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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l 13. 2023

영화: 1000일의 앤

딸의 장래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 영국의 왕비

16세기 초 약 40년에 걸쳐 영국을 통치하였던 헨리 8세는 종교 개혁, 영국 국교회 수립, 중앙집권의 강화 등 많은 치적을 기록했으나 그의 사생활은 복잡한 여성 편력과 여섯 번의 결혼으로 상당히 복잡하였다. 영화 <1000일의 앤> (Anne of the Thousand Days)은 헨리 8세와 그의 두 번째 왕비인 앤과의 사랑과 증오를 그린 역사 드라마이다. 이 영화는 1969년 미국에서 제작되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도 많았지만 아카데미 상 10개 부문에서 후보로 올라 의상 디자인상을 받았다. 이 영화의 기초가 된 희곡 <1000일의 앤>은 1948년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으로 첫 공연된 이래 288일에 걸쳐 롱런하였다. 이러한 연극의 대성공에 힘입어 바로 영화제작에 착수하려 하였으나, 이 희곡에 포함된 불륜, 사생아, 근친상간 등의 요소가 미국 영화제작 윤리강령에 저촉된다고 하여 영화화까지는 20년의 세월이 필요하였다고 한다.


16세기 영국의 국왕 헨리 8세는 일찍 세상을 뜬 형의 아내 캐서린과 결혼하여 딸 하나를 두고 있었다. 그렇지만 헨리 8세는 캐서린을 거의 거들떠보지 않는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헨리 8세는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고 있었는데, 캐서린은 아들을 낳지 못한 데다 그보다 나이도 위여서 그의 관심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헨리와 케서린 사이에서 태어난 딸 메리는 나중에 헨리 8세 사후 영국의 여왕이 된다. “피의 메리”라고 불릴 정도로 잔혹한 통치를 펼쳤던 메리 1세가 바로 그녀이다.  

어느 날 헨리는 궁정 무도회에서 18세의 앤 브린을 처음 보고 그녀에게 반한다. 그러나 앤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데다가 그녀의 언니가 헨리의 애인으로서 서자를 낳기도 하여 앤은 그의 구혼을 거부한다. 앤으로서는 자신이 왕의 아들을 낳더라도 아들이 서자가 되어 천대받게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왕은 포기하지 않고 계략을 서서 앤의 약혼을 파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캐서린 왕비의 궁녀로서 궁전으로 나오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앤은 왕의 애인이 되어 서자를 낳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정말 헨리가 자신과 함께하고 싶다면 정식 왕비로 맞아들이라고 압박한다. 결국 앤과 결혼을 원했던 왕은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과 결혼하겠다고 마음을 굳힌다. 자신이 만약 이혼하면 결혼하겠냐고 묻는 왕에게 앤은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당시 영국의 종교는 가톨릭이었는데, 가톨릭은 아내에게 심각한 문제가 없는 한 이혼을 금하고 있다. 헨리가 캐서린과 이혼을 하기 위해서는 로마 교황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헨리는 교황의 허락을 받기 위하여 우르지 추기경을 파견하지만, 그는 교황의 허가를 받는데 실패한다. 헨리는 노하여 우르지 추기경을 해임하였을 뿐만 아니라 로마 교황청과도 결별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영국은 가톨릭과 거리를 둔 영국 국교로 종교를 바꾼다. 이러한 왕의 결단에 감격한 앤은 드디어 왕의 구혼을 받아들인다. 이미 왕의 아기를 임신한 앤과 헨리는 결혼식을 올린다. 헨리와 앤은 거창하게 결혼식을 올리지만 사람들은 앤을 두고 “왕의 매춘부”라며 욕을 한다.

몇 달 뒤 앤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를 낳는다. 그러나 그 아기는 왕이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이 아니고 딸이었다. 딸에게는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헨리는 앤이 딸을 낳은 것에 낙담하여 앤과의 사이가 조금씩 벌어진다. 헨리의 관심은 이제 앤으로부터 앤의 궁녀인 레이디 제인 시모어로 옮겨간다. 그것을 눈치챈 앤은 제인을 궁정에서 쫓아낸다. 이어 앤은 다시 임신하는데, 이번 아기는 남자였으나 사산을 하고 만다. 궁정을 쫓겨난 제인 시모어는 나중에 앤의 뒤를 이어 왕비가 되는데, 그녀는 아들을 낳아 그 아들은 헨리 8세가 죽은 후 그의 뒤를 이어 영국 왕으로 등극한다. 바로 에드워드 6세이다.


헨리는 대법관 토머스 크롬웰에게 명령하여 앤을 쫓아낼 방법을 강구하게 한다. 크롬웰은 앤의 하인을 고문하여 왕비가 간통을 하였다는 증언을 받아내고, 또 4명의 궁정 관리를 왕비와 간통하였다는 죄목으로 체포한다. 앤은 런던탑에 감금되지만,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대단치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이 오빠와 근친상간의 죄로 체포되었다는 사실에 이르자 드디어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다.


앤은 재판에서 간통을 자백한 하인 마크 스미턴을 심문할 기회를 얻어, 그 증언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하였다. 그날밤 앤을 찾아온 헨리는 결혼을 무효로 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석방시켜 주겠다고 제안하지만 앤은 거절한다. 그것은 자신의 딸 엘리자베스를 서자로 강등시킨다는 말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드디어 앤은 참수형을 받는다. 형이 집행되고 있을 때 헨리는 제인 시모어와 결혼하기 위하여 그녀의 저택을 향하고 있었다. 앤의 처형을 알리는 대포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엘리자베스는 궁전의 정원에서 걷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 영화는 앤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그럼 그 뒤는 어떻게 되었을까? 헨리 8세는 앤이 죽은 후 앤의 시녀였다가 쫓겨난 제인 시모어를 새로운 왕비로 맞아들인다. 제인 시모어는 헨리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아들을 낳았지만, 그녀는 아들을 낳은 후 곧 죽는다. 그리고 이후에도 헨리 8세는 여러 명의 왕비를 맞아들인다.


헨리 8세가 죽자 제인 시모어가 낳은 아들이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바로 에드워드 6세이다. 에드워드 6세는 상당히 똑똑한 왕으로 평가되지만, 불행하게도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에드워드 6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이 바로 헨리 8세의 첫 번째 왕비 캐서린이 낳은 메리였다. 바로 메리 1세이다. 메리 1세는 결혼을 하였지만 아이를 갖지 못하였고, 그녀가 죽자 앤의 딸인 엘리자베스가 왕위에 오른다.


헨리 8세는 여러 명의 아들과 딸을 두었지만 적자는 에드워드와 메리, 그리고 엘리자베스였다. 이들 세 적자는 모두 영국 왕위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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