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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Feb 28. 2023

영화: 무릎과 무릎사이

한국 에로 영화의 명작

1980년대 초는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에로 영화의 봇물이 터진 시기였다.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가 집권을 하자 정치로부터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한 방편으로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억눌러왔던 성적 표현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함으로써 에로 영화의 제작이 급속히 늘어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에로 영화가 아주 조악한 것으로서 싸구려 삼류 영화라는 평을 들을 수밖에 없는 그런 것들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몇몇 영화는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는데, 오늘 소개하는 <무릎과 무릎사이>도 아주 괜찮은 영화라는 평을 들었다. 이 영화는 1984년에 제작되었다. 


1980년대 전반 이장호 감독은 아주 장래가 촉망되는 유능한 감독으로 인정받았는데, 그는 당시 남자배우로서 톱스타였던 안성기와 지난해 대종상 신인여배우상을 받아 인기가 상승 중인 이보희를 주인공으로 하여 <무릎과 무릎사이>에 이어 다음 해에는 <어우동>을 제작하여, 에로 영화에 있어서도 만만찮은 그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이 두 작품 모두 흥행에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자영(이보희 분)은 음대 기악과에서 플루트를 전공하고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난 그녀는 어릴 때부터 실력 있는 외국인 선생으로부터 플루트 개인 레슨을 받아왔다. 그런데 그녀가 어린 시절 레슨 선생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다. 집의 방 안에서 플루트를 레슨 하는 선생이 어린 자영을 의자에 앉혀 놓고 무릎을 어루만진다.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는 자영이었지만, 선생의 그런 행위에 어떤 성적 느낌을 갖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자영의 엄마(태현실 분)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는 선생을 내쫓고 자영에게는 크게 야단을 친다.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다. 

자영의 엄마는 성(性)에 대한 일종의 결벽증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옛날 남편이 경영하던 회사에 사환으로 일하는 여자 아이와 관계를 가져, 그녀를 첩으로 삼고, 그 사이에 딸까지 낳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남편은 아주 가끔 첩의 집에 들르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자영의 엄마는 남편의 첩에 대해 그렇게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녀가 남편의 첩이 된 과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남편이 비난을 받아야지, 회사의 사환으로 있다가 졸지에 사장의 첩이 된 아이는 오히려 피해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영의 엄마는 여기서 비롯된 결벽증으로 성을 죄악시하고 자영에게도 이를 강요한다.


자영에게는 조빈(안성기 분)이라는 남자 친구가 있다. 국악의 명인인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조빈은 퉁소를 불고 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서는 항상 단정한 모시 한복을 입고, 좋은 정원을 갖춘 한옥에서 퉁소를 불며 단아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아주 성실하고 모범적인 청년으로서, 항상 한점 흐트러짐도 없다. 그런 때문인지 성격도 물에 물탄 듯 그저 조용한 성격이다. 

자영은 어릴 적의 트라우마로 인해 무릎으로부터 이상할 정도로 성적 충동을 느낀다.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무릎을 만지거나 혹은 모르는 시선을 느끼기만 하더라도 성적 충동이 치밀어 오른다. 아름다운 자영의 옆에는 항상 남자들이 모여든다. 자영은 그런 남자들을 거들떠보려 하지도 않지만, 무릎에 자극을 받을 경우 마음과 달리 성적 충동이 끓어 올라 스스로 자제를 할 수 없다. 


조빈의 친구가 틈만 있으면 자영에게 다가온다. 자영은 그런 그를 물리치지만, 소나기가 내리는 어느 여름날 결국 무릎에 자극을 받은 그녀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그와 관계를 맺고 만다. 그러한 일이 있고 난 후 며칠 뒤 자영은 집으로 돌아가던 밤길에 괴한으로부터 습격을 받는다. 난행을 당할 순간 다행히 근처에 지나가던 사람이 있어 위기를 모면하지만, 이날도 역시 자영은 괴한의 습격을 받으면서도 스스로 성적 충동을 느낀 것을 자각하고 괴로워한다. 자영의 엄마는 그런 자영을 심하게 질책한다. 

자영은 스스로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시골로 간다. 시골집에 작은 방을 한 칸 얻어두고 근처 마을과 들과 산을 산책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그러게 평화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중 어느 날 외딴 숲에서 도시에서 놀러 온 몇 명의 날라리들에게 윤간을 당한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자영은 자신을 강간한 한 청년에게 협박을 당하여 다시 봉변을 당한다. 연속된 쇼크에 결국 자연은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가정부가 이를 빨리 발견하여 병원으로 급히 이송되고 자영은 겨우 살아난다. 


조빈이 찾아오지만 그녀는 이제 조빈을 볼 낯이 없다. 헤어지겠다는 뜻을 내비치며 조빈을 뿌리치고 혼자 걸어가는 그녀를 보며, 조빈은 쫓아가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이 영화는 에로 영화라고는 하지만, 과도한 노출이나 성적 장면은 그다지 없다. 그러면서도 관객에게 아주 풍부한 성적 상상을 제공한다. 에로 영화로서는 아주 수준급의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에 대해 한 마디 하자면, 

“조빈(안성기)이 못난 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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