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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ug 30. 2023

영화: 육탄(肉彈)

허무한 전쟁의 끝을 경험한 청년의 죽음

■ 개요 


영화 <육탄>(肉彈)은 태평양 전쟁에서의 일본 패전 전후 무렵 일본의 어느 해안에서 근무한 병사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1968년에 제작되었는데, 장르 상으로는 전쟁영화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전투 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인 “그 녀석”이 경험한 젊음과 전쟁의 끝을 그린 작품으로서,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 줄거리


1945년 한 여름 “그 녀석”은 어뢰를 장착한 드럼통 속에서 일본의 동쪽 해안을 표류하고 있다. 이 드럼통은 굳이 표현하자면 1인용 돌격선으로서, 해상판 가미가제 특공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돌격선이라고 하지만 드럼통에 달랑 어뢰 1발을 실은 것뿐으로 드럼통을 움직일 동력조차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 녀석은 공병 특별갑종간부후보생인데, 이미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그 녀석이 여기까지 흘러오기까지에는 우습기도 하고 슬픈 청춘이 있었다. 훈련장에서 간부후보생들은 모두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녀석은 밥과 죽음 외의 것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건빵을 훔쳤다가 발가벗겨진 채로 훈련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소련이 참전하였다. 그리고 예비대도 해산되었다.   


그 녀석을 비롯한 간부 후보생은 모두 특공대원이 되었다. 출정 전에 단 하루의 외출을 허락받은 그 녀석은 왠지 활자가 그리워져 헌책방에 갔다. 그러나 그가 찾아낸 활자가 많은 책은 전화번호부뿐이었다. 서점은 B29의 폭격에 의해 양팔을 잃은 할아버지와 관음보살 같은 할머니가 운영하고 있었다. 


그 녀석은 길을 헤매다가 불타버린 사창가에 있는 한 집에 들어갔다. 화려한 치장을 한 여자들 사이에 인수분해 공부를 하고 있는 댕기머리 소녀의 청초한 모습이 그 녀석의 눈에 들어왔다. 그 녀석이 소녀에게 말을 걸자, 소녀는 여자를 살 것이냐고 묻는다. 그 녀석은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방 안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자, 방으로 들어온 것은 소녀가 아니라 밖에서 손님을 끌던 아줌마였다. 다시 빗속으로 뛰쳐나온 그 녀석은 참고서를 끼고 있는 소녀와 다시 만났다. 

웬일인지 그 소녀는 그 녀석을 따라왔다. 공습 대피소로 들어간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었다. 다음날 그 녀석은 대전차 지뢰를 안고 모래언덕에 있었다. 그 녀석의 머리에는 갑자기 헌책방의 노부부, 손님을 끌던 사창가의 아줌마, 그리고 모래언덕에서 알게 된 어린 형제와 몸뻬 차림의 어린 엄마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 녀석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조국이 생겼다. 


그날 밤 공습으로 소녀가 죽었다. 그리고 작전이 변경되어 그 녀석은 어뢰와 함께 태평양으로 나왔다. 그 녀석은 드럼통 돌격선 안에서 소녀를 죽인 적을 참을성 있게 기다렸지만, 적기의 기관총 사격을 받아 그의 안경이 날아가 버렸다. 


일본은 패했다. 그러나 그 녀석은 어느 날 아침 대형 항공모함을 발견하였다. 그 녀석은 항공모함을 향해 필사적으로 어뢰를 발사하였지만, 어뢰는 거품을 내면서 가라앉아 버렸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그 녀석은 자신이 항공모함이라고 착각한 분뇨처리선에 구조되어 종전 소식을 듣는다. 분뇨처리선에 의해 예인 되어 항구로 향하던 중 썩은 로프가 끊겨버려 그 녀석은 다시 바다 가운데 홀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그 녀석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분노에 찬 소리를 외치고 있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 해수욕객으로 복잡한 바로 그 바다에 드럼통이 떠밀려 다니고 있다. 그 속에서 백골이 된 그 녀석은 지금도 분노의 소리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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