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연합함대의 진주만 습격
일본 연합함대에 의한 진주만 공습 대평양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전투이다. 선전포고 없이 자행된 일본의 이 공격은 태평양 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셈이다. 이후 진주만 공격을 위한 영화는 여러 편 제작된 바 있는데, 이 블로그에서도 미국영화인 <진주만>과 일본영화인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사령장관>을 소개한 바 있다.
영화 <도라 도라 도라> 역시 진주만 습격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 미국과 일본의 합작으로 1970년에 제작되었다. 도라(虎)는 일본어로 ‘호랑이’란 뜻이다. ‘도라 도라 도라’는 진주만 공습의 성공을 알리는 일본 연합함대의 암호였다.
1941년 일본은 독일 및 이태리와 3국 동맹을 체결한다. 일본 군부는 이제 미국과의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여 대미 전쟁계획을 수립한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제해권을 장악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미 함대를 격파하여야 한다. 하와이의 진주만에 있는 미 해군 기지에는 많은 전함과 항공모함이 정박하고 있어 이곳을 기습 공격한다면 미국의 해군 전력에 궤멸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일본군은 진주만 기습을 위하여 여러 차례의 도상 훈련을 반복한다. 자신감이 붙은 일본의 연합함대는 진주만 공습을 위하여 비밀리에 출항한다.
한편 미국은 일본의 도발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투기들과 항공모함을 한 곳에 모아놓아 공습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이다. 몇몇 중간 간부들이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비행기와 선박을 분산하여 배치해 두어야 한다고 건의하지만 이들의 건의는 번번이 무시된다. 정찰기를 통해 일본 함대의 상황에 관한 정보가 들어오지만 제대로 지휘부에 전달되지도 않는다.
12월 17일 새벽 마침내 일본군의 전투기가 진주만을 향해 출격하였다. 일본 전투기 부대가 지나가는 곳에는 몇몇 미국의 관측소가 있었다. 어떤 관측소에는 초병이 자리를 비웠고, 또 어떤 곳에서는 일본 비행기를 발견했지만 전화가 없어 본부에 연락할 길이 없었다. 근처 마을에 자전거를 타고 가서 전화를 사는 기막힌 상황도 발생하였다. 또 어떤 관측소에서 보고된 일본 전투기 습격 보고는 중간에서 묵살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일본군의 기습과 미군 측의 경계태만으로 일본 전투기 무대는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진주만 상공에 도달한다. 이어 미 군함과 항공기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이 시작된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공격을 받은 미군은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급히 응전에 나서기도 하지만 전혀 전투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제대로 된 반격이 가능할 리 없다. 새벽부터 시작되어 하루 내내 계속된 일본기의 공격에 미군은 심대한 타격을 입는다. 회황하는 일본의 전투기들은 작전의 성공을 알리는 암호 ‘도라 도라 도라’를 타전한다.
일본 연합함대 지휘부 내에서는 폭격을 계속하여 미 해군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연합함대 사령관인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는 작전 목표는 달성되었다고 선언하며 회항을 결정한다. 만약 그가 참모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공격을 계속하였더라면 이후 태평양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궁금하다.
이 영화는 여기서 막을 내리는데 이후 일본은 태평양에서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한다. 그러나 미국의 해군력 회복은 일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속도로 빨랐으며, 다음 해의 미드웨이 해전을 정점으로 제해권은 다시 미국으로 넘어간다. 나중에 판명된 사실이지만 진주만 공습으로 인한 미 해군력의 상실은 예상보다는 크지 않았다. 그런 데다가 미국의 강력한 산업력으로 미국 해군은 빠른 시간 내에 전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