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라는 이 주제는 일단 한숨을 한번 쉬고, 호흡을 고르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누구인가. 배달의 민족 아닌가.
요리부터 디저트까지 클릭 두세 번이면 초스피드로 문 앞까지 산해진미가 배달되어 오던 대한민국에 살다가, 미국에 와서 반찬부터 심지어 김치까지 손수 담가 먹고 있는 여자가 되었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이는 결코 내가 요리를 잘해서 혹은 요리를 즐겨해서가 아닌 생존을 위한 일이다.
물론 미국에도 Uber Eats 같은 배달 앱이 있고, 뉴저지 같이 한인이 많은 대도시에 살면 한국 반찬 배달 업체도 많고 김치만 파는 매장도 있다. 하지만 큰 단점은 비싸다. 안 그래도 미국 물가가 치솟아 생활비를 졸라매는 처지에 맞벌이 시절처럼 퇴근길에 반찬 가게에서 저녁 메뉴를 척척 사던 사치는 이제 부릴 수 없는 형편이다. 그리고 앱으로 음식을 배달시키면 배달비에 팁까지 추가로 내야 한다.
외식도 가끔 하기는 하지만 3만 원쯤 하는 순두부를 텍스에 팁까지 내고 먹자니 차라리 내가 만들고 말지란 생각이 절로 든다. 물론 살다 보니 이곳 물가에 적응이 돼서 이제 순두부가 그나마 가성비 제일 좋은 외식 메뉴가 되었고, 우리 3인 가족이 외식으로 100불쯤 쓰면 꽤 합리적인 가격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미국에서 요리는 나에게 숙명이 되었다. 심지어 남편과 아이 도시락도 싸줘야 한다. 아이 학교 런치는 돈을 주고 시킬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이 하나 같이 먹을 퀄리티가 절대 아니라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대한민국 학교의 무상 급식이 새삼 그렇게 대단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우리 아들은 피자를 좋아해서 매주 금요일 메뉴인 치즈 피자는 항상 스쿨 런치로 주문해주고 있고, 그 외의 날들은 빠짐없이 스낵과 런치를 싸간다. 그러니 매일 저녁 메뉴를 결정하고, 내일 런치는 어떤 걸 쌀지 고민하는 게 나의 일상이 되었다.
유튜브에 없는 레시피가 없으니 사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요리를 할 수는 있지만, 문제는 내가 요리 과정 자체를 즐기지도 않고 손맛도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주변에서 보아온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재료를 아낌없이 팍팍 쓰고 계량 따윈 하지 않는다. 그리고 손이 빨라 요리가 끝남과 동시에 주변 정리까지 끝내 놓기도 한다. 반면 나는 분명 레시피를 보고 계량까지 해가며 요리를 해도 원하는 맛이 나오지 않는다. 너무 다행히 남편의 입맛이 까다롭지 않고 아이도 요알못 엄마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음식에 있어서 특별히 까탈스럽게 굴지는 않는다는 것이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작년 겨울 남편과 고민 고민 끝에 처음으로 같이 김장을 해보았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맛이 없으면 어쩌지 등 오만가지 걱정 끝에 도전해 보자란 결론을 냈고, 장장 1박 2일에 걸친 김장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다행히 완벽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흉내는 나는 김치 맛이 나왔고 자신감이 붙은 남편은 올해는 양을 두 배로 늘려서 해보자고 한다^^:; 얼마 전엔 가을무가 맛있어서 깍두기도 담갔다. 예상컨대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가 다시 일을 하던 안 하든 간에 김치를 담그는 수고는 아마 안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이 또한 미국에서 즐길 수 있는 우리 가족만의 작은 이벤트라 생각해보려 한다. 일종의 정신 승리이겠지만, 미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 정신 승리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오늘 우리 집 저녁 메뉴는 인스턴트 팟으로 간단하게 만드는 카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