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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n 24. 2023

영화: 하늘과 땅(Heaven and Earth)

베트남 소녀의 눈을 통해 본 베트남 전쟁, 그리고 미국에서의 생활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를 여러 편 감상하였는데, 대부분은 미국의 입장에서 베트남 전쟁을 본 것이다. 반전영화도 적지 않았지만, 그것도 대부분 미국의 입장에서 겪은 불행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의 무의미한 희생, 파괴되어 가는 인성 그리고 전쟁 후유증 등 그런 것이었다. 


나는 베트남 전쟁을 “어른과 아이가 싸우면서 어른이 일방적으로 아이를 두들겨 패는데, 그러다가 때리는 어른의 주먹이 아파서 그만둔 전쟁”이라고 비유한다. 이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미국이 만든 대부분의 반전 영화는 아이를 때렸던 주먹이 얼마나 아팠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주먹이 아파 싸움을 그만두었다면, 때리는 주먹이 그만큼 아팠을 터인데 맞는 사람은 얼마나 아팠을까? 이 맞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 베트남 전쟁에 대한 영화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영화 <하늘과 땅>(Heaven and Earth)은 베트남의 보통 사람이 경험한 베트남 전쟁에 대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하늘과 땅>이라 번역되었지만, 나로서는 <천국과 땅>이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베트남인들에게 있어서는 베트남이라는 땅은 하늘이 내린 평화와 풍요가 깃든 아름다운 땅이었다. 자신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던 그런 땅에 어느 날 영문도 모르는 사이에 프랑스 군대가 쳐들어오고 미군이 쳐들어온다. 평화스럽던 땅은 곧 지옥으로 변해버린다. 

자신들을 침략해 온 미국이란 나라는 어마어마한 나라이다. 주인공은 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간다. 주인공이 본 미국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사람들은 대궐 같은 집에 살며, 먹을 것을 비롯한 물자들은 넘쳐나고 있었다. 주인공은 자신은 천국에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천국도 실상은 천국이 아니었다. 


영화 <하늘과 땅>(Heaven and Earth)은 1993년 미국에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올리버 스톤 감독이 연출하였는데, <플래툰>(1986), <7월 4일생>(1989)와 함께 스톤 감독의 “베트남 전쟁 3부작”이라 일컬어진다. 이 영화는 레 리 헤이스립이 베트남 전쟁 당시 자신의 체험을 쓴 논픽션 <When Heaven and Earth Changed Places>와 <Child of War, Woman of Peace>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플래툰>과 <7월 4일생>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s://blog.naver.com/weekend_farmer/222834016459

https://blog.naver.com/weekend_farmer/222712445838


레 리 헤이스립은 항프랑스 전쟁 중에 베트남 중부의 “키 라”라고 부르는 농촌에서 태어났다. 영화에서는 다낭에서 몇 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영화에 비친 풍경을 보니 촬영은 북부의 닌빈 근처에서 한 듯하다. 이 마을은 남북 베트남의 국경선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과 그녀의 인생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전쟁에 휘말려 들어간다. 

레의 마을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농촌이다. 사방에 논이 펼쳐져있고, 그 논에는 항상 풍성하게 차있다. 레의 부모는 그곳에서 평화롭게 농사를 짓고, 레를 비롯한 아이들은 그 논 근처에서 물장난을 하면서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는 프랑스군이 들어온다. 그리고는 그들이 물러간 얼마 후에는 다시 미군들과 함께 미군의 통제를 받는 남베트남 군들이 들어온다. 


남베트남 군들은 악랄하기 짝이 없다. 베트콩을 숨기지 않았느냐, 그들과 내통하지 않았느냐 하면서 사정없이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고 연행해 간다. 미군들은 그런 베트남군들을 모른 척 방관하고 있다. 남베트남군들은 마을의 농민들에게 있어 악마나 다름없었다. 


어느 날 밤 베트콩들이 이 마을로 들어온다. 베트콩들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베트남이 미국에 의해 얼마나 괴롭힘을 받고 있는지, 미국의 힘을 등에 업은 남베트남군들이 죄 없는 양민을 얼마나 학살하고 탄압하는지 설명한다. 그리고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청년들은 베트콩에 합류하여 미국과 싸우자고 열변을 토한다. 레의 엄마는 레의 오빠 둘에게 기꺼이 베트콩에 합류하라고 권하고, 그날로 두 오빠는 베트콩을 따라나선다.  

얼마 후 레는 남베트남군의 움직임을 베트콩에게 알려주었다는 혐의로 남베트남군에게 체포된다. 그녀는 모진 고문을 받은 후 처형당할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처형을 앞두고 그녀는 갑자기 석방된다. 알고 보니 레의 엄마가 뇌물을 써서 그녀를 석방시킨 것이었다. 그런데 레가 마을로 돌아오니 동네 사람들의 반응이 싸늘하였다. 남베트남군에 끌려가면 거의가 처형당하기 마련인데, 레가 살아 돌아온 것은 베트콩에 대한 것을 밀고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부터 레의 집안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따돌림받기 시작한다. 레의 엄마가 두 아들을 베트콩에 보낸 사람이 마을을 배반하겠느냐고 호소하지만, 소용이 없다. 


마을 사람들의 냉대를 견디지 못해 레의 엄마는 마을을 떠나 도시로 가려고 한다. 그러나 레의 아버지는 조상들이 묻힌 이 땅을 떠날 수 없다고 하면서 끝내 마을을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레와 그녀의 언니, 그리고 엄마는 마을을 떠나 사이공으로 간다. 레와 엄마는 아인이라는 부잣집에 하인으로 들어간다. 아인은 젊은 레에게 눈독을 들이며, 레도 핸섬한 주인에게 반한다. 결국 레는 아인의 아기를 임신하게 되며, 이 사실을 안 아인의 아내를 레와 그녀의 엄마를 다낭으로 쫓아낸다. 레의 엄마는 절대로 욕심을 부리지 않을 테니 레를 아인의 첩으로 삼아달라고 애원하지만 소용이 없다.      


다낭에 간 레와 엄마는 장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장사가 뜻대로 되지 않아 엄마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다낭에 남은 레는 아기를 키우며 살아간다. 미군 쓰레기 장에서 일하기도 하며,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남배를 보자기에 싸 팔러 다니기도 한다. 그러다가 베트남 군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담배와 판 돈을 모두 빼앗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몸을 파는 일만은 절대 않던 레도 한 번은 얼굴이 익은 미군 헌병이 작전에서 돌아온 병사와 한 번만 자라면서 엄청난 돈을 제시하는 바람에 결국 매춘도 하고 만다. 그 뒤 레는 한국군 카지노에 취직을 하며 겨우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던 중 레는 우연히 미군 해병대의 고참 하사관 스티브 버틀러를 만난다. 처음에는 레는 스티브를 차갑게 대하지만 스티브는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결국 스티브의 집요한 구애에 그녀는 스티브를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결혼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민다. 그러나 전황은 나날이 악화되고 드디어 남베트남 정부는 붕괴되고 만다.


스티브가 전장에 나갔기 때문에 레를 챙겨줄 사람이 없다. 미군은 이제 모두 본국으로 후퇴하는데, 그녀가 아무리 미군의 아내라고 호소하여도 들어주지 않는다. 이제 절망이구나 할 순간 스티브가 나타나는 바람에 그녀는 아들과 함께 겨우 후퇴하는 미군 헬리콥터에 타게 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베트남을 떠나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미국에 도착하여 레는 스티브를 따라 스티브의 삼촌 집으로 간다. 그곳에서 당분간 함께 살기로 하였다. 미국이란 나라는 레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생과 사를 오가면서 제대로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던 베트남에서 미국에 오니 대궐 같은 저택은 바닥에 융단이 깔려있고, 환한 전등이 켜진 집안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스티브를 따라 마트에 가니 그 거대한 마트가 먹고 입을 것으로 가득 차있다. 쌀과 밀가루와 고기. 그 밖에 진귀한 물건들이 널리고도 널렸다. 레의 눈에는 자신이 천국에 온 것 같았다. 

레와 스티브 사이에 두 아들이 태어나 레의 식구는 이제 다섯이 되었다. 그런데 부부관계가 자꾸 틀어져 간다. 스티브가 제대로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스티브가 새로운 일을 할 것 같다고 하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대답을 않는다. 자꾸 캐물으니 결국 무기거래상이라고 한다. 레는 다른 일은 몰라도 무기거래상만은 절대로 안된다고 맹반대한다. 그러는 사이에 스티브는 점점 사람이 망가져 간다. 결국 레는 스티브와 이혼을 생각하고, 스티브에게 통보한다. 


스티브는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고백한다. 베트남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어떨 때는 하루에도 십여명을 죽인 적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레는 스티브를 위로하고 그를 다시 받아들이지만, 스티브는 잠시 후회하고는 다시 폭력적이고 문란한 생활을 계속한다. 레는 스티브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업을 시작하는데 사업은 점차 번창한다. 그러던 중 스티브는 결국 자살하고 만다. 레는 아이들을 데리고 의욕적으로 사업을 계속하여 상당한 부자가 된다. 


미국에서의 생활도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첫 아이는 이미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레는 베트남에 남은 가족이 보고 싶다. 그녀는 베트남의 집을 찾아가기로 한다. 돌아가면서도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걱정한다. 자신들을 그렇게 괴롭히고 죽이던 미군의 아내가 되어 철천지의 원수 미국 시민이 된 자신이 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걱정이 되는 것이다. 

마침내 옛 마을에 있는 가족의 집으로 왔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시고 늙은 엄마와 오빠가 살고 있다. 베트콩으로 간 두 오빠 중 큰오빠만 살아 돌아왔다고 한다. 다낭에서 매춘을 하던 언니는 보이지 않는다. 걱정과는 달리 마을사람들은 그녀를 냉대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환영하지도 않고 다만 호기심으로 그녀를 쳐다볼 뿐이다. 함께 온 레의 아이들도 처음에는 처음 만나는 외할머니와 외가 가족을 보면서 어색해하다가 차츰 그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녀를 덤덤하게 대하던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과  겨우 그녀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레의 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전쟁 중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모두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서로를 부등켜 주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며 다시 일어서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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