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 다섯째 날 후에

(2018.12.31) 왕도(王都) 후에

by 이재형

출국할 때 인천공항에서 빌린 와이파이 도시락이 꽤 유용하다. 세 식구가 마음대로 데이터 통신을 이용하며, 언제, 어디서라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아들 배낭 속에 와이파이 도시락을 넣고 다니니, 아들이 핸드폰 기지국인 셈이다. 젊은 사람들은 이보다도 훨씬 값싼 유심 교환을 선택하지만, 이것저것 생각하기 귀찮아 유심 교환은 포기했다.

어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쉬지 않고 주룩주룩 내린다. 날씨가 추워 파카를 꺼내 입었다. 열대의 나라 베트남에 와서 이렇게 추위에 떨 줄 몰랐다. 호텔 식당에서 쌀국수로 아침을 먹었다. 쌀국수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아침 값은 숙박비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방 2개, 화장실 2개에 거실까지 딸린 숙소에 3인 아침 값까지 포함해서 2박에 8만 원이니, 정말 싸다. 춥다고 마냥 방에만 있을 수도 없고 해서 비가 오지만 관광을 하기로 했다.

어제 산 셀카봉이 사용도 안 해 보고 부서진다. 어쩐지 조잡하게 보인다 했더니, 스마트폰을 끼우자마자 홀더가 스마트폰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내린다. 고치려고 하니 만지는 족족 부스러진다. 아무리 싼 게 비지떡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다. 그래도 롯데마트에서 산 건데....

먼저 후에성으로 갔다. 후에가 자랑하는 문화유산이다.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왕궁으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베트남 전쟁 때 후에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미군의 폭격에 의해 많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15년 전에 이 곳에 온 적이 있는데, 그때는 제대로 복구가 되지 않아 좀 황량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복원된 것 같다.

성의 규모가 상당히 크다. 경복궁보다 훨씬 큰 느낌이다. 성 전체가 수많은 전각으로 꽉 차있으며, 군데군데 정원도 잘 가꾸어져 있다. 건물들도 매우 화려하다. 중국 북경의 자금성을 본떠 만든 성으로서, 실제로 성안 왕족들이 사는 곳은 이름을 <자금성>이라 붙였다 한다. 궁 안에 종묘가 있어 선대 왕들의 위폐가 모셔져 있다. 위패는 높이와 길이가 2미터, 폭이 1미터 정도 되는 큰 황금색 상자위에 놓여 있는데, 상자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하다.

20181231_111709.jpg
20181231_111720.jpg
20181231_111727.jpg
20181231_112351.jpg
20181231_113052.jpg
후에성

뒤편으로는 아직도 복원되지 못한 곳이 상당하다. 무너진 건물 벽, 담 벽, 그리고 건물 터들이 잡초 속에 방치되어 있다. 건물들은 모두 금칠이 되어 있으며, 담 벽도 누런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다. 전각이나 문들의 이름은 모두 한자로 쓰여 있다. 그리고 기둥에도 모두 한자로 문장이 쓰여 있다. 용을 좋아하는지 성 곳곳에 용 조각, 용 그림이 걸려져 있다. 용은 중국 천자의 상징이므로, 우리나라 왕은 용보다는 격이 낮은 봉황을 상징으로 사용하였다.


문득 조지훈 시인의 시 봉황수(鳳凰愁)가 생각난다.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

봉황수란 봉황의 슬픔이란 뜻으로 옛날 중국과의 종속적 관계를,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빼앗긴 슬픔을 노래한 시다.

20181231_113555.jpg
20181231_113830.jpg
후에성

이런 것을 생각하자면 베트남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독립성이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강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왕궁의 규모를 봤을 때 응우옌 왕조는 경제력도 상당히 강했을 거라 추측된다.


비 속에서 하는 관광이라 여러모로 성가신 점이 많지만 잘 왔다고 생각된다. 기사를 대기시켜 놓았기 때문에 두 시간이라는 시간 제약이 아쉽다. 날씨 좋은 날 하루 종일 여유를 갖고 둘러볼만한 곳이다.

다음 행선지는 <티엔무 파고다>이다. 영령들의 넋을 기리는 장소인 것 같다. 상당히 큰 파고다로, 높이가 10미터를 넘는 것 같다. 안쪽으로는 작은 절이 있다. 나오는 쪽으로는 작은 정원이 있는데, 크기는 작지만 아름답다. 파고다는 <흐엉강> 기슭에 세워져 있다. 흐엉강(香江)은 후에를 관통하는 강으로서 강폭도 넓은 데다 풍부한 수량을 자랑한다. 파고다에서 내려 보는 흐엉강은 장관이다. 우리나라는 한강을 제외하고는 물이 많은 강이 별로 없다. 이에 비해 베트남은 비가 많은 탓인지 모든 강이 수량이 풍부하다.

20181231_124729.jpg
20181231_124853.jpg
20181231_134043.jpg
20181231_130429.jpg
티엔무 파고다

다음으로 <민망왕릉>으로 갔다. 후에에는 여러 왕릉이 있는데, 그 가운데 민망왕의 무덤이 가장 크고 화려하다고 한다. 민망왕은 응우옌 왕조에서 가장 강력한 왕이었다고 한다. 왕릉이 무척 크다. 왕릉 안에 두 개의 큰 호수가 있고, 큰 전각도 몇 개나 된다. 면적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왕릉 가운데 비교적 넓은 서오릉의 몇 배는 되는 것 같다.

후에의 전통시장인 동바시장으로 갔다. 1960년대 우리나라 전통시장과 닮았다. 옷이나 잡화를 파는 가게가 몰려있는 시장 중앙은 통로 폭이 50센티도 안 되는 것 같다. 1960년대 우리나라 시장이 그랬다. 지붕 사이에는 대충 천막이 처져있으나 빗줄기를 막진 못한다.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생기고, 진창길이 된다. 그런 옆에서 또 좌판을 펴고 장사를 한다. 냄새도 심하다. 우리나라도 그렇던 시장이 완전히 탈바꿈하는데 10년도 채 안 걸렸다. 베트남도 곧 크게 나아질 걸로 기대한다.

시장 좌판 쌀 국숫집에서 식사를 하고 가자니까 집사람도 아들도 고개를 젓는다. 시장을 나오는데 시계점이 보인다. 베트남에 오기 전에 시계를 잃어버려 불편했는데 하나 사야겠다. 20만 동을 주고 롤렉스 시계를 한 개 샀다.

내일은 가족이 헤어지는 날이다. 나는 상행선 동허이로 가고, 집사람과 아들은 하행선 다낭으로 간다. 호텔 근처 여행사에서 차표를 예매하고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가족 식사를 한다.

동바시장


keyword
이전 04화베트남 여행, 넷째 날 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