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23) 그라운드 제로
오늘은 박물관 투어이다. 뉴욕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러 박물관이 있지만, 시간 제약상 여러 곳을 볼 수는 없고, 한 곳만 가기로 하였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뉴욕 자연사 박물관>으로서,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의 무대가 된 곳이다.
아침 8시경 호텔을 나섰다. 호텔 주위에 있는 카페에서 가벼운 아침을 때우고, 지하철 역으로 갔다. 지하철 역이 매우 좁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하철 역 하나에 여러 곳의 출입구가 있고, 어느 출입구로 들어가더라도 안에서는 모두 만나게 되는데, 여긴 그렇지 않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니 좁은 지하실 같은 격리된 역이 나오고, 지하철 티켓 자동판매기가 두 어 개와 차를 타기 위한 개찰구가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지하철의 경우 노선도만 보면 행선지로 가는 방법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여긴 쉽게 알기 어렵게 되어 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겨우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센트럴 파크> 근처에서 내려 걸어서 센트럴 파크를 거쳐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박물관은 무척 넓었다. 입장권은 몇 종류가 있었는데, 앞으로 다시 올 기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가장 비싼 걸로 구입하였다. 두 사람 티켓을 합하여 백 불이 조금 넘었던 것 같다.
인디언 생활 유물, 고대 동식물 유물, 첨단 우주 관련 전시물 등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좋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기대만큼은 아니다. 차근차근 관람하려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그만 나가자는 집 사람의 성화에 아쉬움을 남기고 박물관을 뒤로하였다.
점심시간이 훌쩍 넘었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다. 오늘 점심은 스테이크로 하기로 하였다. 구글 지도를 검색하여 스테이크 전문 식당을 찾았다. 스테이크 식당은 처음이라 생소했지만 적당한 메뉴를 골라 와인을 곁들여 점심을 먹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저 그런 느낌이었다. 가격은 팁 포함 130불 정도.
다음 행선지는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이다. 이곳은 호텔에서 도보로 걸어갈 수 있는 정도의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라운드 제로는 바로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곳이다. 그라운드 제로란 원래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정말 파괴된 지역을 뜻하는 말인데, 9·11 테러 이후 이 테러로 파괴된 세계무역센터 지역을 일컫는 말로 널리 사용되었다. 9·11 테러로 높이 110층의 위용을 자랑하던 세계무역센터(WTC) 빌딩이 정말 파괴되었으며, 이후 다시 이 자리에 신축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9·11 추모 박물관 등이 건설되었다. 현재에도 이 자리는 여전히 <그라운드 제로>라고 불리고 있다.
<그라운드 제로> 근처에 대형 몰이 있다. 이곳은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내일이 귀국일이니까 선물이나 몇 가지 살까 하고 쇼핑몰에 들어가 봤지만, 그다지 살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빈손으로 가기도 그렇고 해서 아들과 딸, 사위에게 줄 간단한 선물 몇 가지를 샀다. 오늘은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벌써 날이 어두워진다.
호텔까지 천천히 걸어왔다. 실제로 와보니 이전에 말로만 듣던 뉴욕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첨단 도시라기보다는 오래된 낡은 도시라는 느낌이 오히려 더 강하다. 첨단도시라는 말은 오히려 우리나라 신도시에 더 어울린다. 세계 최고의 도시로서 많은 문명 유산을 안고 있는 뉴욕의 가치는 건물이나 도로 등과 같은 겉모습이 아니라 그것이 품고 있는 문화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적 가치는 나같이 하루 이틀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로서는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내일은 귀국날이다. 11시까지 JFK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그때까지 뉴욕을 가능한 한 많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