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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r 05. 2023

영화: 비엔나 호텔의 야간배달부

사라지지 않는 유대인 수용소의 악몽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씻을 수 없는 범죄이다. 유대인 학살에 책임 있는 자들은 전쟁 후 전범으로서 체포되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기도 했으나, 그들 중 많은 자들은 세계 각지로 도피하여 숨어서 지내고 있다. 영화 <비엔나 호텔의 야간배달부>(The Night Porter)는 유대인 수용소의 학살 책임자로서 도피하여 숨어 살고 있는 나치 친위대 출신 장교와 그들과 우연히 만난 수용소 출신의 유대인 여성의 이야기로서, 이 영화는 1974년 미국과 이태리의 합작으로 제작되었다.  


1957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 있는 어느 호텔. 루치아는 교향악단의 지휘자인 남편과 함께 호텔에 투숙한다. 체크인 절차를 밟는 그녀를 보고 호텔 지배인 맥스는 깜짝 놀란다. 맥스는 나치 친위대의 장교로서 2차 대전중 유대인 수용소에 소속되어 있었다. 루치아는 그때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유대인 수용소의 가스실에서는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나치 친위대 장교들은 수용소에 수감된 대부분의 사람들을 가스실로 보내 학살하였지만, 젊고 예쁜 여자들은 따로 추려 그들의 여흥과 성적 욕망의 상대로 삼았다. 젊고 예쁜 루치아는 그렇게 나치 장교들에게 뽑혀 가스실로 가는 대신 나치 장교들에게 춤과 노래를 선사하고, 또 성적 노리개가 되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나치 장교들은 이렇게 자신들의 노리개가 된 루치아를 학대하였지만 맥스는 그녀를 마음속으로 사랑하였고, 또 그 스스로 루치아도 그랬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수용소의 나치 장교와 수감인이라는 위치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곳 비엔나에는 맥스를 비롯한 몇 명의 전직 나치 장교들이 숨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 연락을 취하며 수시로 회합을 갖고 자기들의 죄상을 증언할 사람이 나타나면 그들을 살해하는 모의를 하곤 하였다. 이들에게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여자 한 명이 비엔나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들은 신상에 위협을 느껴 루치아를 제거하려 한다. 그들은 맥스에게 루치아를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협박한다. 


한편 루치아는 오랜만에 우연히 다시 만난 맥스에게 끌린다. 그녀는 이곳에서 따로 할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남편을 혼자서 먼저 보낸 후 자신은 비엔나의 호텔에 남는다. 그리고 맥스와 사랑에 탐닉한다. 친위대원들은 맥스에게 루치아를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맥스는 사랑하는 루치아를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다. 나치 장교들의 살해의 위협 때문에 이제 맥스와 루치아는 호텔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두 사람은 호텔 속에 틀어 박혀 서로를 탐닉하고 있다.

친위대원들은 계략을 써서 이들을 호텔밖으로 불러내기 위해 호텔의 수도와 전기를 끊어버린다. 이제 맥스와 루치아는 더 이상 호텔에 숨어있을 수도 없게 되었다. 둘은 비엔나를 탈출하려 한다. 어느 옅은 안개 낀 새벽, 맥스와 루치아는 몰래 차를 타고 다뉴브 강을 건넌다. 다리까지 차를 타고 와서 차에서 내려 두 사람은 다리를 건너간다. 그 순간 어디선가 총성이 들려오면서 두 사람은 쓰러진다. 


영화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침울하다. 그리고 영화의 주요 장면 장면들이 과거 수용소의 일들과 오버랩되면서 새디스틱 한 분위기마저 풍긴다. 루치아는 과연 맥스를 진심으로 사랑했는가? 수용소 수감자란 신분과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친위대 장교 사이의 뒤틀린 사랑인가?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납치 사건에서 납치된 사람이 납치범에게 동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즉 한때 자신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절대자였던 범인에 대해 풀려나서도 그에게 호감을 갖는 현상을 말한다. 루치아가 가졌던 맥스에 대한 사랑의 감정도 이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나치 범죄자로서 도주한 자들은 전쟁 후 평생을 숨어 살았다. 이런 자들이 어떻게 함께 모여 자신들에게 위험이 되는 증인을 꼼짝없이 옭아맬 수 있을지 그것도 의문이다. 뭐, 영화이니까 그런 것은 너무 따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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