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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Nov 13. 2021

가을 산책

(2018-11-03)송호 국민관광지와영국사 그리고 옥계폭포

가을이 깊어 단풍도 끝물이다. 집사람이 네이버에서 충남 영동에 있는 <송호 국민관광지>란 곳의 단풍을 추천한다고 가잔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가기로 했다. 경험상 이런 류의 명승지는 막상 가보면 대부분 실망한다.


송호 국민관광지는 영동군 송호리의 금강변에 있는 관광지인데, 집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아름드리 잘 생긴 소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죽죽 뻗어있다. 진한 소나무향이 코를 찌른다. 간간이 보이는 은행나무들은 노란빛을 더하고 있다. 수북이 쌓인 은행잎을 밟으며 금강변을 따라 걷는 기분도 괜찮다. 기대보다는 좋은 곳이다.


금강변에 조그만 둥근 기념비가 보인다. 1970년대 후반 상영된 영화 <소나기>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는데, 이를 기념하여 만든 비(碑)라고 한다. 황순원 작 <소나기>는 국민소설이라 해야 할 것이다. 중학교 교과서에 나온 만큼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소년과 소녀의 가슴 시린 애틋한 사랑 이야기. 좋아하면서 표현은 못하고 가슴속에 묻는 안타까움. 그리고 소녀의 죽음. <소나기>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는 당시 어린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진한 감동을 주었다. 한국인의 애틋한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문학작품이라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그럴까? 좋아하면서 가슴속에 묻어두고 그것을 표현 못하는, 안타깝고 애달픈 사랑이 과연 한국인의 정서일까? 우리의 가장 전통적인 사랑이야기, <춘향전>에서 이몽룡과 성춘향은 한번 만난 후 바로 합방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라 할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를 보더라도 마음이 통하면 바로 합방이다.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도 마찬가지다. <가루지기>쯤 가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사랑이야기에는 <밀당>이란 게 없다. <최진사댁 셋째 딸> 스타일의 직선적 어택이 한국인의 정서에 가깝다.


서로 좋아하면서 말은 못 하고 결국은 사랑을 놓쳐버리는 안타깝고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전통적인 일본인의 정서이다. 소설 <소나기>와 가요 <갑돌이와 갑순이>에서 나타나는 애틋한 사랑의 정서는 한국인의 정서가 아니라 일본인의 정서라 생각한다. 그것을 우리는 한국인의 정서라 오해하는 것이 아닐까?


20여 년 전 우연히 어느 일본인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이름은 잊었지만 아마 1920년대 경에 활약했던 작가로 기억하는데, 장편(掌篇) 소설 및 단편소설을 모은 소설집이었다. 그 작가의 소설들을 읽으면 마치 황순원의 단편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단문으로 끊어지는 문장은 물론이고, 표현방법, 그리고 <소년은.....>, <소녀는....> 식의 인칭 표현 등, 마치 황순원의 소설을 일본어로 읽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소나기 영화비 이야기가 너무 옆으로 빠져버렸다. 영국사(寧國寺)로 갔다. 영동군에 있는 천태산 허리에 있는 절이다. 산길로 들어서서 4.5킬로 정도 올라 가는데, 길 폭이 자동차가 겨우 한대 지나갈 정도다. 마주 오는 차를 만나면 낭패다. 앞에서 차가 오는 기색이 있으면 교차 통행이 가능한 곳을 찾아 기다려야 한다.

절은 아주 아늑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통일신라 초기에 처음 건립되었다고 하니 아주 오래된 절이다. 흔히 보는 다른 절처럼 불사(佛事)가 많지 않아 소박해 보인다. 절 아래쪽에 그야말로 거대하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의 큰 은행나무가 서 있다. 높이가 높을 뿐만 아니라 폭도 엄청 넓다. 나무 둥치의 둘레가 근 10미터는 되어 보인다. 지금까지 이만큼 큰 은행나무는 처음이다. 그 큰 나무가 온통 노란 잎으로 덮여 있다.


아래로 내려가니 설명서가 있다. 나무의 수령은 천년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31미터라 한다, 둥치의 둘레는 지상 1미터 정도 높이에서 11미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를 본 것만으로도 오늘 외출은 성공이다. 절 마당에 있는 단풍나무도 좋았지만, 은행나무의 감동이 너무 컸다. 자주 오고 싶은데, 산길이 장애물이다.


옥계폭포로 갔다. 옥천군에 있는 폭포인데, 높이가 꽤 높다. 주위의 경치도 좋다. 관광객도 거의 없어 조용히 즐기기에 좋다. 폭포 옆에 있는 작은 정자도 주위 풍경과 잘 어울린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가을이라 물이 적어 웅장한 폭포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을 폭포도 나름대로의 정취는 있다.


그동안 세종시에서 가까운 산이나 계곡에 여러 번 간 적이 있는데, 대부분 기대에 못 미쳤다. 그에 비하면 오늘은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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