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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r 27. 2023

영화: 바람의 검 신선구미(壬生義士伝, 미부기시덴)

가족 부양을 위해 신센구미에 입단한 시골 사무라이의 반생

영화 <바람의 검 신선조>는 막부 말기 교토(京都)에서 활동한 무장 조직 신센구미(新選組)에서 활약한 시골 무사의 일생을 그린 작품으로서, 2003년에 제작되었다. 이 영화의 원제목은 임생의사전(壬生義士伝, 미부기시덴)인데, 여기서 미부(壬生)란 신센구미의 본부가 위치하고 있던 교토의 지명이다. 그러므로 원제 <미부기시덴>은 미부 지역에서 활약한 의사(義士)의 이야기란 뜻이다.


이 영화는 아사다 지로(浅田次郎)의 소설을 기반한 것인데, 동지들과의 의리, 가족에 대한 사랑, 친구와의 우정 등을 중심으로 한 인간 드라마로서 평가받고 있는데, 원작 소설도 2000년에 시바다 간사브로(柴田錬三郎) 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는 2004년 일본 아카데미상의 최우수작품상, 최우수주연남우상, 최우수조연남우상, 우수감독상, 우수조연남우상, 우수조연여우상 등을 석권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 이야기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영화의 주인공이 활약한 조직 신센구미(新選組)에 대해서 알아보자. 250년 동안 일본을 통치해 오던 도쿠가와(德川) 가문의 에도 막부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통치력에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흑선(黑線, 쿠로부네)으로 상징되는 서구의 세력이 일본으로 밀려드는데, 막부는 여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쵸슈번(지금의 히로시마, 시모노세키 지역)과 사쓰마번(지금의 가고시마 지역)을 중심으로 막부는 이제 한계에 접어들었으며, 일본에 새로운 통치 제도가 들어서야 한다는 움직임이 활발이 일어났다.

이들은 막부를 쓰러트리고 천황을 정치의 중심으로 옹립하며, 오랑캐를 물리쳐 새정치를 실시하자는 “손노죠이”(尊王攘夷, 존왕양이)를 기치로 내걸었다. 이 당시 정치의 중심지는 교토(京都)였다. 에도(지금의 동경)에 막부가 위치하고 있었지만, 개혁파는 수도로서 천황이 거주하는 교토에 모여 막부타도 계획에 들어갔다. 이러한 개혁파에 맞서 막부도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교토로 공권력을 대거 투입하였던 것이다.


막부에 반대하는 개혁세력들을 보통 도막파(倒幕派) 혹은 토막파(討幕派)라 부른다. “막부를 쓰러트리자” 혹은 “막부를 치자”는 뜻이다. 교토에 개혁파 인사들이 대거 잠입하였다. 기존의 교토의 치안기관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들을 단속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막부는 개혁파들에 대한 무력진압을 강화하기 위해 동북지방에 위치한 아이즈(会津) 번의 군대를 투입하였다. 아이즈 번은 지금의 후쿠시마 지역이다. 그런데 군대라는 공권력만으로는 개혁파들의 활동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그래서 막부는 낭인들을 끌어모아 조직을 만들어 이들로 하여금 개혁파들을 공격하게 하였다. 그 조직이 바로 신센구미였다.


그런데 막부는 왜 군대 외에 신센구미란 사조직이 필요했을까? 군대라는 공권력은 어차피 법과 제도에 따라 권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개혁파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그들을 체포하여 제거할 수는 없다. 법에 따라 체포하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재판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번거로운 절차 없이 바로 폭력을 이용하여 개혁파들을 암살해 버리면 손쉽게 개혁파를 제거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막부가 조종하는 신센구미란 사적 폭력조직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우리나라 독재정권 시절 정치깡패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독재정권이 야당을 탄압하고 싶지만, 경찰과 같은 공권력으로는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야당 지도자의 선거 유세를 막을 수 없다. 그리고 눈에 거슬리는 야당 지도자에 대해 테러를 가할 수도 없다. 그래서 정권이 정치 깡패를 사주하여 야당의 집회를 습격하고, 야당 지도자에게 테러를 가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니까 신센구미란 우리나라의 정치 깡패와 비슷한 조직이라 본다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상으로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는 간단히 알아보았으니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자.  


때는 1899년 동경에 위치한 오노 의원에 어떤 노인이 머리에 열이 펄펄 나는 손자를 데리고 들어온다. 의원을 운영하는 오노 부부는 오늘로써 이곳에서 의원을 접고 만주로 갈 예정이다. 그렇지만 열이 나는 아이를 보고는 노인을 기다리라 하고 아이를 진찰실로 데려간다. 대기실에 혼자 남은 노인은 옆 책상에 놓인 사진틀에 무사 차림의 한 사나이가 찍혀 있는 사진을 발견한다. 그 사진의 주인공은 신센구미에서 검술사범을 하였던 동료 요시무라 칸이치로(吉村貫一郎)였다. 노인은 사진을 보면서 회상에 잠긴다.

막부 말기인 1868년 4월 1일, 도바ㆍ후시미(鳥羽・伏見) 전투에서 막부군은 패배하여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오사카에 있는 모리오카(盛岡) 번 저택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사무라이가 뛰어들어 온다. 그 사무라이의 이름인 요시무라 칸이치로(吉村貫一郎)


칸이치로는 모리오카 번에서 하급무사로 태어나 가난에 시달리다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아내와 자식을 남겨두고 모리오카 번을 떠났다. 이 당시 무사가 자신의 번을 무단으로 뛰쳐나간다는 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무거운 죄이다. 고향을 떠난 칸이치로는 교토로 가 신센구미에 들어가게 된다. 칸이치로는 순박한 인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의 절예를 익힌 뛰어난 검객이다. 신센구미에 들어간 그는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공을 세우면 반드시 공에 대한 돈을 달라고 요구한다. 주위의 동료들은 그들 수전노라고 경멸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가 그렇게나 돈에 집착하는 것은 고향에 남겨둔 식구들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돈을 위해 위험한 임무도 마다하지 않고 사람을 베어갔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는 어쩔 수 없어, 신센구미는 도바 후시미 전투에서 막부군에 가담하여 싸웠지만 끝내 패주하고 만다. 신센구미 대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주하였다나, 그런 가운데 유일하게 한 사람 칸이치로는 혼자서 수많은 적을 상대로 싸운다. 그러나 결국 온몸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칸이치로는 자신의 소속번인 모리오카 번의 저택을 찾아와 자신을 고향으로 보내달라고 간청을 한다.

저택의 최고 관리자는 칸이치로의 오랜 친구였던 오노 지로에몽(大野次郎右衛門)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칸이치로와 같은 하급무사였지만, 상급무사 집안에 양자로 가는 바람에 칸이치로와는 신분이 달라졌다. 그러나 오노는 상급무사가 된 후에도 여전히 옛날과 다름없이 칸이치로를 절친한 친구로 대했다. 칸이치로가 자신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번을 빠져나간데 대한 섭섭함도 있었지만, 그는 힘닿는 대로 칸이치로의 가족을 보살펴 주기도 하였다.


칸이치로가 자신이 관리하는 모리오카번 저택으로 뛰어들자 오노로서도 큰 낭패이다. 막부군의 일원으로서 관군과 싸웠던 칸이치로는 반군, 즉 역적이다. 그 역적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개혁파들에게 알려진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번 전체가 역적의 집단으로 몰리고 만다. 오노는 친구로서 칸이치로에 대한 우정은 변함없지만, 모리오카 번의 고위관리란 자신의 신분을 생각할 때 번을 위해서는 절대 칸이치로를 받아들일 수 없다. 모리오카 번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오노는 결국 칸이치로에게 무사답게 절복(切腹)을 하여 스스로 죽으라고 명한다. 칸이치로가 무사로서의 명예도 지키고 또 모리오카 번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다고 설득한다. 칸이치로로서는 가족이 애타게 그리운 그에게 스스로 자결하라는 친구의 말이 섭섭하지만, 결국 그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거둔다.


손자를 데리고 진찰실로 들어갔던 의사가 나와 노인에게 아이가 큰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라고 말한다. 회상에서 깨어난 노인은 칸이치로의 사진을 가리키며 저 사진이 어떻게 이곳에 있는지 물어본다. 그러자 의사는 자신은 칸이치로의 친구인 오노의 아들이며, 자신의 아내가 사진의 주인공인 칸이치로 딸인 치아끼(千秋)라 말해준다.


아주 좋은 정통 사무라이 영화였다. 상영시간이 두 시간이 넘는 제법 긴 영화였지만, 스토리가 탄탄한 데다 사건전개가 빨라 몰입하여 감상할 수 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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