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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n 21. 2023

영화: 여배우(映画女優)

옛 인기 여배우 다나카 키누요의 일생을 통해 본 일본 영화의 발달사

우리나라도 유명한 영화배우들이 많았지만, 우리보다 영화의 역사가 길고, 또 영화 시장이 훨씬 컸던 일본에는 유명한 배우들이 적지 않았다. 다나카 키누요(田中絹代)는 20세기 전반 일본에서 활약한 대여배우이다. 다나카 키누요는 1909년에 태어났는데, 여명기부터 일본 영화계를 지탱해 온 대스타로 평가받고 있으며, 일본 영화사를 대표하는 대여배우 가운데 한 사람이다. 14세 때 송죽영화사에 입사하여 청순파 배우로서 인기를 얻어 송죽 영화사의 간판 여배우가 되었다. 무성영화부터 시작하여 1970년대 이르기까지 배우생활을 하였으며, 영화감독으로서도 6편의 영화를 제작하였다.   


영화 <여배우>(원제: 映画女優)는 다나카 키누요의 배우로서의 반생을 그린 작품으로서, 1987년 일본에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일본 문화청 우수영화로 선출되기도 하였으며, 인기 여배우 요시나가 사유리(吉永小百合)의 99번째 기념작품이기도 하다. 요시나가 사유리는 이 블로그에서 소개한 바 있는 <북의 제로년>(北の0年)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바 있다. 이 영화는 일본 아카데미상을 비롯하여 많은 영화상을 수상하였다.


이 영화는 여배우 다나카 기누요의 반생을 그리고 있어 어떻게 보면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우리가 흔히 감상하는 극영화와는 달리 극적인 사건전개가 없기 때문에 감상하다 보면 다소 밋밋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 여배우의 배우로서의 일생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의외로 몰입도가 있다.

배우 다나카 키누요(田中絹代)의 실제 모습

1925년 17세의 다나카 기누요는 가마타(蒲田) 촬영소에 채용된다. 그녀의 집에서 하숙을 하던 기요미츠 히로시(清光宏) 감독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요미츠는 젊은 감독으로서 주위로부터 촉망받고 있는 젊은 감독이다. 키누요의 큰오빠가 징병거부로 행방불명이 되었기 때문에 집안은 극빈한 상황이었다. 기누요가 배우로서 급성장하면서의 가족들은 기누요의 연기 생활을 위해 동경으로 집을 옮겼다. 상경에는 어머니인 야에, 언니인 다마요(玉代), 오빠인 하루지(晴次)와 요지(洋三), 백부인 겐지로(源次郎)까지 모두 오사카 생활을 끝내고 동행하였다.


집도 감독인 기요미치가 찾아주었다. 당시 일본의 배우들은 출연작품마다 출연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영화사에 채용되어 월급을 받는 샐러리맨들이었다. 기누요의 월급도 점점 높아져 보통 여주인공 이외의 조역 배우들의 월급이 10엔-15엔 정도였는데, 기누요는 파격적으로 30엔을 받았다. 그리고 기요미츠 감독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기누요에게 좋은 역이 떨어졌으며, 그로 인해 동료들의 시샘도 많이 받았다.

당시


기누요의 소질을 뚫어본 고쇼 히라노스케(五生平之助) 감독은 촬영소장 죠토(城都)를 설득하여 <부끄러운 꿈>(恥しい夢)의 주인공으로 발탁하였다. 자신이 발견한 신인을 라이벌에게 빼앗긴 기요미츠는 <부끄러운 꿈>이 완성된 후 강제로 기누요를 데려왔다. 기누요와 기요미츠 사이에 사랑이 불타올랐지만, 뛰어난 여배우를 잃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죠토의 제안으로 기누요와 기요미츠는 2년간의 시험결혼이라는 형태로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기요미츠는 여자 버릇이 고약하고, 또 기누요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여 이에 화가 난 기누요가 방바닥에 일부러 오줌을 싸는 것을 끝으로 이 동거생활은 파탄이 났다. 이를 계기로 기누요는 앞으로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기누요는 이후에 더욱 승승장구한다. <대학은 나왔지만>, <마담과 마누라>, <이즈의 춤추는 소녀>(伊豆の踊子) 등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프로 야구선수와의 로맨스도 있었고, 앞으로 평생에 걸쳐 그녀를 도와줄 매니저 겸 경호원인 나카마 젠기치(仲摩仙吉)도 고용하였으며, 대저택도 새로 지었다. 그러나 가정적으로는 불행한 일이 계속 생겨 언니가 애인과 야반도주했으며, 촬영소 일을 하던 오빠들도 직장을 그만두고 자멸의 길로 들어섰으며, 거기다가 항상 기누요를 지탱해 주던 어머니까지 사망한다.


기누요는 1940년 미조구치 겐지(溝内健二) 감독의 <나니와 온나>(浪花女)에 주연을 맡으며 연기에 새로이 눈을 뜨게 된다. 기누요가 맡은 주인공은 일본 예술의 한 장르인 분라쿠(文楽)를 공연하는 예인이다. 기누요는 분라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감독은 기누요에게 분라쿠에 대한 참고문헌을 산더미같이 가져다주면서 촬영 전까지 모두 읽으라고 한다. 몇십 권은 되어 보이는 참고서적에 기누요는 기가 질려 감독에게 반발한다.

“대본에 쓰여 있는 것을 감독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배우답게 잘 연기하면 되지 않아요? 쓸데없는 것은 필요 없어요.”

드디어 촬영에 들어갔다. 감독은

“다나카 씨, 이봐요 다나카 씨, 제대로 좀 해보세요. 마음을 몰입하여 성의 있게 연기를 해보세요”

라며 몇 번이나 연기를 반복하도록 시킨다. 그런 감독에게 기누요도 격렬하게 투지가 끓어올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하란 것인지 몰랐다.

“감독님, 가르쳐 주세요. 어떻게 해야 좋습니까? 뭔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라며 호소한다. 그러자 감독은

“당신은 배우지요, 그래서 그걸로 돈을 벌고 있지요? 그런 정도의 연기는 당연한 것 아닌가요? 나는 감독이니까 연기같은 것을 가르칠 수는 없어요.”

라고 대답한다.

기누요는 점점 미조우치를 존경하게 되고, 미조구치도 기누요의 재능을 높이 사게 된다.


1951년 가울 다시 미조우치로부터 출연교섭을 받은 기누요는 제목도 모른 채 교토에 찾아간다.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혼란해하던 미조구치는 <서학일대녀>(西鶴一代女)라는 영화에 자신의 영화인생을 걸고 그 파트너로서 기누여를 선택한 것이다. 기누요도 이제 나이가 들어 어떤 매스컴에서는 그녀를 노추(老醜)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하였다. 서로 호감을 가지면서도 영화를 찍기 시작하면 원수와 같이 격렬한 불꽃은 태우는 두 사람이었다. 기누요가 “낡은 사고방식은 버리고 새로운 방법으로 해보세요”라고 설득하면 감독은 반발한다. 찾아온 미조우치에게 기누요는 “찍고 싶은 대로 찍으세요“라고 간청한다. 기누요는 ”이 작품과 동반자살하려는 감독님과 함께 동반자살하겠어요“라며 의지를 불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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