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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n 02. 2023

영화: 아멘(Amen)

홀로코스트를 외면하고 스스로의 이익만을 쫓는 교황과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

나치 독일에서 조직적으로 행해진 유대인 대학살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씻을 수 없는 비극으로 남아있다. 나치 정권은 홀로코스트를 자행하면서도 이를 비밀에 부쳤지만, 워낙 대규모로 이루어진 학살이었기 때문에 그 내용이 흘러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간간이 흘러나오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도 그 당시에는 누구도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영화 <아멘>(Amen)은 비극적인 홀로코스트를 중지시키기 위하여 나선 내부 고발자가 교황청을 통해 이를 세계 여론에 호소하고자 하였으나, 교황청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하여 이러한 내부고발을 무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홀로코스트를 방치하게 된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2002년 프랑스와 독일에 의해 공동 제작되었다. 


독일 친위대 장교 게르스타인은 유대인 수용소에서 대량 학살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이러한 비인륜적 범죄를 중지시키기 위해서는 교황이 이 사실을 규탄하고 전 세계의 여론을 모으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홀로코스트의 증거를 가지고 베를린 주재 교황청 대사관에 찾아가 리카도 신부에게 유대인 수용소에서 자행되고 있는 학살의 증거와 자신이 목격한 내용을 전달한다. 리카도는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바로 교황청으로 찾아가 교황을 알현하고 증거와 함께 대학살의 실태를 보고한다. 이 말을 들은 교황은 뜻밖에 시큰둥한 표정이다. 또 추기경 등 고위 성직자들도 나치 독일이 바티칸에 제정적으로 많은 협조를 하고 있는 점을 들어 독일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까지 한다. 그러면서 리카도 신부가 전달한 사실과 제시한 증거를 믿을 수 없다고 부정한다. 

다시 베를린으로 복귀한 리카도 신부는 교황 알현의 결과를 게르스타인에게 전하고, 아무래도 간접으로 전해 들은 자신이 교황에게 홀로코스트의 실상을 그대로 전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함께 교황을 알현하자고 제안하다. 게르스타인은 엄격한 감시망을 뚫고 리카도 신부와 함께 교황을 찾아간다. 교황은 그들과의 만남을 그다지 내켜하지 않으나,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겨우 교황을 만나는데 까지는 성공한다. 홀로코스트의 목격 당사자가 학살의 실태를 고발하는 마당에 교황은 더 이상 이를 부정할 수는 없으나, 이를 중지시키기 위한 행동을 취하는 것에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결국 게르스타인은 리카도 신부와 함께 소득 없이 다시 베를린으로 복귀한다. 


독일의 패전으로 홀로코스트의 실태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홀로코스트와 관계있는 인물들은 모두 전범으로 체포되었다. 게르스타인 역시 전범으로 체포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학살을 막기 위하여 노력한 사실을 말하며 무죄를 호소하지만, 그의 주장은 기각되고 결국 전범으로 처형되고 만다. 


흔히 비인륜적 범죄와 관련하여 “악의 평범성”이란 말이 자주 인용된다. 반인륜적인 극악한 범죄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 그에 가담한 많은 사람들의 경우 아무런 죄의식이 없이 마치 보통 사람들이 직장에 출근하여 일을 하듯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말한다. 나치는 수용소에서 한꺼번에 수백 명의 사람들을 가스실에 넣고 학살하였다. 사람들을 가스실로 데려가는 사람이나, 가스실의 가스 주입 단추를 누르는 사람은 그냥 매일매일의 일상적인 일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손으로 인해 수천, 수만 명의 사람이 죽어나가지만 정작 그 학살의 실행 당사자는 아무런 가책도 없이 그냥 그렇게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또 이런 장면도 나온다. 유대인 수용소에 매일 수용되는 사람은 많은데, 학살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사람을 대량으로 죽이기 위해서는 가스실로 넣어 독가스를 주입하는데, 그렇게 하더라도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과학자들에게는 더 좋은 독가스, 그러니까 더 빠른 시간에 더 효과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가스를 만들어내라 재촉하고, 과학자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독성이 강한 가스를 만들어내고는 자신이 만든 독가스가 더 좋다고 자랑하곤 한다. 그리고 수용소 소장들과 근무자들은 독가스 공급기지에 와서는 서로들 자신에게 더 많은 독가스를 배급해 달라고 조른다. 마치 군대에서 식량을 더 많이 타가기 위해서 다투는 것과 같은 광경이다. 


이런 악의 평범성은 우리 주위에서도 적지 않게 관찰된다. 광주항쟁 때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공수부대원들은 그냥 우리 주위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물론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고위층에 가장 큰 책임이 있겠지만,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학살한 사람들도 당연히 범죄자들이다. 그들은 지금도 우리 사회에 어느 곳에선가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독재정권시대에 민주인사들에 대한 고문에 가담했던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잡혀온 사람들에게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모진 고문을 하고서는, 돌아서서 자기네들끼리는 아들의 수능 성적이나 노모의 병환을 걱정하는 말을 주고받는다. 그들은 자신의 일상적인 “일”로서 이러한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가책도 못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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