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5) 진도개 테마공원과 세방낙조, 그리고 남도진성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벌써 점심때가 지났다. 배가 고파 식당을 찾던 중 기사식당이 보여 들렀다. 아주 싼 값에 음식이 훌륭하다. 기사식당에 와보긴 몇십년 만인 것 같은데, 다른 기사식당도 이 정도라면 앞으로 여행 중에는 기사식당을 자주 이용하여야 겠다. 이제 진도 외곽으로 돌아다니다 휴양림으로 돌아갈 예정이므로, 저녁 거리를 사야 한다. 진도 읍내 중심가에 있는 진도수산시장에 갔다. 어제 갔던 진도 상설시장과 비슷한 규모의 시장인데, 그다지 구미에 당기는 것이 없다. 점심을 배불리 먹고 왔으니, 해산물을 보더라도 별로 사고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멍게를 1킬로 샀다.
진도의 대표적 명물은 뭐니뭐니해도 진돗개이다. 진도에는 진도개 테마공원이 있어, 4년 전에도 한번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때는 너무 더워 구경할 엄두도 나지 않았고, 또 테마공원에 진돗개가 눈에 띄지도 않았다. 휴일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한다는데 오늘은 어떨지 모르겠다. 진돗개 테마공원은 진돗개 박물관과 진돗개 공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돗개 박물관은 이전에 보았으니까 그만두고, 야외에 있는 진돗개 공원을 둘러보았다.
진도개 공원은 아기자기한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법 넓은 방사장에 몇 마리의 진돗개들이 뛰놀고 있었다. 옆에 있던 직원이 곧 진돗개 공연이 있다고 하며 구경을 하라고 한다. 언덕 위쪽에 스탠드가 있는 공연장이 만들어져 있다. 약 100명 정도의 관객이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동물들의 공연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왕 왔으니 한번 관람하기로 하였다. 젊은 여성 조련사가 간단한 몇가지 공연을 보여주는데, 공연을 하는 개도 그리 능숙하진 않은 것 같다. 능숙하게 공연하는 동물들을 보면 가슴이 아픈데,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공연 중간쯤에 나와 공연장 위쪽으로 올라가니 우리들이 지어져 있고, 우리마다 진돗개가 한 마리씩 들어있다. 어떤 녀석은 적의를 드러내며 크게 짖고, 또 어떤 녀석은 연신 꼬리를 흔들며 좋아한다. 비교적 넓은 우리라 답답하진 않을 것 같다. 동물원에 가보면 좁은 철망 우리 안에 사자나 호랑이같은 맹수들이 갇혀 있다. 그들은 거의 잠을 자거나 누워서 꼼짝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때마다 궁금한 것이 과연 사자나 호랑이같은 동물들에게 “지루하다”라는 감정이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짐승들도 지루함을 느낀다면 동물원은 지옥과 같은 곳일테고, 그런 감정이 전혀 없다면 동물들은 잘먹고 편히 쉴 수 있는 천국 같은 곳이라 느낄지도 모른다. 물론 나름대로 스트레스도 많겠지만.
다음 행선지는 세방낙조이다. 그런데 집사람이 그 전에 송가인 생가를 둘러보자고 한다. 송가인이라고? 이름은 들어본 것 같아 가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요즘 인기를 찌르는 진도 출신의 가수인데,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사람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그녀의 생가를 찾는다고 한다.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물으니, 자신의 히트곡은 크게 없고 모든 트로트를 잘 소화하여 특히 행사에서 인기만점이라 한다. 송가인 마을을 보고싶다는 그 정도 소원을 못들어줄 내가 아니다. 마침 진주 읍내에서 송가인 생가까지는 차로 15분 남짓 거리이다.
큰 도로를 따라 5분 남짓 달리니 도로표시판 아래쪽에 <송가인 생가>라는 작은 표시판이 보인다. 표시판을 따라 오른쪽 2차선 도로로 들어가니 <송가인 생가마을>이라고 적인 큰 입간판이 도로를 가로질러 서있다. 이 길이 <송가인 길>이다. 송가인 길을 따라 계속 가니 <송가인 생가>, <송가인 마을> 등의 도로표시판이 연속으로 나타난다.
곧 낮은 언덕 위에 가구수가 10여호 남짓되는 작은 동네가 나오는데, 그곳이 송가인 마을이다. 마을 아래 도로변에는 여러대의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주차할 수 있는 제법 큰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송가인 생가는 마을 초입에 있다. 송가인 생가 담벽에는 송가인의 활동을 담은 여러 장식물이 있고, 집 앞에는 카페가 2개에다가 기념품점까지 있다.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가진 나도 결국 송가인의 집을 찾았으므로 한편으로는 이런 경향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딸아이가 어릴 때 HOT를 쫓아다니다닌다고 속을 썩인 적이 있다. 일산에 살 때인데, HOT 연습실이 파주에 있어, 그 추운 겨울날 떨면서 밤 늦게 연습실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딸아이를 데러러 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HOT 공연 입장권을 받으려고 겨울날 은행 앞에서 2박3일을 밤셈하면서 줄 서 기다리던 아이를 위해 두꺼운 옷과 담요를 나르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가수를 향한 그런 환호가 지금은 성인들에까지 옮겨왔나보다.
세방낙조(細方落照)는 진도에서 일몰(日沒)을 감상하는 곳이다. 점점이 떠 있는 섬 사이로 해가 지는 그 광경은 정말 잊을 수 없다. 몇 년전 진도를 찾았을 때 더운 날씨로 가는 곳마다 그다지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으나 오직 세방낙조만이 나를 감동시켰다. 그래서 그 후 몇 년동안은 세방낙조의 사진을 핸드폰 배경사진으로 사용하였다.
세방낙조에 도착하니 5시가 조금 못되었다. 일몰시간까지는 2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해는 아직 서쪽하늘 저 위에 걸려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따로 전망대가 없이 도로변에 조금 넓게 만든 공터에서 일몰을 감상한 것 같았는데, 지금은 나무 데크로 잘 만든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이곳의 일몰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지만, 일몰 시간에 이르지 않더라도 푸른 바다와 점점이 떠 있는 섬이 조화를 이루어 여전히 아름답다. 오늘은 가능한 한 일찍 휴양림에 들어가 산책을 즐길 생각이라 조금 머물렀다가 자리를 떴다.
남도진성(南桃鎭城)은 외적을 방어하기 위한 작은 성곽이다. 지름이 200미터 정도 되는 둥근 성곽으로서 지금 한창 복원작업이 진행중인 것 같다. 성 안에는 여러 채의 집들이 있으며, 2개의 성문과 약 3미터 정도 되는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삼별초의 배중손이 여기서 마지막 저항을 하다가 전사하였다고 한다. 오늘 오전에 보았던 배중손 사당이 왜 진도에 있는지 이제 이해가 간다.
조선 초기에 왜구가 극성을 떨 무렵 왜구로부터 섬을 방비하기 위해 이 성을 개축하였다고 한다. 성을 보고 있노라면 그 당시 이 성에는 어느 정도의 군사가 상주하였을까 궁금해진다. 수십명으로는 도저히 성을 방어하기 어려울 것 같고, 수백명이라면 과연 그만한 군대를 유지할 재정이 허락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현재 복원되고 있는 성은 상당히 아름답다. 복원이 완료되면 또 하나의 진도 명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도진성을 나오니 휴양림까지는 5분도 안걸린다. 오늘 진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많이 감상하였다. 그렇지만 이곳 휴양림 숲속의 집 거실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 풍경은 다른 어느곳에 뒤지지 않는다. 거실에 앉아 바다풍경을 내려 보다가 산책을 위해 밖으로 나왔다. 산책길은 산으로 가는 곳과 해변으로 가는 곳 두 가지이다. 해변으로 내려가는 산책길을 택하였다.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를 따라 바다쪽으로 내려가면 해변을 내려다보며 걷는 길과 해변으로 내려 가는 계단길이 나온다. 계단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간다. 저 앞바다에는 아름다운 섬들이 떠 있고, 해변은 크고 작은 바위로 덮여 있다.
해변도 더 없이 아름답다. 그러나 옥의 티라 할까 쓰레기들이 너무 많다. 대부분 흰 스티로폼 쓰레기로서, 폐기된 어로기구들인 것 같다. 해변 여기저기 허연 쓰레기들이 흩여져 있어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 아름다운 해변을 이들 쓰레기가 망치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바다 쓰레기는 비단 여기 뿐만 아니라 진도 해변 곳곳에서 보이는 현상이다.
오래 전 노무현 대통령 시절, 노 대통령과 어민들이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이 한 말이 생각난다. 아마 그 자리는 어민들의 애로를 듣는 자리였던 것 같은데, 그 때 대통령은 “어민들도 좀 반성해야 합니다. 농민들은 자기 논이나 밭에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민들은 자신의 일터인 바다에 쓰레기를 마구 투기하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말을 하였던 것 같다. 물론 사유재인 농토와 공유재인 바다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바다를 망쳐 제일 손해보는 사람이 어민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좀 자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제 저녁에 이어 오늘 저녁도 멍게 비빔밥이다. 곁들여 어제 사온 막걸리를 한 잔 한다. 효(孝) 막걸리란 이름의 막걸리인데, 진도지역 막걸리인 것 같다. 한잔 마셔보니 맛이 영 아니다. 밍밍하여 막걸리를 마시는 기분이 나지 않는다. 막걸리 맛을 상 중 하로 나눈다면 내 입에는 “하”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한 사발을 따랐으나 반도 마시지 않고 버리고, 맥주로 바꾸었다. 웬만해서는 내가 맛이 없다고 여기는 막걸리는 찾기가 쉽지 않은데, 이건 예외이다. 큰 걸로 한 병을 샀는데, 이걸 언제 다 마시나...
내일은 진도에서 20여킬로 떨어져 있는 관매도란 섬에 갈 예정이다. 아침 일찍 배를 타야 하므로 오늘은 일찍 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