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의 호숫가 마을에 나타난 의문의 방랑자
보통 서부영화는 선인장이 듬성듬성 서있고 붉은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황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영화에 등장하는 거리도 역시 매마른 땅 위에 세워진 마을로서 주인공은 흙먼지를 덮어쓰고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 <평원의 무법자>(High Plains Drifter)의 지리적 배경은 아주 특이하다. 넓은 호수를 옆에 두고 세워져 있는 마을이 바로 그 무대이다.
영화 <평원의 무법자>(High Plains Drifter)는 1973년 미국에서 제작되었는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겸 주인공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캘리포니아의 모노 레이크 기슭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보통 서부영화에서 볼 수 없는 넓은 호수 옆 마을 풍경이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한다.
미국 애리조나 주 큰 호수 옆의 황야에 있는 마을 “라고”에 한 방랑자(클린트 이스트우드 분)가 사나이가 나타난다. 그는 흘낏흘낏 쳐다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거리를 지나다가 짐마차의 말에 채찍질을 하는 자이크 로스라는 사내를 쳐다본다. 그런 다음 방랑자는 마을의 술집에 들어가 목을 축이려 한다. 그때 술집에 있던 세 명의 총잡이가 시비를 걸어온다. 그러나 방랑자는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이발소로 가 수염을 깎아달라고 한다.
선술집에서 만난 3인조가 다시 나타나 방랑자에게 시비를 건다. 그렇지만 방랑자는 눈깜박할 사이에 그들을 모두 쏘아죽인다. 이발소에서 일하는 난장이 모디카이가 방랑자에게 이름을 묻지만 그는 대답을 않는다. 그런 후 방랑자는 루이스 벨딩이 운영하는 호텔에 가는데, 숙박부에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고 방에 올라가 잠이 든다. 루이스의 아내 사라는 그런 방랑자를 보고는 흥미를 느낀다.
방랑자는 그날밤 꿈을 꾼다. 어느 마을에서 보안관이 세 명의 무뢰한들에게 채찍질당하고 있다. 보안관은 마을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지만 누구도 그를 도우려 하지 않은다. 보안관은 “모두들 지옥에나 가라!”며 소리치면서 죽어간다.
방랑자의 총에 맞아 죽은 삼인조는 3인조 악당들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고용된 총잡이들이었다. 3인조 악당이란 스테이시 브리지스), 콜, 댄 삼형제인데, 이들은 한때 이 마을의 광산회사의 경비원으로 고용되었다가 부민들에게 배신당해 투옥당해, 그 앙갚음으로 이 마을을 지키고 있던 보안관 짐 던컨을 살해했던 자들이다. 이들 형제는 그 후 감옥에 갇혔다가 형기가 끝나 곧 출소할 예정이다. 광산회사를 경영하는 데이브 드레이크와 모건 앨런은 브리지스 형제들의 복수를 두려워하여 방랑자에게 자신들을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방랑자는 처음에는 이 제안을 거절하지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말에 이를 승낙한다. 그는 먼저 시장이자 잡화점 주인인 제이슨 호버트에게 원주민인 인디언들에게 공짜로 물건을 주라고 하며, 선술집 주인인 루티 네일러에게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술을 주라고 명령한다. 또 그는 모디카이를 새 시장 겸 보안관으로 임명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자경단을 조직토록 하고 사격훈련을 시킨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총을 전혀 다루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는 전술을 바꾼다. 루이스의 호텔로부터 투숙객들을 쫓아내고 파티준비를 시키며, 빨간색 페인트를 충분히 준비하라는 등 이상한 명령만 내린다. 한편 감옥에서 풀려난 브리지스 형제는 말을 빼앗아 타고 복수를 위해 라고 마을로 오고 있다.
방랑자의 기이한 지시에 질린 앨런과 루이스는 불평을 늘어놓지만, 마을사람 모두는 던컨이 브리지스 형제에게 살해당하는 것은 보고만 있었다는 약점이 있으므로, 방랑자를 계속 고용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 무렵 모디카이는 옛날 던컨 보안관이 살해당할 때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못본채 하였던 일을 생각하고 있다.
방랑자는 루이스의 아내 사라를 강제로 겁탈한다. 다음날 아침 사라는 방랑자에게 던컨을 아느냐고 묻고는, 그의 묘비에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영혼이 방황하고 있으며, 던컨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낯선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말해준다. 방랑자는 사라의 말에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한마디를 내뱉는다.
방랑자는 라고 마을의 간판을 “HELL”이라 바꾸어 쓰고, 마을의 모든 건물에 붉을 페인트 칠을 하라고 지시한다.
라고 마을은 금광으로 번성했지만, 던컨은 1년 전 금광이 국가 소유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를 정부에 신고하려고 했다. 금광이 국유화되면 마을의 수입은 줄어들 것이 뻔하므로 주민들은 던컨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마을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지긋지긋해진 사라는 마을을 떠나겠다고 했고, 그 일로 루이스와 심한 말다툼을 했다.
브리지스 일당이 마을에 접근해오고 있을 때 그들 앞에 앨런이 나타나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앨런이 돈을 주기를 거부하자 브리지스 링당은 그를 살해해 버린다. 앨런의 행방을 쫓고 있던 방랑자는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브리지스 일당을 도발한 후에 마을로 돌아온다.
방랑자의 지시대로 마을의 건물은 모두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방랑자는 모디카이를 비롯한 마을사람들에게 전투에 대비하라고 지시하였지만, 막상 싸움이 시작되려 하자 그는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드디어 브리지스 갱단이 마을로 들어와 주민들을 차례로 죽이기 시작하였다.
밤이 되자 마을을 장악한 브리지스 일당 앞에 채찍을 든 방랑자가 나타났다. 그는 먼저 콜을 채찍질해 죽였다. 이 광경을 본 마을 사람들은 던컨이 브리지스 갱단에 의해 살해당한 때를 기억해 내고는 전율한다. 그런 다음 방랑자는 댄을 채찍으로 목졸라 죽이고, 초조해 하는 브리지스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어 쏘아 죽인다. 이때 건물 그늘에서 루이스가 방랑자를 쏘려고 하는데, 모디카이가 재빨리 루이스를 쏴 죽인다.
다음날 아침 방랑자는 마을을 떠나려 하는데, 그의 눈에 던컨의 묘비에 비문을 새기고 있는 모디카이를 발견한다. 모디카이는 방랑자에게 이름을 알려달라고 한다. 묘비에는 “연방보안관 짐 던컨 여기에 잠들다”라고 새겨져 있다. 방랑자는 “알고 있을 터인데”라고 대답하며 그곳을 떠난다. 그의 모습은 아지랑이 속으로 사라져간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방랑자는 악당인 브리지스 일당과 싸운다. 그런데 악당은 비단 그들만이 아니다. 방랑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불쌍한 마을 사람들 그들 대부분이 악당이자, 공범자들이다. 그래서 방랑자는 브리지스 일당과 싸우면서도 마을 사람들을 동시에 응징한다. 아니 오히려 악당 브리지스 일당의 손을 빌어 마을사람들을 응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고서도 주인공인 “방랑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1인2역을 하여 죽은 보안관 던컨과 주인공 방랑자 역을 맡았다. 그러면 방랑자는 죽었다고 생각한 던컨인가? 아니면 던컨의 형제인가? 방랑자와 던컨의 얼굴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던컨에 대해 깊은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마을사람들은 방랑자의 얼굴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한가지 방랑자는 왜 마을의 건물 모두를 붉은색 페인트로 칠하라고 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마을사람들도 모두 피의 복수를 받아야 한다는 뜻에서 그랬을까? 영화에서는 마을 건물에 붉은 페인트 칠을 하게 하는 것을 중요한 포인트로 삼고 있는데, 끝내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여러면에서 관객들에게 좀 불친절한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