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30.) , 침대버스를 타고 후에로
오늘은 후에로 이동한다. 후에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가 자리 잡았던 지역이다. 오후 2시 반 버스표를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오전엔 별로 할 일이 없다. 호텔 옆 쌀 국숫집에서 아침을 때우고, 해변으로 갔다. 어제저녁부터 세찬 바람이 불어 바다가 매우 거칠다. 바람 세기가 거의 태풍급이다. 파도가 흰 이빨을 드러내며 밀려오고 있다.
잠시 바다 구경을 하다가 중심가 근처에 있는 롯데마트로 갔다. 한국에서 셀카봉을 두 개 사 왔는데 이게 되다 안되다 하며 속을 썩인다. 블루투스 신형 셀카봉인데, 이게 정말 "블루투스 너마저도!"인 형편이 되어버렸다. 롯데마트가 다낭에서 제일 큰 대형 마트라 거기에 셀카봉을 팔 것 같아 그리로 간 것이다. 롯데마트의 규모는 우리나라의 대형마트와 비교하면 조금 작은 편이다. 물건도 그다지 많지 않고 조금 초라한 느낌이다.
5층 건물인데 4층까지는 매장이고 5층은 스포츠 및 오락, 문화시설이 들어와 있다. 롯데 영화관이 위치하여 영화를 상영하고 있고, 한편에는 볼링장도 있다. 볼링을 쳐본 지 오래되어 확실치 않으나 레인이 매우 짧아 보인다. 레인이 10개 가까이 되어 보이는데 손님은 한 사람도 없다. 오락장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그 안에는 각종 전자오락기로 가득 차있으며, 손님들로 상당히 붐빈다. 특히 사격 게임, 즉 총으로 화면에 등장하는 적들을 사살하는 게임이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어떤 게임이 있는지 둘러보다 기겁을 했다. 사격게임 가운데 <람보 2> 게임이 있다. 머리에 밧줄 끈을 질끈 동여 맨 람보가 수없이 달려드는 적들을 무자비하게 사살하는 게임이다. 낙엽처럼 쓰러져 가는 병사들은 바로 베트남 병사들이다. 최고경영자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무신경하게 이런 게임을 가져다 놓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사소한 일 하나가 롯데가 베트남에서 쫓겨 나는 빌미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 김에 나와 아들, 각각 두벌씩 티셔츠를 샀다. 티셔츠 4장에 40만 동. 셀카봉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구글 번역기에도 셀카봉이란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손짓 발짓을 해서 겨우 셀카봉 파는 곳을 찾아가니, 보기에도 조잡한 셀카봉이 몇 개 걸려있다. 가격은 4만 동, 2천 원이다. 시험해보니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작동된다. 블루투스니 뭐니 재주 부리는 것보단 단순 무식한 아날로그 방식이 최고다.
후에 행 버스를 탔다. 침대버스다. 버스에 세 줄로 좌석이 있으며, 이 좌석은 약 160도 정도까지 젖혀진다. 좌석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총 좌석 수는 40석 정도 된다. 버스를 탈 때 신발을 벗어 비닐주머니에 넣고, 좌석 밑 발 아래쪽에 보관한다. 무척 좁고 답답해 보였는데, 막상 자리를 차지하고 누우니 의외로 편안하다. 이 버스는 호찌민 시에서 출발하여 하노이 시까지 가는 버스다. 시발점에서 종점까지 가는 사람은 40시간을 타야 한다.
다낭~후에 간 100킬로 정도의 거리를 3시간 동안 달린다.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빗발은 점점 거세진다. 거의 폭우 수준이다. 후에 중심가에서 좀 떨어진 주유소가 정 차장이다. 내려서 그랩 택시를 불렀다. 다낭에서 그 흔하던 그랩 택시가 여기서는 잘 오지 않는다. 날도 점점 어두워지고 낭패다. 호텔까지 2킬로 남짓인데, 비 때문에 걸어갈 수도 없다. 나와 아들만이라면 주위에 흔한 오토바이 택시를 타면 되는데, 집사람 때문에 그것도 안된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택시를 잡아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시내 중심가인 것 같은데, 완전 유흥가이다. 주위가 전부 음식점과 카페, 바이다. 다낭에선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여기는 가게마다 댄스음악이 귀가 아프도록 터져 나온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후에의 이미지와는 딴판이다. 15년 전에 왔을 때는 너무나 고즈넉한 분위기라 그를 잊지 못해 다시 찾아왔는데, 완전히 예상을 벗어났다. 그동안 도시가 변했는지, 아니면 그때는 이런 장소가 있는지 모르고 지나간 건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다.
숙소는 조그만 호텔인데 우리나라의 콘도처럼 생겼다. 방 2개에 거실, 그리고 주방이 있다. 비가 계속 내려 몹시 춥다. 열대지방이니 난방시설이 있을 리 없고 참을 수밖에 없다. 숙소는 그럭저럭 괜찮은데, 방음이 잘 되지 않는다. 아니 일부러 방음이 안되도록 한 것 같다. 방이 5층인데, 방안에 1층까지 연결된 오픈된 공간이 두 곳 있다. 이 공간이 아래층 방들을 모두 거쳐 1층까지 연결되니, 사실상 전 객실의 손님들이 모든 소음을 공유하는 셈이다. 지금도 아래층에서 여자들이 큰소리로 웃고 떠들고 있다. 언제 조용해 질려나.
내일은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