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형 May 31. 2023

호구(虎口)와 오리(鴨)

한국, 중국, 일본에서 모두 사용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별난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 있으니 바로 "호구"(虎口)라는 단어이다. 한자 단어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는 범 아가리, 즉  "위험한 장소"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호구에서 빠져나왔다"라는 말은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이다. 이때의 호구란 "호랑이 굴"과 같은 뜻이다.


일본에서 호구란 대체로 성의 문을 가리킨다. 성의 문을 앞쪽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범의 아가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일본에서도 호구는 중국에서와 같은 "위험한 장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러한 용법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호구"란 말이 아주 독특한 뜻을 가지고 있다. "어리석고 멍청하여 모든 것을 빼앗기거나, 자신이 손해인지도 모르고 남이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호구 같은 사람을 "호구"라 한다. 다른 말로 바꾸면 "봉"(鳳)이라 하겠다. 봉은 아마 봉이 김선달의 일화에서 나온 말 같은데, 여하튼 호구나 봉이든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우리와 같은 의미론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말에서는 왜 호구를 보고 "호구"라 할까? 호구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바둑 용어이다. 바둑에서 상대방 돌을 잡으려면 상대방의 돌을 전후좌우 4방향에서 둘러싸야 되는데, 3방향이 둘러쳐져 있는 상태가 바로 호구이다. 만약 상대방이 호구 안에 돌을 놓으면 바로 상대방의 돌을 모두 감싸서 상대방 돌을 모두 잡을 수 있다. 그러니까 멍청하게 자신이 바로 죽는 줄도 모르고 호구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가리켜 "호구" 것이다. 호구 안에 돌을 놓으면 자기 돌은 몽땅 털리고, 상대방은 횡재를 하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도 호구의 원래 뜻은 위험한 장소를 일컫는데, 그곳에 겁도 없이 들어가는 자를 "호구"라 부르게 된 것 같다. 참고로 중국이나 일본에는 "호구"라는 바둑 용어가 없다.(정확히는 있긴 하지만 다른 뜻이며, 거의 사용되지 않은 사어이다.)

중국에서는 호구를 뭐라고 표현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카모"(鴨), 즉 오리라고 한다. 철새인 오리 떼는 밤에 먹이를 찾아 나섰다가 해가 밝으면 반드시 처음 있던 곳으로 되돌아온다. 오리 사냥꾼은 오리를 찾아 나설 필요가 없이 전날 오리가 있던 곳을 지키고만 있으면 돌아오는 오리를 쉽게 잡을 수 있다. 그래서 어수룩해서 호구가 되는 사람을 오리, 즉 "카모"라 한다.


1990년대 후반 축구 일본국가대표팀은 카모(加茂) 감독이 지휘하였다. 그는 다 잡은 듯한 월드컵 본선 티겟을 우리에게 빼앗겨 버렸다. 카모 감독은 정말 우리나라에게 호구가 되었다. "호구"(카모)를 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한 일본 축구협회의 미스가 아니었던가 생각한다.


요즘 우리나라의 어떤 멍청이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국제 호구 노릇을 하고 있다. 저 혼자 호구 노릇하는 것이야 내 상관할 바 아니지만, 우리 국민 전체를 "오리 떼"로 만들고 있으니 큰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연일 울분을 터트리고 있는 것이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내 친구들 만나면 그 멍청이 잘하고 있다고 박수를 치는 오리가  대부분이다. ㅠㅠ


나도 오리가 되는 느낌이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나인하프 위크(9½ Week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