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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r 12. 2023

영화: 전쟁과 평화

문호 톨스토이 원작의 웅장한 전쟁 서사시

러시아의 작가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톨스토이이며, 톨스토이의 작품이라면 단연 <전쟁과 평화>이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세계문학을 많이 읽었지만, 이 <전쟁과 평화>는 읽어보지 못하였다. 전쟁과 평화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그동안 많이 영화화되었으리라 생각하지만, 뜻밖에 영화화된 경우는 드물다. 아마 워낙 스케일 큰 웅장한 작품이다 보니 제작에 소요되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큰 제약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전쟁과 평화>는 1956년 미국에서 제작된 바 있다. 헨리 폰다와 오드리 헵번을 주인공으로,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숫자인 600만 달러를 들여 영화를 만들었으나, 흥행에서는 실패했다고 한다. 다만 나타샤 역을 맡은 오드리 헵번은 맡은 역을 아주 잘 소화하였다고 절찬을 받았다고 한다. 


오늘 소개할 <전쟁과 평화>는 소련에서 1966-67년에 걸쳐 4부작으로 만든 영화이다. 당시 미국과 경쟁관계에 있던 소련은 미국에서 만든 <전쟁과 평화>를 보고 톨스토이의 위대한 작품을 망쳐놓았다고 하면서 자신들이 제대로 된 <전쟁과 평화>를 만들겠다고 하여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에 적성국인 소련에서 만든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좋은 평가를 받아 흥행에도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이 작품을 구매하여  높은 흥행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은 대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영화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이 영화에 투입되었다는 것이다. 대규모 전쟁 신 등을 위하여 연인원 8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투입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미국이 아무리 부를 자랑하지만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 많은 사람을 투입하고, 또 이들을 훈련시키는데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가야 되는데, 그것을 감당할 영화사는 아마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다면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겠지만, 그 시대는 모두 사람을 투입해야 되는 일이었다. 


일반 영화같이 아무 엑스트러를 그냥 투입해서는 되는 일이 아니었다. 전투 장면을 찍기 위해서는 엑스트러에게 군대진영 유지를 위한 훈련을 시켜야 하였고, 특히 기마부대의 전투를 위해서는 말을 타고 싸우는 훈련을 시켜야 했다. 그리고 기병 전투 중에 벌어지는 말이 넘어지고, 사람이 떨어지는 연기를 모두 직접 하였으므로, 더욱 고도의 훈련이 필요하였다. 이런 문제를 모두 극복하고 훌륭히 완성된 영화를 만드는 것은 당시 공산주의 소련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엑스트로로서 잘 훈련된 군인들을 투입하여 박진감 넘치는 전쟁 신을 촬영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4부로 나뉘어 있는데 러닝 타임은 1부가 거의 2시간에 가까우며, 2, 3, 4부도 각각 1시간 반 정도로 이루어져 있어 모두 합하면 거의 7시간에 가까운 대작이다. 


<전쟁과 평화>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이 이루어진 시점에서 러시아 귀족으로서 친구 사이인 안드레이 볼콘스키와 니콜라이 로스토프, 그리고 이들이 사랑한 나타샤의 인생 이야기이다. 길고 긴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기서 그 내용을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보인다. 이 영화를 보고 느낀 몇 가지 감상을 간단히 정리하고자 한다. 


먼저 이 이야기는 <전쟁과 평화>라는 고전 소설을 기반으로 하였기 때문인지 요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스토리의 극적인 전개는 그다지 보이지 않고 마치 큰 강물이 도도히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이야기 전개가 밋밋하다는 말도 된다. 요즘 영화는 스토리도 매우 자극적이고 빠르다. 여기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이야기의 전개가 느리고 큰 변화가 없어 약간 따분하기도 하였다. 


이 영화는 공산주의 일당 독재가 이루어지던 구소련 시대에 제작되었다. 이 영화가 촬영되던 무렵은 소련의 권력이 후루시쵸프에서 브레즈네프로 넘어가던 시절이었다. 스탈린 시대와 비교해서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철권통치가 이루어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런 영화가 제작될 수 있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가졌던 상식과는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구 소련이 정치적 자유는 물론 사회 및 문화적으로도 강력한 철권통치가 이루어져 왔다고 알고 있다. 과연 그러한 사회에서 이런 영화가 제작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우리가 알던 것보다는 소련 내에서 훨씬 더 폭넓은 자유가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전쟁과 평화는 러시아 귀족들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안드레이와 니콜라이는 러시아 왕실과도 가까운 귀족집안이며, 나타샤 역시 마찬가지이다. 러시아 민중들의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난민이 된 이들의 얼굴이 엑스트러로서 간간이 비칠 뿐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귀족들의 화려한 파티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영화를 통해 서구 귀족들의 화려한 파티를 많이 봤지만 이 영화에서 만큼의 화려한 파티를 거의 볼 수 없었다. 정말 사치의 극을 달하는 화려한 파티들이다. 왕실, 귀족, 그리고 그들의 화려한 파티는 공산주의의 이념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소련에 대해 가졌던 내 상식이 조금 흔들리는 느낌이다. 


톨스토이가 이 소설을 쓰던 시대는 귀족들의 시대였다. 그가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것은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한 당연한 일일 것이나, 이 영화가 제작될 무렵 소련을 통치하던 공산당과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아주 “반동적”인 모습이다. 그 시대에 이런 영화가 제작될 수 있었다는 것이 의아하다. 역시 우리가 소련 사회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세 주인공은 안드레이와 니콜라이, 그리고 나타샤이다. 그런데 영화의 웅장한 스케일 속에서 주인공의 캐릭터들이 너무 약한 느낌이 든다. 그냥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가는 그런 느낌이다. 요즘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아주 강하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에 비해 전쟁과 평화 속에서의 주인공의 역할은 너무 밋밋하다. 강력한 인상을 느낄 수 없다. 스토리 자체도 밋밋한 데다 주인공의 캐릭터도 약하다 보니 영화가 마치 서사시를 읽는 느낌이다. 

이 영화에서 전쟁신이 자주 나오는데, 전쟁신은 정말 볼만하다. 수많이 사람들이 직접 출연하여 촬영한 장면들인데 엑스트러의 훈련이 잘 된 때문인지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옛날 전쟁은 저렇게 치러졌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때까지 상상하던 전쟁의 모습과는 좀 다르지만, 주의 깊게 보고 생각을 해보면 역시 전쟁은 저렇게 전개될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이해가 간다. 


이 영화에 대해 프랑스 사람들은 나폴레옹과 프랑스 군대를 너무 나쁘게 그렸다고 화를 내곤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긴 오히려 프랑스 군대가 아주 관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야 그렇지 않지만, 1, 2차 대전은 물론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에 이르기까지 적군은 물론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 적지 않게 이루어졌다. 그런데 모스크바를 점령한 나폴레옹 군은 시민이나 포로들에게 그다지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병사 개인이 약탈을 하는 장면은 나오지만 군대가 조직적으로 사람을 학살하거나 약탈을 하는 장면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 불만을 가진 것은 그 시대의 통념으로는 점령군의 그 정도의 행동도 과도한 것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프랑스 인들이 당시의 전쟁의 참상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인지, 어느 쪽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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