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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y 19. 2021

드라마:아쯔히메(篤姫)

막부 말기,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간 여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세운 에도 막부(江戶幕府)는 15대 쇼군(將軍)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로 1867년 그 막을 내린다. 일본 NHK 대하드라마 <아쯔히메>(篤姫)는 1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徳川家定)의 정실부인인 아쯔히메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이다. 에도 시대 말기 쇄국 상태에 있던 일본이 서양의 여러 나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던 시대에 역사의 그늘에서 활약하였던 아쯔히메에게 초점을 맞춘 역사드라마이다.


홈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하여 부부의 일상, 가족과 주위 사람을 지키려는 아쯔히메의 노력 등이 잘 묘사되어 있다. 지금까지 방영된 여러 대하드라마 중에서도 가장 큰 인기를 끈 작품으로서 평균 시청률 24.5%라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지금까지 NHK가 방영한 약 60여 편의 대하드라마 가운데 인기투표에서 단연 1위를 기록한 작품이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정치와 군사에 중심을 둔 다른 대하드라마에 비해 재미도 덜하였고, 또 따분한 생각도 들었다.  

싸스마 지역

아쯔히메는 사쯔마번(薩摩藩)에서 태어났다. 사쓰마 번은 지금의 일본 규슈 최남단의 가고시마(鹿兒島) 현 지역이다. 사쯔마번은 대대로 시마즈(島津) 가문에 의해 다스려져 왔는데, 토자마 다이묘(外樣大名)로서는 드물게 봉토가 약 50만 석으로 상당히 강대한 힘을 지닌 번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수립하고,  봉토 별로 다이묘(大名)를 임명하였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직계 가문에 속한 다이묘를 <고산케>(御三家), 대대로 도쿠가와에게 충성을 받쳤던 다이묘를 <후다이 다이묘>(譜代大名),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패권을 잡은 후에 도쿠가와 측에 가세한 다이묘를 <토자마 다이묘>(外樣大名)라고 한다.

아쯔히메는 사쯔마 번주 시마즈(島津) 가문의 분가인 이마이즈미(今和泉)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바둑과 역사책 등을 좋아하며, 사내 아이들과 어울리며 활달하게 자라난다. 이 무렵 정치적 수도인 에도(江戶, 지금의 동경)에서는 후임 쇼군을 둘러싸고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사쯔마의 번주인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斉彬)는 자기가 다스리는 사쯔마 번에서 쇼군의 정실, 그러니까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왕비를 내세우려 한다. 그 계획의 일환으로 아쯔히메를 자신의 양녀로 삼고, 마침내 1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와 결혼을 시킨다.


사쯔마 번에서 그녀를 쇼군의 정실로 내세운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권력투쟁에서 자신들의 발언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이다. 아쯔히메도 이러한 번의 요구에 충실히 따르지만 이에사다와 부부의 연이 깊어지면서 사쯔마의 이익보다는 쇼군 가, 즉 도쿠가와 가문의 이익을 중히 여기게 된다.


19세기 후반 일본은 격동의 시기이다. 200백 년 동안 이어져오던 에도 막부의 통치력은 이미 한계를 드러내게 되고, 또 외부적으로는 흑선(黑船, 쿠로부테)으로 대표되는 서구 제국의 위협으로부터 일본 정국은 크게 동요한다. 이 와중에서 쇼군들은 이미 육체적으로도 허약해져 국가 내외부의 산적한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도 못하며, 또 직계 자손도 제대로 두지 못한다. 이렇다 보니 쇼군 자리를 둘러싼 권력투쟁도 한층 더 치열해진다.


사쓰마 번은 쵸슈(長州) 번과 함께 막부에 반기를 들고, 명치유신을 성공시키는데 앞장선 세력이다. 그렇다 보니 이 드라마에서는 막부 말 명치유신(明治維新)에서 활약한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오쿠보 토시미치(大久保利通)를 비롯한 카츠 카이슈(勝海舟),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등 일세를 풍미한 인물들이 속속 등장한다.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토시미찌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는 막부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최후까지 저항해보지만, 결국은 무신전쟁(戊辰戦争)에서 패하여 권력을 천황에게 넘기고 막부는 해체된다. 에도 막부의 쇼군이 거주하고 집무를 하였던 에도성(江戶城)은 말하자면 우리로 치면 왕이 거주하고 업무를 보았던 경복궁과 같은 곳이다. 막부가 권력을 천황에게 넘겨주었으니, 이젠 집도 비워주어야 한다. 우리나라 궁궐에 수많은 환관과 궁녀, 그리고 대궐 일을 보던 여러 직종의 사람들이 근무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쇼군의 거처였던 에도 성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살았던 쇼군의 측실들, 궁녀들, 그리고 성을 관리하던 많은 사람들이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아쯔히메는 이들이 저마다 살아갈 길을 마련해준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권력투쟁의 역사를 비교해 보고 우리 역사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의 권력투쟁은 각 영주들의 무력과 정정당당한 싸움으로 이루어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권력을 잡을 때,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잡을 때 그들은 힘과 권위로 자기를 따르는 영주들을 규합하고, 그리고 전쟁이라는 무력을 통하여 권력을 쟁취한다. 그 과정에서 각 세력들은 각자의 지도자에게 충성하며 혼연일체가 되어 싸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권력투쟁은 대부분이 정적을 모함하고, 누명을 씌우거나 함정을 파서 정적을 제거함으로써 권력을 쟁취한다. 이렇게 권모술수를 동원한 권력투쟁은 우리나라의 어떤 사극을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흑선
무진전쟁

왜 그럴까? 일본은 실력을 중시하고, 우리는 권모술수나 모함이나 음모라는 치사한 방식을 좋아하는가? 그게 아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권력투쟁의 프레임이 다른 것이다. 일본의 권력투쟁이란 것은 수많은 세력 중에 일인자, 그러니까 최종 승리자를 선발하는 게임이다. 그러므로 이 권력투쟁에 뛰어든 든 세력들은 스스로의 모든 역량을 바쳐 권력을 잡기 위해 힘쓴다. 그 역량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력>(武力)이라 할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역사에서의 권력투쟁은 이인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다. 항상 왕이라는 일인자가 있고, 그다음의 권력을 누가 차지하는가의 다툼인 것이다. 이런 이인자 자리를 둘러싼 투쟁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첫 번째로 무력의 사용에 제한이 있다. 일인자는 이인자 자리다툼에서 무력을 허용하지 않는다. 무력을 허용할 경우 그 무력이 자신에게 향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이러한 권력 투쟁에서는 일인자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일인자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이인자를 둘러싼 권력 다툼의 승패가 결정 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인자 자리를 둘러싼 경쟁은 일인자에 대한 충성 경쟁, 그리고 경쟁 상대방에 대한 모함 등의 권모술수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에도 막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일본 권력구조에서 권력투쟁 방식이 바뀌었다. 쇼군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은 없으며, 대개 이인자 자리를 노리거나 쇼군의 후계를 둘러싼 권력투쟁이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권력투쟁에서는 무력이 사용될 수 없으며, 자연히 음모와 술수의 중요성이 커진다. 드라마 <아쯔히메>에서도 이러한 변화된 권력투쟁의 편린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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