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2세기 말 겐뼤이(源平) 전쟁으로부터 무사시대에 접어들어 전란이 이어졌다. 16세기의 전국시대(戰國時代)를 거쳐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에도 막부(江戶)를 세워 천하를 평정하기 전까지 끊이지 않고 전쟁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전란이 이어지다 보니 그 와중에서 수많은 영웅, 전사(戰士)가 등장하였다. 그러면 역사의 각 시점에서 등장하고 사라져 간 수많은 전사들 중 누가 가장 뛰어난 전사일까?
일본 최고의 전사로서 일본인들은 단연 사나다 유키무라(真田幸村)를 꼽는다. 전국시대인 16세기 중후반 시나노(信濃), 즉 지금의 나가노(長野) 현 부근의 작은 성주의 아들로 태어나, 전국시대를 헤쳐 나가며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와 그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頼)에 충성을 받친 끝에 <오사카 여름전쟁>(大阪夏の陣)에서 도쿠가와 히데야스 측에 패하여 전사한 인물이다.
사나다 유키무라를 주인공으로 한 일본 NHK 대하드라마 <사나다 마루>(真田丸)를 감상하였다. 이 드라마는 2016년에 NHK의 대하드라마로서는 55번째 방영된 드라마이다. <사나다 마루>란 도쿠가와 가와 도요토미 가 사이에서 벌어진 <오사카 겨울전투>(大阪冬の陣)에서 사나다 유키무라가 주장하여 오사카 성 앞쪽에 축성한 외성곽을 말한다.
사다다 유키무라는 시나노 지방의 작은 성주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시나노 지방은 지사무라이(地侍)라고 하는 수많은 작은 성주, 혹은 군사 세력들이 각각 작은 지역을 다스렸다. 전국시대라는 험한 시대에 이들이 가진 무력은 보잘것없었지만,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력은 북쪽의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 동쪽으로는 호조 우지마사(北条氏政) 가, 남쪽으로는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서남쪽으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오다 노부나가(職田信長) 등 천하 패권을 노리는 강력한 세력들이었다. 이들 세력들은 일본 전국의 패권을 잡기 위하여 전략의 요충지인 시나노 지방을 끊임없이 침범하였으며, 사다다 가 등 시나노 지방의 작은 군사 세력들은 시세에 따라 이편에 붙었다가 배반을 하고 또 저편에 붙는 등 곡예를 하듯이 전국시대라는 난세를 해쳐나갔다.
드라마 <사나다 마루>의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부분은 사나다 가문이 무가(武家)로서 이름을 떨치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사나다 마사유키는 카이(甲斐) 지방에 근거를 둔 다케다(武田) 가를 섬겨왔다. 그러나 다케다 가가 오나 노부나가(織田信長)에 의해 멸망당하자, 사나다 마사유키와 그 두 아들은 가문의 생존을 위하여 다케다 가를 멸망시킨 오다 노부나가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가 부하의 반란으로 생명을 잃자, 사나다 마사유키는 독립된 다이묘(大名)로 성장하기 위하여 비정한 책략을 동원하여 주위의 강대 세력 사이를 곡예를 하듯 헤엄쳐 다닌다. 특히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는 충성을 맹세하고는 배반하는 등 악연을 쌓아나간다. 격노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대군을 일으켜 사나다 가를 공격해오지만, 사나다 마사유키는 작은 병력으로 도쿠가와 군을 대패시킨다. 무장으로서 사나다 가문의 성가는 높아진다.
두 번째 부분은 사다다 가문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휘하에 들어가 활약하면서부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오다 노부나가가 죽은 후 그의 부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세력을 확대해간다. 사나다 마사유키와 그 아들들은 히데요시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히데요시군의 일원으로서 수많은 전공을 세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청을 받아 사나다 가문을 도쿠가와 가문의 수하에 둘 것을 인정한다. 히데요시의 허락을 받아 이에야스는 사나다 가문을 공격하나, 또다시 패퇴한다.
그러나 전투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현격한 힘의 차이로 결국 사나다 가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신하로 충성할 것을 맹세한다. 이후에도 사나다 마사유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충성과 배신을 거듭한다. 그러던 중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고, 천하의 패권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잡게 된다. 사나다 부자는 이에야스에 의해 유배를 간다.
세 번째 부분은 오사카 성 전투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계속 핍박을 당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와 그 생모 요도(淀, 본명 챠챠)는 마침내 도쿠가와에게 맞선다. 그리고 막대한 금은보화를 풀어 전국의 낭인들과 도쿠가와 가의 독주에 불만을 품은 옛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하들을 모은다. 이 소식을 들은 사나다 유키무라는 유배지에서 탈출하여 오사카성에 합류한다. 오사카 성 겨울 전투에서 도쿠가와 군과 팽팽한 접전으로 화평을 맺었으나, 다시 여름 전투에서 도요토미 가는 멸망하고, 사나다 유키무라는 전사한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 도쿠가와 군에게 계속 밀려 패전을 눈 앞에 둔 사나다 유키무라는 일대 결단을 내린다. 5,000의 군사를 끌고 도쿠가와 군의 중앙을 쳐서, 일거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진영에 난입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죽인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은 성공하여 중앙을 뚫은 사나다 유키무라는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바로 앞에 다가서서 총을 겨눈다. 그리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자신의 손에 죽어야 할 이유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 그 와중에 이에야스의 부하들이 덮쳐 유키무라는 이에야스를 죽이는데 실패한다.
참 멍청한 인간이다. 아무 말 않고 그대로 이에야스를 죽였다면 이겼을 전쟁을 왜 그렇게 주절대다가 적장을 살려 보내고, 전쟁에 패하고, 자신은 죽게 되는가? 물론 이 장면은 드라마가 만들어낸 가공의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지 모르겠다. 일본 제일의 전사 사나다 유키무라를 멍청이로 만드는 이야기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사나다 군이 본진을 덮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수비대를 방패 삼아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사나다 유키무라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마주 선 장면은 현실에서는 결코 없었다.
도요토미 가 멸망의 가장 큰 원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이자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생모인 오챠챠(お茶々, 히데요시의 생전 요도성에 살았으므로 요도(淀)라고도 한다)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들을 치마폭에 싸고도는 전형적인 극성 엄마 스타일이다. 도요토미 가와 도쿠가와 가의 대결 국면에서 중신들의 의견을 물리치고 아들을 편애하는 독단적인 결정으로 대사를 그르친다. 그리고 오사카 전쟁에서는 장수들의 의견을 물리치고 전략, 전술에 개입하여 싸움을 패전으로 이끌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토록 집착하던 아들과 결국은 자살의 길을 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