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수록 함께 가요, 우리!
국내 코로나 19 확산세가 정점을 찍고 있던 지난 2월 말의 어느 날, 퇴근 시간을 앞두고 우리 고참 직원인 고 간호사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원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나는 순간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로 시작되는 말은 대개 사직과 관련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직원이 나가고 들어오는 문제에 있어선 유독 취약성을 보여왔던 나였다. 의원 규모나 환자수를 고려하면 일반적인 기준보다 많은 편인 3명의 직원과 함께해 온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래야 서로 손발이 잘 맞춰진 직원들과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을 거라 여겨왔다.
"뭔데요?"
내가 적잖이 당황해하는 기색을 읽었는지, 고 간호사는 표정을 조금 누그러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원장님, 요즘 많이 힘드시죠? 그래서 저희끼리 의논을 해봤는데요... 3월에는 저희가 돌아가면서 쉬면 어떨까 하고요."
그러니까 고 간호사의 말인즉슨, 코로나 19 사태에 따른 내원 환자수 급감으로 인해 내가 힘들어질 것을 우려한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무급 휴가에 들어가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잠시 고민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5년 전 메르스 사태 당시의 처참한 매출 성적표를 기억하고 있는 나로선 그때보다 훨씬 더 험난하고 더 오래갈 게 뻔한 경영 위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미 무급 휴직을 통보하거나 감원을 감행한 곳도 꽤 많다는 사실을 소아과개원의사이트를 통해 접한 바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내 자세를 고쳐 앉은 나는 짐짓 호기로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제 걱정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이렇게 다 같이 힘들 때, 함께 있는 것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어서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솔직히 요즘은 책 마지막 수정 작업하느라 매출 같은 거 신경 안 쓰고 있었어요. 그러니 그냥 마음 편하게 계셔도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그저 오시는 환자 분들한테 더 잘하고 하나라도 더 신경 써드리고, 뭔가 다른 의미 있는 일을 찾아 하면서 이 시기를 함께 잘 지나가 보아요!"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3월을 마감하는 날인 오늘, 수입통계를 돌려본 나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3월의 보험청구액이 지난달의 56.4%, 작년 3월의 33.8%에 해당하는, 그야말로 처참한 수치였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돌아가면서 무급 휴가 가겠다던 직원들의 제안을 받아들였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밀려올 법도 하다.
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직원에게 가는 급여를 조금 덜 주었다고 이 심각한 경영 위기에서 당장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돈 몇 푼 아끼려다 의리와 신뢰를 저버리는 것보단 차라리 좀 곤궁한 게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믿음이란 건, 돈 주고도 되살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아니던가?
그렇다고 내가, 경영 악화로 인해 급여를 삭감하거나 직원 수를 줄여야 하는 고용인들을 탓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내가 뭐라고 그럴 자격이 있겠는가?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그런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자영업자 분들께는 가슴 깊숙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위로를 전하고 싶다. 나는 그분들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솔직히 조금 두렵긴 하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위기 속에서 맞게 되는 4월은 얼마나 더 힘들지, 도무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쭉, 조금은 미련하고 바보스러운 호기, 또는 허세로 밀고 나갈 예정이다.
괜찮은 척, 안 겁나는 척하면서 말이다.
어디로 가 닿을지 알 순 없지만,
힘들수록,
아니 힘드니까
그냥 같이 가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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