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가100만석의이야기(加賀百万石物語)
일본 NHK 대하드라마로서 2002년 1년 동안 방영되었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섬겨 카가번(加賀藩) 100만 석의 영주가 된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와 그의 처 마츠(松)를 중심으로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다룬 드라마이다. 카가 번이란 교토(京都) 북쪽, 우리나라의 동해와 연한 지역인 지금의 이시카와(石川) 현 지역이다.
이 드라마는 “전국시대를 무대로 한 홈 드라마”란 별명이 붙여졌다. 토시이에와 마츠,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와 그의 처 네네(寧寧), 그리고 삿사 나리마사(佐々成政)와 그의 처 하루(春) 세 부부의 교류와 경쟁을 축으로 드라마가 전개된다. 마츠가 주인공이다 보니 역사의 고비고비에 마츠를 등장시켜 그녀를 중심으로 사건이 흘러간다고 묘사하는 경우가 많아 역사 드라마로서 억지가 너무 많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특히 남편인 토시이에가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언제나 마츠가 나서 “그 일은 제게 맡겨주세요”하고 나서 일을 해결해버리곤 하여, 한 때 “그 일은 제게 맡겨주세요”하는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하였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부하로 들어간 토시이에는 동료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삿사 나리마사와 우정을 키워나간다. 이들은 남자들뿐만 아니라 아내들도 사이가 돈독하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가 도와주면서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우정을 키워나가며 출세해나간다. 그러나 토시이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오다 노부나가의 다른 부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출세가 늦다.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의 쿠데타로 오다 노부나가가 죽자 오다 가는 권력의 공백 상태에 빠진다. 이 틈을 제일 먼저 치고 나온 것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로서, 그는 속전속결로 구 오다 가의 권력을 독차지한다. 히데요시의 이러한 전횡에 맞서 오다 노부나가의 제일 중신이라 할 시바다 카츠이에(柴田勝家)는 반기를 드는데, 토시이에는 시바다 카츠이에 측에 가담한다. 그러나 시바다 카츠이에는 패하고 만다. 그렇지만 히데요시는 토시이에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고 자신의 제일의 중신으로 삼는다.
이후 토시이에는 히데요시의 신하이자 친구로서 히데요시와 관계를 이끌어간다. 히데요시가 전횡을 일삼는데 대해 누구도 말을 못 하지만, 그래도 토시이에가 그나마 조금씩 바른말을 하는 편이다. 토시이에는 카가번 100만 석의 영지를 받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마에다 토시이에와 함께 젊은 시절 우정을 나누던 삿사 나리마사는 히데요시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유배를 가고, 결국은 죽고 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으며, 그의 아들 히데요리를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기지만, 토시이에도 곧 사망하고 천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로 넘어간다. 마에다 가는 도쿠가와 가가 권력을 잡은 에도 막부 시대에도 카가 100만 석의 영주로서 번영을 누린다. 100만 석의 영지란 쇼군 가를 제외하고는 제일 큰 영지이다.
이 드라마에서 또 하나 흥미 있는 부분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의 측실 차차(茶々)의 관계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 이치(市)는 일본 최고의 미녀라 일컬어졌다. 그런 이치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짝사랑을 한다. 그러나 주군의 여동생인 이치가 천한 신분에서 겨우 출세를 시작한 못생긴 히데요시에게 눈길조차 줄 일이 없다. 그뿐인가 항상 사루(원숭이), 사루 하면서 멸시를 한다. 그런 이치가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와 정략결혼을 하는데, 나가마사가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하자 노부나가는 히데요시에게 명하여 아자이 나가마사를 치게 한다. 아자이 나가마사는 패하여 자결하고, 이치는 불타는 성을 뒤로하고 세 딸을 데리고 성을 나온다.
오다 노부나가가 죽자 이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견제하기 위해 오다 가의 제일 중신인 시바다 카츠이에(柴田勝家)와 재혼을 한다. 그렇지만 역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전투에서 패한 카츠이에는 스스로 성을 불사르고 이치와 함께 자결한다. 남겨진 세 딸은 성을 나오고, 히데요시가 이들을 거두어 키운다. 이치의 이 세 딸 가운데 장녀가 바로 차차이다.
히데요시는 차차를 측실로 삼으려고 갖은 수단을 쓰나 차차는 계속 거부하다가 결국은 측실이 될 것을 허락한다. 차차는 히데요시의 측실이 되기 전에나 된 후에나 늘 히데요시를 멸시한다. 아버지와 양아버지의 원수이자 어머니의 원수이기 때문이다. 히데요시가 나중에 노망이 들어 죽어갈 때까지도 차차는 히데요시를 미워하고 멸시한다. 다른 드라마의 설정과는 좀 다르다. 차차는 요도(淀)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히데요시로부터 거처로서 요도성(淀城)을 받아 거기서 살았기 때문이다. 차차는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낳고, 아들을 치마폭에 감싸고돈다. 그러다가 결국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아들과 함께 자살한다.
그럼 이치의 나머지 두 딸, 즉 차차의 동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첫째 동생 하츠(初)는 명문인 쿄고쿠(皇極) 가에 시집을 가서 평생을 행복하게 잘 살았다. 그리고 막내 동생 고우(江)는 온갖 영화를 다 누렸다. 그녀는 두 번의 이혼을 거친 후, 정략결혼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3남인 도쿠가와 히데타다(德川秀忠)에게 시집을 갔다. 히데타다는 이에야스의 뒤를 이어 제2대 쇼군이 된다. 그리고 그녀가 낳은 아들은 제3대 쇼군이 된다.
그뿐만 아니다. 첫째 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즉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처가 되며, 그 외의 딸도 마에다(前田)가 등 좋은 집안으로 시집을 간다. 이 정도는 약과다. 다른 딸은 관백(우리나라로 치면 국무총리)의 처가 되며, 다섯째 딸은 천황에게 시집을 가 황후가 된다. 그리고 그 딸이 낳은 고우의 외손녀는 천황이 된다. 일본 역사에서 이 여자만큼 영화를 누린 여자도 아마 없으리라. 정리하면 그녀는 즉, 쇼군의 며느리이자, 쇼군의 처, 쇼군의 어머니가 되었고, 천황과 관백(국무총리)의 장모가 되었으며, 천황의 할머니가 되었다.
고우를 주인공으로 한 역사드라마도 몇 년 후 <고우~아가씨들의 전국>(江〜姫たちの戦国〜)이란 제목의 NHK 대하드라마로 방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