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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Feb 13. 2023

영화: 바람의 검심: 교토 대화재 편

메이지 유신 후 신센구미 잔당들과 싸우는 켄신

일본영화 <바람의 검심: 교토 대화재 편>을 감상하였다. 이 영화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인데, 만화가 워낙 대히트를 친 덕분인지 영화도 큰 인기를 얻었다. <바람의 검심> 시리즈는 원작 만화를 토대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하고, 실사 영화로도 여러 편 제작되었다. <바람의 검심: 교토 대화재 편>(るろうに剣心 京都大火編)는 실사 영화로는 두 번째 작품으로서 2014년에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작품이 “바람의 검심”이라 번역되었지만, 실제 원제목은 “유랑인(流浪人) 검심”이다. 그런데 유랑인을 일본 발음으로 읽으면 “류로닌”이 되는데, 원작자인 와쯔키 노부히로(和月伸宏)는 특별하게 이것을 “류로닌”이 아니라 “루로니”라고 읽어 달라고 했다. 그러서 원작의 제목을 발음 그대로 읽으면 “루로니 켄신”이 된다. 루로니는 방금 말한 대로 유랑인이라는 뜻이고, 켄신(劍心)은 주인공의 이름이다. 


이 만화는 일본의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明治) 초기에 이르는 격변의 시대 속에서 칼 한 자루에 몸을 의탁하여 수없이 많은 싸움을 거쳐온 검객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인 켄신은 그 시기의 특정한 인물을 모델로 하되, 주위의 여러 캐릭터를 혼합하여 만들어낸 인물로서, 실존 인물에 픽션적 요소를 더해 창조한 캐릭터이다.

17세기 초 일본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 의해 에도 막부가 수립된 이후, 250년간 일본은 도쿠가와막부의 통치 하에 있었다. 19세기 들어 유럽과 미국이 동아시아로 진출이 현저해지자 막부는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막부는 수립 초기부터 엄격한 쇄국정책으로 일관해왔다. 그런데 강력한 군사력으로 뒷받침된 서구의 세력이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치자, 막부는 쇄국 정책을 견지할 수 없었다. 미국의 페리 제독이 흑선(黑船)을 이끌고 와 무력시위를 하자 막부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쇄국 정책을 포기하였다. 


이러한 막부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고, 개혁을 요구하는 인물들이 도처에서 궐기하였다. 이들은 존황양이(尊皇攘夷, 손노죠이), 즉 천황을 섬기고 오랑캐를 배척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막부 타도를 외쳤다. 특히 사쓰마 번(현재의 규슈 가고시마 지역)과 쵸슈 번(현재의 히로시마를 포함한 혼슈의 서쪽 끝 지역)은 서로 손을 잡고, 막부와의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태도로 나왔다. 결국 쵸슈/사쓰마 연합군과 막부 군은 교토 부근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천황이 쵸슈/사쓰마 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로 인해 막부 군은 졸지에 역도(逆徒)가 되고, 죠슈/사쓰마 연합군은 관군이 되었다. 이 전쟁에서 막부군이 패퇴하면서 결국 막부는 통치권을 천황에게 넘겼다. 


개혁세력과 막부 세력 사이에 다툼이 첨예하게 나타났던 지역이 바로 교토(京都)였다. 막부가 지금의 동경 지역인 에도에 자리 잡고 있어서, 막부 시대 내내 정치의 중심지는 에도였지만, 일본의 수도는 엄연히 교토였다. 그런 만큼 개혁 세력도 역사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주로 교토에서 활약하였으며, 막부 측으로서도 이들을 진압하고 치안을 유지하기 군대를 파견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공권력만으로는 개혁 세력을 억누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왜냐하면 공권력은 힘을 사용하는 데 있어 적법한 절차가 필요하였다. 

공권력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막부는 낭인들의 힘을 이용하였다. 개혁 세력에 대한 암살, 테러 등 초법적인 대응을 위한 조직으로서, 막부에 호의적인 낭인들을 중심으로 일종의 자경단과 비슷한 신센구미(新選組)란 단체를 만들어 개혁세력들과 맞서도록 하였다. 그러니까 신센구미란 정치 깡패 비슷한 조직이라 보면 될 것이다. 우리나라 해방 후 서북청년단이라든가, 자유당 때의 정치 깡패들 또 유신 시대의 용팔이 패거리 같이 정권이 정치적 반대자를 폭력으로 제거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신센구미였던 것이다. 


막부가 물러나가 메이지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교토에는 신센구미 등 막부의 잔존세력이 여전히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은 초기 메이지 정부에 있어서 큰 위협이 되었다. 막부말 혼란했던 시기에 신센구미의 무력에 맞서, 메이지 유신파의 선두에 서서 싸운 검객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히무라 켄신(緋村劍心)이었다.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여 메이지 정부가 출발하자, 다른 공신들은 모두들 한 자리씩 차지하게 되었는데, 켄신 만이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런 그가 신센구미 잔존세력의 발흥으로 교토의 치안이 혼란해지자 다시 교토에 나타난 것이다. 


이 영화는 이러한 배경에서 시작된다. 


메이지 유신이 끝난 후 신정부도 서서히 안정을 찾아갈 무렵 “살인마 발도제”(人斬り抜刀斎, 히무라 켄신의 별명)도 과거의 인물로 여겨지는 평화로운 시대 가운데, 켄신(剣心)과 그 동료들은 과거에 친하게 지냈던 오쿠보 토시미치(大久保利通)와 면담을 갖는다. 오쿠보는 과거 신센구미의 검객이었던 시시오(志々雄)가 다시 교토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시시오는 켄신과 비교할만한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진 “그림자 살인마”(影の人斬り)였지만, 도바ㆍ후시미 전투에서 유신파가 승리한 후, 동료들에게 배반당해 죽은 후 몸이 불살라졌다. 그렇지만 시시오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져 교토에 잠입하여 메이지 정부에의 복수와 정부 전복을 도모하여 군사를 모으고 있다. 정부도 갖은 방법으로 이를 막고자 하였으나, 역시 믿을 수 있는 것은 켄신 밖에 없었다. 켄신과 오쿠보가 면담한 뒤 일주일이 지나, 오쿠보는 시시오가 이끄는 특공대 십본도(十本刀) 가운데 하나인 세타 소지로(瀬田宗次郎)에게 암살당한다. 시시오들 패거리에 희생물이 된 오쿠보와 경찰들로부터, 켄신은 과거의 자신의 잘못을 떠올리고, 교토로 향한다. 


켄신은 교토로 향하는 도중에 오다와라(小田原)에서 마키마치 미사오(巻町操)란 소녀와 만나 동행한다. 시시오 패거리들에게 습격받아 폐허가 된 마을에서 켄신은 시시오와 대치한다. 켄신은 시시오가 내보낸 소지로(宗次郎)와 싸운 끝에 자신의 칼이 부러져 버린다. 시시오는 은거지에 십본도를 집결시키도록 명령한다. 이들이 집결하면 정부 전복을 위한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켄신은 드디어 교토에 도착하여 요정 <아오이야>(葵屋)에서 오키나(翁)를 만난다. 켄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오키나는 자신과 미사오 등은 구 막부의 비밀조직이었던 <교토 탐색방>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비밀조직의 리더인 시노모리 아오시(四乃森蒼紫)는 지켜야 할 동료도 미워해야 할 막부도 없어진 가운데, 죽은 동료들에게 “최강”이라는 칭호를 바치기 위하여 켄신을 쓰러트리는 것이 유일한 생의 목적이 되었다. 미사오는 아오시를 사모하고 있어, 그의 본래의 목적도 모른 채 아오시가 찾고 있던 발도제를 아오이야에 데리고 온 것이었다. 

켄신은 오키나 등의 협력을 얻어 부러진 역날검을 만든 장인 아라이 샥쿠(新井赤空)가 있는 곳을 찾지만, 샥쿠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켄신은 샥쿠의 아들 세이쿠에게 부탁하여 새로운 칼을 만든다. 


켄신을 쫓아 교토의 거리에 도착한 카오루와 야히코는 켄신과 다시 만난다. 그러나 켄신은 십본도의 한 사람인 하리(張)와 싸우는 중이라 두 사람이 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다시 살인자로 되돌아갈까 주저하면서 제대로 칼을 뽑지 못하는 켄신이었지만, 마침내 칼을 뽑아 상대의 목에 일격을 날린다. 그렇지만 그 일격에 상대는 기절하여 쓰러지지만, 베인 상처는 없다. 샥쿠의 최후의 작품은 역날검이었으며, 세이쿠도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켄신에게 역날검을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즈음 시시오의 은거지에서는 드디어 시시오가 교토에 대화재를 일으킬 것을 명령한다. 경찰에서는 체포된 하리의 자백으로부터 교토 대화재 결행 일시를 알아, 켄신과 사이토는 시시오가 이케다야 사건의 재현을 계획하고 있다고 추측한다. 이케다야 사건이란 메이지 유신 이전에 신센구미가 유신파 인사들을 습격하여 살상시킨 사건을 말한다. 이 정보는 아오이야에도 통보되어 오키나와 카오르, 야히코 등은 함께 경비에 나선다. 밤하늘의 불꽃을 신호로 시시오의 부하들은 진격을 시작하여 교토 시내에 차례차례 불을 지른다. 경찰은 진압에 나서고, 사이토와 켄신도 나섰다. 화염에 싸인 교토 시가지 곳곳에서 싸움이 벌어진다. 


그때 오키나의 눈앞에 아오시가 모습을 나타낸다. 미사오는 아오시가 돌아온 것을 알고 곧바로 아오이야로 향해가지만, 이미 늦어 격전 끝에 아오시의 칼이 오키나를 쓰러트린 뒤였다. 정신을 잃은 오키나를 눈앞에 두고 아오시는 “나는 옛날의 시노모리 아오시가 아니다”라고 내뱉고는 방심상태의 미사오와 엇갈려 지나간다.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에서 시시오 세력은 점차 약해지지만, 켄신과 사이토는 이상함을 느낀다. 교토 대화재의 현장에 있어야 할 시시오와 십본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두 사람은 교토 대화재가 단지 제 일 단계에 지나지 않고, 시시오가 역사를 바꾸려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도쿄가 진짜 목표라는 사실을 눈치챈다. 


한편 싸움을 계속하는 카오루의 앞에 소지로가 나타나, 빈틈을 노려 납치한다. 그것을 바라본 켄신은 소지로를 쫓아가는데, 앞에 거대한 철갑선을 발견한다. 이 거함이야말로 시시오 일파가 몸을 숨기고 있던 군함 <연옥>이었다. 켄신은 즉시 배에 올라 타지만, 인질이 된 카오루 때문에 제대로 싸울 수 없다. 켄신은 시시오와 검을 겨우지만, 십본도 가운데 하나가 카오루를 바다에 던져버린다. 켄신은 재빨리 시시오의 칼을 피해 카오루를 따라 바다로 뛰어든다. 


지금까지의 스토리는 <바람의 검심: 교토 대화재 편>의 만화를 중심으로 소개하였다. 기본적으로 영화에서도 스토리는 동일하나, 다만 영화에서는 도쿄 대화재로서 끝을 맺는다. 


이 이야기는 물론 만화에서 만들어낸 가공의 이야기, 즉 픽션이다. 그렇지만 여기에 신센구미의 이야기나, 오쿠보의 암살, 교토 대화재 등의 역사적 사실을 적절히 배치하여 이야기의 흥미를 높였다. 나는 <바람의 검심> 만화도 모두 읽었는데, 사실 만화를 읽으면서는 별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영화는 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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