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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여행E3

(2021-04-05) 신비의 바닷길과 울돌목

by 이재형

아침 8시 조금 못되어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갑자기 눈이 부신다. 거실 전체로 아침 햇살이 들어온다. 거실의 바다 쪽은 전체 벽면이 모두 유리문으로 되어있다. 유리문에서 보면 11시 방향이 정동향(正東向)이다. 그래서 아침 햇살이 거실 가득히 들어찬 것이다.


이런 집 구조로 인해 거실에서 일출을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보았을 텐데 아쉽다. 어제까지 흐렸던 날은 간데없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휴양림을 나왔다. 4년 전 진도 여행을 와서 웬만한 명소는 모두 가보았다. 그렇지만 그때는 초여름이어서 너무 더워 만사가 귀찮았기 때문에 건성으로 다녔다. 이번엔 좀 더 느긋히 즐겨야겠다.


집 밖으로 나와 간단히 집 주위를 돌아다보았다. 어젯밤에는 깜깜해서 잘 보이지 않았으나, 이곳 휴양림은 바다를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조성되어 있다. 우리 숙소뿐만 아니라 다른 건물들도 모두 세련된 디자인으로 되어 있고, 건물들이 모두 새 것인 것을 보니까 그리 오래되지 않은 휴양림이라 생각된다. 정부 중앙부처인 산림청이 아니고서는 이런 좋은 경관에 휴양림을 조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첫 번째 행선지는 신비의 바닷길이다.


7. 배중손 사당


신비의 바닷길을 향해 달리다 보니 한적한 곳에 배중손 사당이란 팻말이 보인다. 계획에 없던 곳인데 차를 내렸다. 배중손은 아시다시피 고려시대 몽고 침략 때 몽고에 끝까지 저항한 삼별초의 지도자이다. 아주 작은 사당으로서 상주하는 관리자는 없다.


대문을 들어서니 바로 사당 집이 나오고 양 옆으로 아담한 마당이 있다. 마당에는 잡초가 제법 자라 있는 것을 보니 아주 가끔 한 번씩 관리를 하는 것 같다. 배중손이 누군지 모르는 집사람은 귀찮다고 사당 안으로 들어올 생각도 않는다. 아마 뜬금없이 모르는 사람 사당엔 왜 들어갔을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마당에는 동백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동백꽃이 엄청 크다.


우리는 학교에 다닐 때 삼별초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몽고군에 항전하였다고 배웠다. 그러나 시실 삼별초가 정말 나라를 위해 몽고에 항쟁했는지는 분명치 않다는 주장도 많다. 그 판단은 학자들에 맡기고 나는 내 갈 길, 관광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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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신비의 바닷길


신비의 바닷길은 진도에서 옆 모도섬까지 열리는 바닷길이다. 길이가 거의 3킬로, 폭이 40미터 정도이니 가히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바닷길이 열리는 날은 일 년에 며칠 되지 않으므로 맘먹고 날짜를 맞춰 오지 않는 한 경험하기는 쉽지 않다. 4월 말과 6월 초경에 며칠 바닷길이 열리는 모양이다.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 <진도 이야기>(珍島物語, 진도 모노가타리)란 노래가 대히트를 친 적이 있다.

"바다가 갈라지네요, 길이 생겨나네요, 섬과 섬이 서로 이어지네요, 이쪽 진도에서 저쪽 모도리까지, 바다의 신령님 감사합니다.... “로 시작되는 노래인데 근 1년 가까이 전국 가라오케 선곡 1위를 차지한 노래였다. 그런데 막상 본토인 우리나라에는 그런 노래가 없는 것이 아쉽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는 해안 도로 옆의 평범한 해변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기념관, 석상, 사당 등 상당한 규모의 여러 시설물이 들어서 있다. 진도의 명물 관광지로 본격적으로 개발하는 모양이다. 출렁이는 바닷물을 보노라면 푸른 바다 저 멀리 보이는 모도섬까지 길이 생겨난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여기 외에도 바닷길이 생기는 곳이 여러 곳 있다. 서해 대부도나 간월도 등인데, 그곳은 가보면 길이 생길만한 곳이란 걸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곳 진도는 길의 낌새가 전혀 없는 망망대해에서 길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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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유채꽃 밭


조금 달리다 보니 넓은 벌판이 나오고 온 들판이 노란 유채꽃으로 가득 차있다. 급히 차를 세우고, 유채꽃 밭으로 내려갔다. 논에다 유채를 키우고 있었다. 수십만 평은 되어 보인다. 아마 봄에는 유채를 키우고, 다시 쌀농사를 짓는 것 같다. 가다 보니 유채를 재배하는 곳이 자주 나타난다. 여기도 아직 유채꽃이 만개하지는 않았다. 노란 유채꽃 벌판에 유채 줄기의 푸른색이 조금씩은 섞여 있다. 저 멀리 이 벌판을 지나 따로 떨어져 있는 곳에도 또 유채밭이 펼쳐져 있는 것이 보인다.


이곳 진도는 유채꽃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제주도 유채꽃이 유명하다지만, 실제로 제주도에서는 그다지 인상이 남는 유채꽃밭을 본 적이 없다. 그저 몇백 평, 좀 크다면 몇천 평 정도의 유채꽃밭을 가끔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곳 진도 유채꽃 밭은 다르다. 넓은 곳은 몇 십만 평, 좁아도 몇 만 평은 될만한 유채꽃 밭을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길가나 담장 한 귀퉁이, 또 주택의 빈 공간에도 여지없이 노란 유채꽃을 심어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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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를 재배하는 것은 유채 기름을 채취하기 위해서이다. 유채가 그렇게 수익성이 높은 작물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본격적인 모내기 이전에 부수적인 소득작물로 유채를 재배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유채 재배의 목적이 무엇이든, 보는 관광객의 눈은 즐겁다. 집사람은 유채가 우리가 어릴 때 많이 먹었던 “시나남빠”라는 나물이라고 한다. 나도 어릴 때 “시나남빠”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것이 유채일 줄이야.


“시나남빠”가 무슨 뜻일까? 집사람은 아마 유채의 일본말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유채(油菜)는 일본말로 “아부라나”, 즉 기름 채소라 한다. 일본어에는 시나남빠 혹은 시나나빠라는 말이 없다. 이리저리 찾아보니 시나, 즉 중국이라는 말과 채소(菜, 나) 잎(葉, 하)가 합쳐진 “중국에서 온 잎 채소”라는 뜻으로 일본어로 “시나나빠”라 하지 않았는가 하는 글이 조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믿거나 말거나.



10. 울돌목


울돌목, 즉 명량해협(鳴梁海峽)은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저 유명한 명량대첩이 벌어진 장소이다.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200여 척의 왜군과 싸워 승리하였다. 울돌목 공원에는 이순신 장군의 큰 동상이 있고 또 부근에 해양에너지 센터가 들어서 있다. 울돌목은 해남군과 진도 사이의 해협이다. 그러니까 진도대교는 울돌목 위를 지나고 있다.


울돌목 공원과 이순신 동상은 진도에서 해남군 쪽을 봤을 때 진도대교 왼쪽 아래에 있다. 이 앞바다 부근이 명량해전이 벌어진 장소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너무 높아 고개를 쳐들고 보기가 힘이 든다. 좀 멀리서 보면 아주 멋있다. 울돌목 공원에는 바다 위로 나무로 만든 작은 도보길이 있어 바다를 즐기며 가볍게 산책하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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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명량해전을 위대한 승리라 자부하지만, 사실 이 싸움은 승리라 보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이 전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그리고 명량해전으로 우리는 어떠한 목표를 달성했는가? 임진왜란 초반에 해전에서 패전을 거듭하던 왜군은 이순신 장군의 부재를 틈타 조선 수군을 일방적으로 괴멸시키고 남해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여기서 왜군은 제해권을 다시 서해까지 확대하고자 서해 쪽으로 진격하였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 출전한 이순신 장군의 조선수군과 울돌목에서 부딪힌 것이 바로 명량해전이다.


이 싸움에서 잘 아시다시피 조선 수군은 거의 피해가 없었지만 왜군에게는 상당한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200여 척과 13척이라는 중과부족은 어쩔 수 없었다.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은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서해 저 위 쪽 군산 부근까지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로서 서해 남쪽 제해권은 왜군에 넘어가버렸다. 왜군으로서는 코피가 터질 정도로 두들겨 맞았으나. 제해권 확보라는 전투 목적은 달성한 싸움이었다. 그러므로 왜군으로서도 승리라고 주장할 수 있는 전투였던 것이다.


11. 진도타워


진도타워는 진도대교를 바로 내려다보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진도 쪽에서 본다면 진도대교 왼쪽 아래쪽에 울돌목 공원이 있고, 오른쪽 위쪽에 진도타워가 있다. 진도타워엔 전에도 와봤지만 몇 번을 찾아도 좋은 곳이다. 언덕 위에 제법 넓은 광장이 있고, 명량해전을 그린 기념 황금칠을 한 청동 조각 작품이 있다. 맹렬한 공격을 퍼붓는 조선 수군과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왜병을 묘사한 작품이다.


광장 한쪽에는 진도타워가 우뚝 서있다. 구태어 타워 전망대에 오르지 않더라도 이곳의 전망은 일품이다. 저 아래 아름다운 진도대교의 모습과 그 아래를 오가는 배들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도 그다지 찾기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진도대교는 연륙교로서는 드물게 쌍둥이 다리이다. 1980년대 건설한 진도대교의 옆에 수년 전 새로이 같은 모양의 다리를 건설하여 쌍둥이 다리로 만든 것이다. 그렇지만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고압선 송전탑이 서있고, 그 위로 전선이 통과하고 있다. 섬의 경관을 해치는 흉물스러운 모습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고는 진도 주민에게 전기를 공급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새로운 진도대교의 건설에는 나도 손톱만큼의 기여가 있다면 있다. 중학교 동창으로서 같은 직장에 다닌 친한 친구가 제2 진도대교 건설의 예비타당성 조사 연구책임을 담당하였다. 점심시간에 이 친구와 만나면 이 사업을 통과시켜주어야 할지 여부에 대한 고민을 자주 털어놓았고, 나도 그에게 몇 번 조언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 이유에서 나도 진도대교의 건설에 손톱 밑의 때 정도는 기여가 있다고 우길 수가 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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