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6) 관매도 가는 길
오늘은 관매도로 간다. 관매도는 진도에서 남쪽으로 25킬로 정도 떨어진 섬으로 경치가 아주 아름답다고 한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별로 여행에 사전 계획을 세우지 않고 무작정 가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관매도에 관한 글을 여기저기 찾아 읽었다. 하나같이 작고 아름다운 섬이라고 한다. 진도에서 관매도로 가는 배는 하루에 두 편이 있다. 아침 9시 20분, 그리고 12시 정도에 또 한 편이 있다. 관매도에서 숙박을 않고 나올 예정이므로 9시 20분 배를 타고 저녁 늦기 나올 계획이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일찍 휴양림을 떠났다.
18. 팽목항
팽목항은 슬픔의 항구이다. 세월호 침몰로 꽃같이 예쁜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난 곳이다. 그런데 사실 세월호가 침몰한 곳은 맹골 해협으로서, 이곳 진도 팽목항에서는 30킬로 정도 떨어진 곳이다. 그런데 그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팽목항이므로, 팽목항은 세월호의 슬픔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가 된 것이다.
팽목항은 휴양림에서 자동차로 5분 남짓 가까운 거리에 있다. 팽목항 근처는 여러 개발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어 곳곳이 공사장이다. 그래서 기존 도로가 폐쇄되고, 또 새로운 도로가 연이어 개설되고 있어 내비게이션 조차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한다. 옛날의 작은 길들이 없어지고 새로운 길을 만들기 위한 건설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틀간 진도 전체를 돌아본 소감으로 가장 큰 인상은 활발한 개발 사업이다. 진도 섬 곳곳이 많은 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지난 이틀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개발사업에 대해 여러 평가가 있겠지만, 나는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이쪽저쪽 진행되고 있는 공사 탓에 길을 찾기 어렵다. 겨우 팽목항에 도착하였다. 팽목항은 진도 개발사업의 중심지이다. 진도의 중심 항구로서 발전시키기 위해 여러 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현장 근로자들이 타고 온 차 때문에 빈 주차장을 찾기가 어렵다. 겨우 빈 곳을 찾아 차를 주차하고, 매표소를 찾았다. 여객선 터미널이라 해봤자 아주 조그만 건물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정도이다. 관매도로 가는 배표를 끊고 나서 팽목항을 돌아본다.
세월호 사고를 추도하는 여러 글들과 플래카드가 걸린 모습은 몇 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와 그대로였다. 팽목항 등대로 향하는 긴 방파재 길에는 자식과 친구를 잃은 사람, 그리고 그들과 슬픔을 함께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쓴 애도의 글이 타일로 만들어져 새겨져 있다. 그리고 건너편에는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정부의 조치를 원하는 글로 채워진 플래카드가 연이어 걸려있다. 세월호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초래한 큰 원인 중의 하나였다.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부모들을 정권의 이해의 잣대로 갈라치고 공작의 대상으로 본 정권의 파렴치 함이 불러온 비극이라 생각한다.
방파재에 걸린 플래카드와 그리고 방파재 벽면에 새겨진 애도의 글들은 곧 기념관으로 옮겨진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세월호 사건과 같은 일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도 있다. 아무리 정부가 규제를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사고는 예상 못한 상황에서 부지불식 간에 닥친다. 인간의 힘으로 사고로 인한 비극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사고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그에 대해 정부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이다. 그것이 국민들의 눈높이와 차이가 났을 때 그에 대한 분노가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몇 년 전 팽목항을 찾았을 때 저 세상으로 간 아이들을 애도하는 타일에 새겨진 수많은 글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번에도 그 글들을 보며 가슴이 메워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조금은 익숙해지는 모양이다.
19. 관매도행 연락선
팽목항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중에 어느덧 관매도행 배 시간이 되었다. 표를 파는 직원은 남자인데, 사무처리 능력이 답답하기 짝이 없다. 물론 배를 타기 위해서는 신분확인 등의 절차가 필요하지만 일처리가 너무 늦다. 게다가 손님들을 대하는 태도도 상당히 무례하다. 요즘 그와 같이 난폭하게 고객을 대하다간 문제가 생기기 십상인데, 여기는 아직 그런 행동방식이 통하나 보다.
관매도행 배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야말로 낭만이라고는 전혀 없는 아주 기능적인 배이다. 배 가운데는 차량을 실는 넓은 공간이고, 2층에 객실이 있는 타입이다. 그 모습은 강화도에서 석모도로 가는 배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 배는 팽목항을 출발하여 여러 섬을 거쳐가면서 관매도에 이른다. 물론 관매도 이후에도 다른 어느 곳으로 항해는 계속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정보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그저 진도 팽목항에서 관매도 로 가는 배라고 생각하고 이 배를 탔다.
배에는 선실이 두 개 있어, 각 선실마다 여남은 명의 승객들이 타고 있다. 그런데 참 황당하다. 배는 마치 시내버스와 같이 여러 섬을 거쳐가는데 안내방송이 전혀 없다. 관매도에 처음 가는 터라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지는 모른다. 팽목항을 출발하여 조금 있다가 어느 섬에 정박한다. 목적지인 관매도에 도착하였는가 생각하고 후닥닥 뛰쳐나갔지만 아니라 한다. 다음 정박지가 어디인지 전혀 알려주지 않고, 또 선실에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배가 정박할 때마다 뛰어나가 확인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또 만만치 않다. 직원들의 숫자도 적지만 배가 정박할 때는 모두들 자동차를 하선시킨다고 바쁘게 일하므로 물어보기도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정박한 항구에 지하철 역같이 정거장 이름을 세워놓은 것도 아니다.
관매도까지 배 시간은 2시간가량 걸린다. 그런데 처음 30분에 어떤 섬에 기항한 이래 계속 10-20분 간격으로 여러 섬들을 기항하면서 가는데, 그 정착지를 전혀 알려주지 않으므로 계속 가슴이 조마조마한 상태로 배를 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참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배의 운항에 대해서는 이렇게 불만이 많았지만, 배 여행은 정말 좋다. 배는 섬과 섬 사이를 지나며 한 곳을 지날 때마다 새로운 경치가 펼쳐진다. 진도는 다도해의 거의 끝자락이다. 다도해의 아름다움을 마지막으로 장식하려는지, 가는 곳마다 새로운 절경이 펼쳐진다. 날씨는 구름 힌 잠 없고. 온도도 따뜻하지만 힘차게 달리는 선상에서 맞는 바닷바람은 차다. 그렇지만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놓칠 수는 없다. 선실 위 갑판에서 남해의 경치를 마음껏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