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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n 06. 2023

영화: 스파이 조르게

2차 대전 중 일본에서 활동한 희대의 스파이 이야기

적대적인 국가 사이에서는 상대방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전쟁이 진행되거나 전쟁의 위협이 고조될 시기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상대방의 정보를 캐내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많이 활용되는 방법이 스파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스파이는 상대 국가의 정보를 캐내는데 유력한 방법으로서, 이전부터 많이 활용되어 왔다. 2차 대전 전후, 그리고 냉전시대에 걸쳐 기축국과 연합국, 그리고 공산국가와 민주국가 사이에 스파이를 활용한 첩보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007 제임스 본드와 같은 스파이는 픽션이지만, 실지로 적극의 기밀정보를 빼낸 전설적인 스파이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스파이라면 북한의 간첩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스파이에게 급수를 부여한다면 북한에서 파견한 간첩은 삼류 스파이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스파이는 권력의 핵심에 접근함으로써 중요한 기밀정보와 접촉할 수 있는데, 북한에서 아무리 간첩훈련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남파되어 우리 정부의 권력의 핵심에 접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가 알고 있는 그런 정보를 모으는 수준에 불과할 것이다. 


그동안 전설적인 스파이로서는 여러 사람이 거론되지만, 제2차 대전 초기 일본에서 활동한 소련 스파이 ‘조르게’는 아마 스파이로서는 전설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서쪽에서 독일군의 침공에 대응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자신들을 공격해오지 않을까 고심하고 있었다. 일본이 동쪽에서 공격해 올 경우 러시아의 전력은 서쪽은 독일군, 동쪽은 일본군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러시아는 독일의 공격을 막기가 거의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조르게는 일본이 소련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정적인 정보를 소련에 전달하여 소련이 독일군과의 전투에 전력투구할 수 있게 하였다. 

유명한 스파이들: 소련스파이 죠지 블레이크, 이스라엘 울프강 로츠, 독일의 이사벨라 마타하리
스파이 조르게와 그를 도운 ㅇ자키 호츠미

그런데 상대방 국가의 권력의 중심부에 접근할 수 있는 스파이를 자체 내에서 양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아무리 스파이 훈련을 시키더라도 그들이 상대방 국가의 권력에 핵심에 접근할 인맥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이런 중요한 스파이는 권력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을 포섭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경우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포섭된 사람이 스파이로서 상대방 권력의 핵심에 접근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자신들이 직접 훈련시키고 양성한 스파이 요원이 아닌 만큼 그들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는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보원으로 포섭한 스파이가 가져오는 정보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가 애매해진다. 


영화 <스파이 조르게>는 1941년 가을부터 약 반년동안 일본에서 활약한 끝에 체포된 ‘리핼트 조르게’ 사건을 토대로 한 영화로서, 2003년 일본에서 제작되었다.  

사히 신문(朝日新聞)의 기자인 오자키 히데미(尾崎秀実)의 집에 경찰이 들이닥쳐 그를 체포해 간다. 그는 경찰에서 신문기자로서 얻은 정보를 소련의 스파이인 조르게에게 넘겼다는 이유로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오자키는 경찰의 취조에 자신의 한 일을 순순히 자백한다. 오자키는 동경대 법대를 졸업하고 바로 아사히 신문에 입사하여 기자로서 활약하였다. 그는 동경대 법대를 졸업하였기에 선후배, 동창 등의 막강한 인맥을 충분히 활용하여 권력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르게는 동양문화를 전공한 학자로서 중국에서 연구활동을 한다는 명분으로 스파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었으나, 소련에 포섭되어 스파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동양문화에 관한 뛰어난 저서를 몇 권이나 출판하였기 때문에 중국에 진출한 각국 기자 및 외교관들 사이에 유명 인사였다.  


어느 날 소련에서 그에게 일본으로 가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전쟁과 관련한 일본의 동향을 보고하라고 한다. 일본에 도착한 조르게는 중국에서 친하기 지낸 오자키 히데미와 항상 가까이하면서 그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는다. 그뿐만 아니다. 당시 일본과 독일이 동맹을 맺은 상황에서 조르게는 독일 국적이었기 때문에 일본 고위관리들로부터도 아주 호감을 샀다. 그리고 그가 쓴 동양문화에 관한 책들이 호평을 얻으면서 일본과의 관계를 더욱 긴밀화하려는 독일에서도 그를 독일-일본 친선 강화를 위해 활용하려고 한다. 그래서 주일본 독일 대사는 독일 대사관 내에 조르게의 사무실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인맥을 활용하여 조르게는 많은 정보를 수집하여 소련으로 보낸다. 그런데 막상 소련에서는 이런 고급정보를 접하고서도 이를 믿지 않는다. 그가 정말로 소련을 위해 일하는 스파이인지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조르게는 일본의 사교계와 문화계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점차 인맥을 넓혀가고 그를 통해 얻은 정보를 소련으로 계속 보낸다. 

조르게에게 정보를 주고 있는 오자키 히데미는 조르게가 스파이란 것을 알았을까? 알았다면 왜 정보를 주었을까? 오자키는 조르게가 스파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다. 그런데도 그에게 계속 정보를 준 것은 오자키가 일본의 침략전쟁을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조국이 저지르고 있는 불의의 전쟁을 제어한다는 생각에서 조르게에게 정보를 준 것이다. 


조르게가 송신하는 무전기 전파가 일본의 정보경찰에게 포착되면서 경찰은 수사를 시작하고 마침내 조르게는 체포된다. 조르게는 체포된 후 모든 사실을 자백한다. 이러한 초대형 스파이 사건은 불가피하게 외교적 문제를 야기한다. 소련에서는 조르게가 자신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인물이라고 하며 그를 버린다. 결국 조르게는 간첩죄로 사형에 처해진다. 


조르게는 소련에 아내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스파이 활동을 하면서 많은 여자들을 알게 되고, 그 가운데 한 여자와 결혼을 한다. 미야케 하나코(三宅華子)란 여자인데, 그는 조르게를 진정으로 사랑하였던 듯하다. 그리고 조르게 자신도 고국에 두고 온 아내와 일본에서 새로 결혼한 아내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조르게는 스파이 역사상 아마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활동은 007류와는 엄청 차이가 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007과 같은 스파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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