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5 관매도에서
배는 팽목항을 출발한지 두 시간 정도가 지나 관매도 항구에 도착하였다. 팽목항에서 20킬로 조금 넘는 거리이지만, 도중에 여러 섬을 들러 오기 때문에 시간이 두 시간이나 걸리는 것 같았다. 관매도는 면적이 4평방 킬로에 주민은 150가구에 250명 정도라 한다. 1973년에는 300가구에 1,900명 정도였다니까 그 사이에 인구가 많이 줄어들었다. 인구는 거의 1/8로 줄어든데 비하여 가구수는 1/2정도로 줄어들었으니까 가구당 가족수가 크게 적어졌다. 노인 혼자 사는 가구가 많은 것 같다.
배에서 내리니 포구 앞에 우체국을 겸한 대합실 건물과 편의점이 한 개 있을뿐이다. 돌아갈 배 시간을 확인하러 대합실로 가니 운항정보에 관한 아무런 자료도 없다. 할 수 없이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이런! 마지막 배가 지금부터 2시간 30분 후이다. 집사람에게 섬에서 숙박을 할까 물었더니 숙박준비를 해오지 않아 안된단다. 할 수 없이 이 2시간 반을 충분히 활용하여 관매도 관광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당초 섬에 올 때 우리가 타고온 배 뒤로 3시간 뒤에 또 관매도행 배가 있었으므로, 그 배도 우리가 타고온 배보다 훨씬 뒷 시간에 관매도를 출발하여 팽목항으로 귀항할 것으로 짐작했으나, 그 짐작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여행정보를 꼼꼼히 확인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관매도에는 관매팔경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가기 좋은 곳이 섬 남쪽에 있는 <돌묘와 꽁돌>과 이를 지나 있는 <하늘바위>이다. 팽목항으로 가는 배가 오후 2시 20분에 있으므로, 관광을 하다가 오후 1시가 되면 무조건 항구로 돌아오기로 하였다. 항구는 섬의 북쪽에 있고, <돌묘와 꽁돌>과 <하늘바위>는 섬의 남쪽에 있다. 그래서 거기로 가기 위해서는 섬을 가로질러 가야하는데, 다행히 섬 양쪽은 높은 산이지만, 섬 가운데는 비교적 낮은 언덕으로 되어 있다.
섬을 가로지르기 위해서는 마을을 통과하여야 한다. 마을 옆에 있는 언덕들은 대개가 밭이다. 재배하는 작물을 보니 쑥이다. 이곳 관매도의 특산물은 미역과 톳인데, 이 외에 여기서 재배되는 쑥이 인기가 있어 쑥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대개 노인들인데, 한창 쑥을 수확하고 있다. 쑥이 많이 재배되기 때문에 여기서는 쑥막걸리를 많이 담근다고 한다. 마을을 지나다보니 길 옆에 카페가 하나 있고, 쑥막걸리를 판다는 표시를 해두고 있다. 가면서 한잔씩 할 요랑으로 카페에 들렀더니 문이 잠겨있고 영업을 하지 않는다. 쑥막걸리 맛을 보려했는데 아쉽다.
언덕길을 다 올라가니 바다를 내려다보는 조그만 전망대가 하나 만들어져 있다. 전망대 의자에 앉으니 눈 앞에 넓은 바다와 암석으로 된 해변이 펼쳐진다. 서늘한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이 언덕을 내려가면 <돌묘와 꽁돌>이다. 이 곳 해변은 넓은 편편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바위 위에는 마치 무덤과 같은 형상을 한 돌의 모습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돌묘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꽁돌은 크고 둥근 돌이라는 뜻으로, 지름이 5미터 정도는 되어보이는 마치 큰 공처럼 생긴 바위가 돌묘 위에 서있다.
여기서 20분 정도를 더 걸으면 하늘바위가 나온다. 집사람은 길이 험하다고 가지 않으려고 한다. 혼자서 갔다오기로 했다. 하늘바위로 가는 해변길은 상당히 험하다. 길은 어느 정도 잘 만들어놓았지만, 길 곳곳에 바위와 큰 돌이 있어 걷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우리나라 웬만한 관광지에 가더라도 길이 아주 잘 정비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런 멀리 떨어진 섬에는 아무래도 길을 정비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리라.
나이가 들어 걸으면서 제일 곤란한 것이 울퉁불퉁한 길을 걷는 것이다. 젊을 때와 달리 버스에서 내릴 때도 조심해서 내려야 한다. 길에 조그만 바위가 많으면 아주 고역이다. 젊었을 때라면 그냥 훌쩍 뛰면 그만이지만, 지금은 그랬다간 크게 다치기 십상이다. 조심조심 발을 떼서 내려와야 한다. 이러다보니 걷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 하늘바위를 100미터 정도 앞두고 시계를 보니 1시가 되었다.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말고 뒤로 돌아섰다.
아침밥을 일찍 먹은 탓인지 배가 고프다. 집사람과 다시 언덕위 전망대로 올라와 가져온 빵을 먹었다. 허기가 가시니 살만하다. 항구로 가기 위해 다시 마을쪽으로 걸어내려 간다. 적당한 곳에 가게가 보이면 쑥막걸리를 한잔해야 겠다. 어디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어느 마당 넓은 집에서 10여명이 남녀가 모여 있고, 그 중 한사람이 내게 큰 소리로 쑥막걸리 한잔 하고 가라고 부른다. 술한잔 하고 가라는데 거절할 내가 아니다.
쑥막걸리는 아주 향이 독특하고 맛이 있다. 집에서 담근 술인 것 같은데, 도수도 꽤 되는 것 같다. 한잔을 마셨는데 온몸에 취기가 돈다. 이들은 부산에 있는 성당에서 온 사람들인데, 내개 술한잔 하고 가라고 부른 인상이 거칠어 보이는 사람은 성당의 신부님이라고 한다. 어제 저녁부터 술에 절어있다고 호탕한 웃음을 짓는다. 부활절이 끝나면 이렇게 신자들과 여행하는 것이 천주교의 전통이라고 한다. 쑥막걸리에 톳으로 만든 전을 한 점 먹으니 온 몸의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항구로 돌아와 배 표를 사려는데, 대합실에는 배표를 파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 일순 당황하여 옆의 편의점에 가서 물으니 배를 타고 난뒤 배에서 표를 사라고 한다. 이거야 꼭 시내버스같다. 돌아올 때는 시간이 2시간 반 정도 걸린다. 2시간 반의 섬 관광을 위해 4시간 반 배를 탄 셈이다. 앞으로는 운항 스케줄을 좀더 꼼꼼히 챙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