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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Feb 17. 2023

영화: 그해 여름

독재의 광기에 사라져 간 사랑

박정희가 죽은 지 이제 40여 년이 지났다. 50세 이하인 사람은 박정희 독재시대를 경험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태어나지 않았거나 태어났더라도 아직 어린아이였으므로 그 사회를 실제로 체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박정희를 찬양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나는 20대 후반까지를 박정희 시대에서 보냈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지독한 독재였는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우리가 북한을 독재정권이라 욕하고 있지만, 박정희 시대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정도였다. 가끔 친구들과 농담 삼아 이런 질문을 한다. 만약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르겠느냐고. 나는 대답한다. 나는 이미 늙어서 젊음이 한없이 부럽다. 그렇지만 천만금을 준다 한들 그 시대로 돌아가기는 싫다.


박정희에 대한 저항 운동이 전국적 규모로 크게 일어난 것은 1960년대 말 삼선개헌 반대 데모였다. 당시 헌법에는 대통령은 2년 연임을 규정하고 있었는데, 권력욕에 광분한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통령 3선을 가능하게 하도록 헌법을 개정하려 하였다. 이러한 시도에 대해 이를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난 것이었다. 이에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의원은 이번에 만약 3선 개헌을 허용한다면, 박정희는 다음에는 틀림없이 종신 총통제로 가려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그의 말대로 나중에 박정희는 10월 유신을 통해 종신 대통령의 길로 들어섰다. 

박정희 정권에서 그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용공분자로 몰라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경찰, 중앙정보부 등에 의한 사찰, 불법 구금, 고문 등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런 속에서 박정희에게 저항하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용공분자로 몰려 혹독한 희생을 당하였다. 영화 <그해 여름>은 1960년대 말 서로 사랑하는 두 젊은이가 삼선개헌 반대 데모에 휩쓸리면서 이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2006년에 제작되었다. 


어느 방송국. 다큐멘터리 PD는 안절부절이다. 최근에 제대로 시청률을 올린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이다. PD가 방송작가인 수진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없느냐고 묻자, 수진은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윤석영 교수(이병헌 분)를 인터뷰하면 어떻겠냐고 대답한다. PD는 그런 유명한 분이 인터뷰에 응하겠냐고 미심쩍어하면서, 수진에게 네가 말을 꺼냈으니 네가 가서 인터뷰하라고 지시한다. 수진은 인터뷰에 성공할 자신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윤 교수를 찾아가서 인터뷰 요청하니, 윤 교수는 뜻밖에 선선히 인터뷰에 응한다. 수진은 윤 교수에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고 묻고, 윤 교수는 입에 잔잔한 미소를 띠면서 옛날을 회상한다. 


때는 1969년 여름. 대학생 윤석영은 큰 사업을 하는 돈 많은 아버지 덕에 여유 있는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여름방학이 되자 윤석영은 친구들과 함께 농촌 봉사활동을 간다. 지금은 “농활”이라고 하지만, 당시는 “농촌 봉사활동”이라 하였다. 그곳에서 윤석영은 서정인(수애 분)이라는 아가씨를 만난다. 서정인은 마을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는 글을 못 읽는 사람이 많아, 정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소설이나 이야기 책을 읽어주곤 해서 아주 인기 만점이다. 

석영은 정인에게 한눈에 끌린다. 석영이 정인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지만, 정인은 싫어하는 기색도 없이 잘 받아준다. 정인은 이 마을에서 혼자 살고 있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월북을 하여 그녀는 요 사찰인이 되어 정보기관으로부터 감시를 받고 있었다. 당시 연좌제가 있던 상황에서 정인은 다른 직업을 가질 수가 없어서 이렇게 시골마을에서 명색뿐인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농촌 봉사활동이 끝나가고 있다. 석영은 이제 정인 없이는 한 시라도 살 수 없다. 석영은 정인을 설득하여 함께 서울로 가자고 권유한다. 정인은 자신의 사정을 말하지만, 석영은 그런 것은 문제가 안된다며 먼저 서울에 갈 테니 바로 뒤따라 오라고 한다. 


개학이 되어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박정희의 3선 개헌 시도로 대학은 최루탄이 터지고, 전투경찰과 학생들이 대치하는 격렬한 데모가 시작되었다. 이때 정인이 시골에서 올라와 석영을 만나로 학교로 찾아온다. 생전 처음 데모를 경험하는 정인으로서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 겨우 석영을 만나 둘은 데모대를 피해 나온다. 그때 사복경찰들이 석영과 정인을 체포해 간다. 

경찰은 석영과 정인의 신원조회를 한다. 정인의 아버지가 월북했다는 사실이 나타나자 이들은 모두 큰 건을 한 건 했다는 투로 석영과 정인에게 대공 용의점이 있다고 닦달한다. 경찰은 석영을 용공분자로 엮을 셈이다. 연락을 받은 석영의 아버지가 석영을 면회 온다. 석영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석영의 아버지는 자칫하면 자신의 아들이 용공분자의 누명을 쓰고 중형을 받을 수 있다는 위기를 느껴, 석영을 빼내기 위해 경찰과 정보기관을 상대로 필사적으로 구명운동을 한다. 


경찰은 석영에게 정인이 용공분자라는 사실을 자백하라고 고문을 한다. 석영의 아버지의 구명 운동이 효과를 봐서 경찰은 석영에게 정인이 용공분자라는 사실을 자백해야만 풀어주겠다고 한다. 석영의 아버지도 석영을 찾아와 제발 정인이 용공분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녀와 앞으로 영원히 만나지 말 것을 약속하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형을 피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결국 석영은 고문과 협박과 회유에 굴복하여 정인을 버리고 만다. 


서울역에서 석영과 정인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정인이 머리가 아프다며 약을 사달라고 한다. 석영이 약을 사러 가려하자, 정인은 그의 팔을 꼭 잡는다. 그리고는 잠시 뒤 팔을 놓아준다. 석영이 약을 사 오자 이미 그 자리에 정인이 보이지 않는다. 석영도 아마 약을 사러 가면서 이것이 마지막이겠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그 암울한 독재 정권의 시대 두 젊은이의 안타까운 사랑은 서슬 퍼런 정권에 의해 이렇게 속절없이 그 끝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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