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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l 26. 2023

영화: 묵동기담(濹東綺譚)

저명한 소설가와 창녀의 사랑 이야기

20세기 초중반에 활약했던 일본의 소설가로 나가이 카후(永井荷風)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뛰어난 작가였지만 독특한 성격과 문학관으로 다른 작가와는 거의 어울리지 않아 문단에서는 이단자로 취급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작가로서의 능력과 그의 작품의 작품성을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문화 훈장을 수여받은 바 있으며, 일본 예술원의 회원이기도 하였다. 그는 1937년 묵동기담(濹東綺譚)이란 소설을 발표하는데, 여기서 묵동이란 과거 동경 스미다 강(隅田川) 근처에 있던 사창가 동네를 일컫는 지역이다. 지금의 우에노(上野) 근처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나가이 카후와 그의 작품

영화 <묵동기담>(濹東綺譚)은 나가이 카후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1992년에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세상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소설가 오에 타다스(大江匡)와 창녀 오유키(お雪)의 만남과 이별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오에 타다스는 다른 작가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라 마치 필자인 카후 자신을 묘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보통 기담이라면 한자로 奇譚, 즉 "기이한 이야기"란 뜻으로 쓴다. 그런데 이 영화는 "綺譚", 즉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뜻이다.   


유명한 작가이긴 하지만 괴팍하여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소설가인 오에 타다스는 (大江匡)는 <실종>이란 제목의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그 내용은 51세의 나이로 퇴직한 영어 교사가 퇴직금을 가지고 실종되어, 카페에서 일하는 여자에게 몸을 의탁한다는 내용으로 주인공이 몸을 숨기는 장소를 무코지마(向島, 스미다강 부근 지역) 근처로 설정한다. 

오에는 어느 날 산책 삼아 무코지마 근처를 둘러본다. 그러던 중 갑자기 큰 비가 쏟아져 오에가 우산을 펴자 가벼운 옷을 입은 여자가 우산 안으로 들어온다. 이곳에는 타마노이(玉の井)라는 사창가가 있다. 오에의 우산 안으로 들어온 오유키(お雪)는 이 사창가에 있는 창녀로서, 오에는 오유키가 끄는 대로 그녀의 방으로 들어간다. 


이를 시작으로 오에는 오유키에게 종종 들러 점점 친숙해져 간다. 오유키는 오에를 포르노 작가 정도로 알고 있다. 어느 날 오유키는 오에에게 자신이 빚을 다 갚으면 결혼해 달라고 말을 꺼낸다. 오에의 나이는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며, 오유키는 20대 초반이다. 그런 오유키의 말에 오에는 부담을 느끼며 자신은 오유키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고 완곡하게 거절한다. 그렇지만 오유키는 점점 더 결혼을 조른다. 


오유키가 있는 창가(娼家)에는 창녀라고는 오유키 혼자이다. 포주는 나이가 든 중년 여자인데, 나쁜 사람은 아니다. 항상 오유키가 잘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지만 그 포주도 많은 돈을 주고 오유키를 사 왔기 때문에 그녀를 그냥 내보낼 수는 없다. 오유키가 자신에게 진 빚을 모두 받아야 한다. 

포주에게는 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하나 있다. 이 아들이 징집영장을 받았다. 포주는 오유키에게 아직 여자 경험이 없는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밤을 함께 해달라고 부탁하며, 오유키는 그 부탁을 받아들인다. 오에에게 결혼을 해달라는 오유키의 요구는 점점 높아진다. 그럴수록 오에의 부담감은 커진다. 


포주에게 군대에 끌려간 아들이 전사하였다는 통보가 전해온다. 오직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포주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잃은 기분이었다. 이제 자신은 더 이상 현실에 얽매일 것이 없다. 모든 것이 허무해진 그녀는 오유키를 불러 이제 자신에 대한 빚은 없는 것으로 할 테니까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로 하라고 한다. 그렇지만 오유키는 그 집을 선뜻 떠나지 못한다. 오에는 이제 거의 발길을 끊다시피 하였다. 그러던 중 오에는 오유키가 병원에 입원을 하였던 소식을 듣는다. 오에는 더 이상 타마노이를 찾지 않는다. 


동경에 폭격이 시작되었다. 몸을 피하여 시골로 피난해 있던 오에는 전쟁이 끝나자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크고 화려했던 그의 저택은 폭격으로 잿더미로 변했다. 파괴된 집 앞에 선 오에가 절망 속에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사창가를 무대로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전혀 어둡다거나 비참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사창가를 무대로 한 영화에서는 으레 나올 법한 폭력, 착취 등의 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포주도 마음씨 좋은 아줌마 같은 평범한 중년 여성이다. 오유키와 포주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모녀처럼 다정해 보이기도 한다.  


오유키는 포주에게 1,300엔의 빚을 지고 있다. 그런데 오유키가 손님을 한번 받은 후 받는 돈은 70 전이다. 아휴, 그 빚을 다 갚으려면.... 여기서 오유키는 오에에게 결혼하자고 조르면서도 돈을 요구하거나 자신의 빚을 대신 갚아달라는 말을 않는다. 자신이 혼자 힘으로 빚을 다 갚을 것이니, 그런 후에 결혼을 하자는 것이다. 뭔가 좀 다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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