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데리고 집으로 향하던 그날

해꿈이 다이어리 4 - 퇴원 편

by 곽재혁
2016년 5월 23일


다행스럽게도, 우리 딸 채연이는 신생아집중치료실 재원 기간 내내 별다른 이벤트 없이 잘 자라주었다.


생후 15일째 채연이 모습


일요일(2016년 5월 22일)에 아빠·엄마가 함께 면회 갔을 때만 해도 여전히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줬었고, 엄마와 함께 수유 연습도 잘했던 채연이었다.

생후 16일째 채연이 모습


그런데 바로 다음날 면회 땐 채연이가 저런 모습으로 누워있는 바람에, 출근한 나 없이 혼자 면회 갔던 아내는 한바탕 눈물을 쏟아야 했다. 그리고 저 모습이 담긴 사진을 카톡으로 전해받은 내 가슴은 철렁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머리와 가슴을 온통 채연이에 대한 걱정으로 채운 채 진료를 계속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는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내 은사님이자 채연이의 주치의셨던 이규형 교수님께서 직접 내게 전화를 주셨다. 교수님은 내가 분명 걱정하고 있을 거란 걸 아셨던 거다.


"어젯밤에 무호흡이 한번 체크되어서 아침에 혈액검사를 시행했는데,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어. 다만 황달수치가 14로 좀 올라가 있어서 광선치료를 다시 시작했고,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가기 위해서 저농도 산소를 투여한 거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이규형 교수님의 세심하고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나는 통 잠을 이룰 수 없었다.


2016년 5월 24일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좀 일찍 출근한 나는, 재원 16일 만에 처음으로 NICU에 직접 전화 걸어서 채연이 상태를 물어봤더랬다.
하루 만에 황달수치가 10 이하로 떨어져서 광선치료를 중단했고, 무호흡도 더는 체크되지 않아 산소 투여도 중단했다는 설명을 담당 간호사로부터 듣고 나서야 비로소, 온몸의 긴장이 확 풀리면서 날아갈 듯 신명 나게 진료를 시작할 수 있었던 나였다.


2016년 5월 27일
생후 20일째 채연이 모습

반휴인 금요일이서 갈 수 있었던 5월 27일의 면회 때에는, 인큐베이터 바깥으로 나와있는 채연이를 만날 수 있었다.

인큐베이터 밖으로 나온지 3일째인데, 다행히 체온 유지가 잘 되고 있다고 했다. 채연이가 바깥 공기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2016년 5월 28일
생후 21일째 채연이 모습

분유 50cc 한 병을 비워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입을 오물거리며 두 볼이 쏙쏙 들어갈 정도로 '쪽쪽' 열심히 빨아대는 모습이, 하루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의지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할까?


2016년 5월 29일

대망의 D-day!


큰고모가 사다준 배냇저고리와 속싸개를 차려입고, 마침내 NICU 문을 나선 채연이.


"채연아, 할머니야!"


생후 22일 만에 처음으로 마주한 손녀 앞에서 어머니는 그만 목이 메셨다.

그동안 몇 번이나 NICU 앞까지 오셨었지만, 항상 문 앞에서 기도와 응원만 남기고 발길을 돌리셔야 했던 어머니였다. 부모 외엔 면회가 일절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 한류 배우의 아기가 S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에 입원했을 당시, 조부모에게 면회할 기회를 줘서 특혜 논란이 불거졌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욕먹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할머니·할아버지 면회를 청탁한 그 배우나, 그 광경을 지켜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을 다른 보호자들의 심정 모두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빠가 열심히 조립하고 꾸며놓은 침대에 채연이가 쌔근쌔근 자고 있는 모습이 처음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몇 시간 안 가, 우리 부부는 곧바로 현실 육아에 돌입해야 했지만 말이다.




그때만 해도, 우리 부부는 패기와 의욕으로 똘똘 뭉친 열혈 부모였다.


뭐든 가장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자장가는 그 당시에 가장 음질 좋은 스트리밍 서비스였던 '타이달 하이파이(Tidal HiFi)'로만 들려주었고

동요도 국보급 보컬 '이선희' 님이 부른 것 정도만 들려주었다.


친아들에게 들려주는 노래를 취입한 '닉 라세이(Nick Lachey)'의 자장가 앨범에 자극받은 나는 매일 밤 아빠표 자장가를 들려주곤 했는데, 욕심 같아선 마이클 부블레나 김연우 등으로부터 성대이식수술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360도 회전 가능한 카시트 뉴나 레블 | 안방이 덥고 습한 편이라 거실용 침대로 구입한 뉴나 세나 | 아빠들의 캐리어라 불리는 스토케 마이 캐리어


만삭아에 비해선 면역력이 더 약할 수밖에 없는 이른둥이의 특성상 백일을 넘기기 전까진 아기 동반 외출은 삼가야 했던 그 당시에, 우리 부부의 유일한 취미이자 스트레스 해소 수단은 육아 용품 쇼핑이었던 것 같다. (서칭하면 할수록 점점 더 좋은 걸 사주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하나같이 값비싼 고급 제품들만 사들이다 보니 카드값이 장난 아니었다. 그런데 좀 비싸도 인기 많고 품질 좋은 제품들은 그만큼 중고값도 괜찮게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결과적으론 저렴한 제품을 쓰는 것보다 오히려 더 이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기침대에 CCTV를 설치해 두고는, 채연이가 잠든 동안에도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어느덧 그로부터 3년의 시간이 흘렀고, 채연이의 몸무게는 출생체중의 7배가 되었다.

아가가 보내오는 작은 신호라도 놓칠세라 침대에 CCTV까지 설치했던 그 열혈 아빠는, 때때로 채연이가 부르는 소리에도 즉각 대답하지 못하는 무딘 아빠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나는 원래, 어딘가에 몰두해 있으면 누가 불러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내 본연의 특성만으로, 처음과는 확연히 달라진 내 모습을 완전히 변론할 순 없을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내가 3년 전에 가졌던 열정의 온도를 잘 유지하지 못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아이가 커감에 따라 그때그때 닥쳐오는 새로운 문제들에 함입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초심을 잃게 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절실했던 마음을 상기시키려고 한다.


재태연령 32주 5일에 1.96Kg의 이른둥이로 태어난 채연이가 혼자서 그 험난한 과정을 이겨내고 무사히 퇴원하기까지, 하루하루 가슴 졸여야 했던 그 시절을 절대 잊지 말자!

채연이를 집으로 데리고 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별의별 물건을 다 사들이고 집안 이곳저곳을 꾸미며 채연이 맞을 준비에 힘쓰던 그 열정을 잘 지켜가자!

우리 딸 채연이를 데리고 집으로 향하던 그날, 세상 부러울 게 없었던 그 벅찬 환희를 절대 잊지 말고, 더 충실하게 더 뜨겁게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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