울거나 소란스럽게 굴면 즉시 안고 나올 각오까지 하고, 102구역 키스앤크라이석 티켓 3매를 예매하기에 이른다.


'아이가 너무 어리다고 입장을 저지당하면 어떡하지?'

'이러다 공연도 제대로 못 보고 티켓값만 날리는 거 아니야?'


무사히 입장에 성공하기 전까지만 해도,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꼽아보며 심각한 걱정에 빠져있던 나였다.

한데 막상 공연장 안으로 들어와 자기 자리에 착석한 채연이의 관람 태도는 기대 이상이었다. 입장 전까지 내가 했던 수만 가지 걱정이 무색하리 만큼….

내가 아내와 잡담이라도 나눌라치면, 도리어 채연이가 자신의 오른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붙이며 '쉿!' 하고 조용하라는 시늉을 할 정도였다니까?




그렇게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내 아이와 함께 연아 아이스쇼 보러 가기'를 무사히 성공시킨 것만으로도 사뭇 고무된 상태였던 나는, 오프닝 무대 중 연아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벌써 눈물이 터져버리고 만다.

은퇴 후 5년 만에 특별 출연이 아닌 정식 출연자로서 후배 선수들에 둘러 싸여 군무를 펼치는 연아의 모습이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치, 먼 길을 떠났다가 동족 무리가 기다리는 서식지로 돌아와 함께 노니는 한 마리 백조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이전의 아이스쇼에서는 링크의 3면이 관객석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 면은 대형 스크린이었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직사각형의 링크 4면이 모두 관객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한쪽 벽면이 아니라 아이스 링크 전체를 하나의 초대형 스크린처럼 활용하는 환상적인 연출을 보여줬다.

벽면 스크린이 있다 없으니까 다소 허전한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그 대신 스케이터의 퍼포먼스에 더 집중되는 효과가 더해졌다.




공연장으로 향하기 전, 나는 채연이에게 아이스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주었더랬다.


"채연아, 우리는 지금 겨울왕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러 갈 거야! 겨울왕국 마지막 장면에서처럼, 사람들이 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 타며 춤출 거야!"


그런 내 설명은 다행히 채연이에게 잘 먹혀들었다. 그러나 녀석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디테일한 아이였다.


"아빠, 그런데 엘사와 안나는 언제 나와? 그리고 울라프는?"


채연이로부터 이런 역질문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허술함을 깨닫는 나였다. 별 수 없이 나는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연아를 엘사로, 은수·예림이·다빈이를 안나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 하얀 의상을 입고 나온 하비에르 페르난데스는 울라프, 가장 남자다운 느낌의 네이선 첸은 한스가 되었다.




그런데 위기는 1부 후반부에 찾아왔다. 그것도 하필 연아 순서에서 말이다.


"채연아, 엘사 나왔잖아! 저기 봐봐!"


나와 아내는 채연이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미 흐트러진 채연이의 집중력을 되돌려 놓기엔 역부족이었다.

하긴, 네 살배기가 한 시간 가까이 집중력을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리고 채연이는 빨간 의상을 입고 나온 연아를 엘사로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자리에 앉았다 일어났다, 접이식 의자를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던 채연이는 급기야 자리를 이탈해 버리기까지 한다.


통로까지 걸어 나가 버린 채연이를 잡아다가 자리에 앉히고 보니, 연아의 1부 퍼포먼스「Dark Eyes」가 이미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물론 잠깐 바라보는 것으로도 마음을 홀딱 빼앗겨버리고 마는 매혹적 몸짓과 마성의 카리스마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말이다.

다만, 연느님의 퍼포먼스에 좀 더 집중하고 더 깊이 몰입해서 감상할 수 없었던 것이 조금 안타까웠을 뿐.

그래도 다행히 2부에서는 연아가 마지막이 아닌 중간 순서로 나온 데다 엘사 옷과 똑같은 색깔의 의상을 입고 나왔기 때문에, 채연이의 주의력과 관심을 끌 수 있었다.

신나는 2부 퍼포먼스 「Issues」만큼은 채연이도, 그리고 아내와 나도 깊이 몰입해서 신나게 즐길 수 있었다.

어느덧 클로징 무대.

네 살배기 채연이와 두 시간을 무사히 버텨낸 것만으로도 모종의 성취감 같은 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고 할까?

인터미션과 커튼콜을 담당한 '마마무'는 집사람이 좋아하는 그룹이라 더 반갑고 뜻깊었다.

2부 후반부에 이르러선 잠시 졸려하던 채연이도

다시 일어나 출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그리하여 나는,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달성했다.

All That Skate 2019 「Move Me」


「Move Me」의 move는 내게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하나는 '움직이게 하다'이고, 다른 하나는 '감동시키다'이다.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두 여자와 함께, 나를 감동시켰던 한 영웅의 공연을 즐길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두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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