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4) 익산 보석박물관과 김제 금산사
오늘부터 진도 여행이다. 오늘을 위해 지난 2월에 <진도 국립자연휴양림>의 숲속의 집을 2박 예약해두었다. 사실 자연휴양림 예약은 쉽지 않다. 인기 있는 곳은 예약 시작 땡 하는 순간 예약이 끝나버린다. 진도 휴양림도 인기 있는 축에 끼이므로 꽤 어렵게 예약하였다.
세종시 집에서 진도 자연휴양림까지 제일 빠른 길로 대략 3시간 반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 이곳저곳 구경하면서 쉬엄쉬엄 내려갈 예정이다. 집에서 오전 10시쯤 출발하였다.
먼저 익산 보석테마박물관으로 갔다. 익산시는 우리 세대에게는 이리 시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또 이리시하면 떠오르는 것은 1970년대 말 일어났던 그 끔찍했던 이리역 폭발사고이다. 이후 이리시는 주위의 익산군을 흡수하여 익산시로 확대 개편되었다 한다.
과거 이리시에는 보석공단이 조성되었다. 이 보석공단이 지금까지 이어져 익산 귀금속보석단지가 되었고, 이런 연유로 지금도 익산은 보석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보석공단에는 1980년에 산업시찰로 한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가면 근 40년 만에 다시 찾는 셈이다.
보석박물관은 생각보단 컸다. 본관 건물은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는데, 아마 다이아몬드를 형상화한 것 같다. 전시물들은 대개 액세서리류들과 보석 원석류들이었다. 전시물들은 그럭저럭 괜찮은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건물에 비해서는 다소 충실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전시관을 나오면 옆 건물의 보석 판매관으로 연결된다. 2층에 걸쳐 약 60개의 판매점이 입점해있다. 나는 건성으로 구경을 하며 나오는데, 집사람이 한 곳에 들어가 판매원에게 이것저것 묻는다. 판매원이 손님을 잡았다 생각했는지 반지를 여러 개 꺼내놓는다. 집사람은 그 가운데 몇 개를 껴보기까지 한다. 어쩌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예 건물 밖으로 나와 먼산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다음 행선지는 김제에 있는 금산사이다. 금산사는 이전에 몇 번 와본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 다시 찾은 것은 이곳 벚꽃이 그렇게 좋다고 하기 때문이다. 어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심하지는 않지만 계속되고 있다. 뿌연 비안개 속에 반쯤 감춰진 산들은 한 폭의 동양화 같다.
금산사를 5킬로쯤 앞두고 벚꽃 가로수 길이 시작된다. 내린 비 때문인지 벚꽃은 절정을 지난 것 같지만 그래도 아름답다. 갈수록 벚나무들의 키도 커져 금산사가 가까워지자 도로는 완전히 벚꽃 터널로 변한다. 갑자기 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모두들 벚꽃을 구경하느라 속도를 늦춘 탓이다.
금산사는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절이다. 넓은 절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유물들이 모두 국보이고, 보물인 문화재의 보고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문화재보다는 꽃이 먼저다. 일주문을 지나 법당으로 가는 길 옆으로는 온통 벚꽃이다. 좀 특별한 것은 금산사의 벚나무들은 대개가 젊은 나무가 아니라 늙은 괴목들이다. 늙어서 잘려지고 부러진 등걸 사이로 몇 떨기 피어난 벚꽃은 새로운 정취를 느끼게 한다.
금산사의 넓은 마당은 꽃들로 장식되어 있다. 마당 전체를 꽂이 메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당 한켠 이쪽저쪽에서 다소곳이 피어난 꽃들은 넓은 마당 전체를 한 폭의 화폭으로 만든다.
금산사는 잘 아시다시피 후백제의 왕 견훤이 유폐당했던 곳이다. 장남 신검의 쿠데타에 의해 자신이 가장 아꼈던 아들 금강이 죽고, 그 자신은 자식의 손에 의해 권력을 빼앗기고 이곳 금산사에 유폐되었다. 금산사를 탈출한 견훤은 자식에게 배반당한 노여움을 적인 왕건의 손을 빌어 아들에게 복수함으로써 풀게 된다. 배반에 대한 증오는 부자의 연을 넘어선다고 해야 하나...
가랑비는 점점 거세진다. 가능한 한 5시 이전에 진도에 도착하려 했는데, 어려울 것 같다. 금산사를 나와 남쪽으로 가는 길도 모두 벚꽃 가로수이다, 지난주쯤 이곳에 왔으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