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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Sep 11. 2023

이야기를 시작하며

반상(盤上)의 신삼국지(新三國志)-한중일 바둑 쟁패전 其1

바둑이란 게임은 오랜 옛날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일본에서 그 꽃을 피웠다.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귀족이나 양반같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도락 거리로 즐겼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400여 년 전부터 바둑을 생업으로 하는 전문기사제가 성립되어 기예(技藝)로서 바둑을 키웠다. 일본에서 실질적인 왕의 역할을 하였던 쇼군(將軍)은 바둑을 담당하는 관청을 두었으며, 또 1년에 몇 번씩은 전문기사들을 불러 바둑을 두도록 하고 그것을 직접 참관하기도 할 만큼 바둑을 높이 평가하였다. 때문에 일본은 체계적으로 바둑 기사들을 육성하는 시스템이 정비되어 한국이나 중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400여 년 전에 조선에서 바둑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있어서 조선에서는 도저히 상대를 찾을 수 없어 일본에 건너갔다고 한다. 일본에서 당시 최고 고수인 일해(日海)라는 승려와 대국을 가졌는데, 3점을 놓고도 졌다고 한다. 아마 바둑을 잘 모르시는 분은 3점을 놓고도 졌다면 어느 정도 실력차이인지 잘 모르겠지만, 굳이 예를 들자면 축구에서 한 10점쯤 접어주고 시합을 하는 정도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좀 더 알기 쉽기 설명한다면, 3점을 놓고 졌다고 한다면, 만약 동일한 조건으로 바둑을 둔다면 1,000판을 둬도 한판 이길까 말까 하는 실력차이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중국은 공산화되었고 또 문화혁명 때 바둑을 두는 것을 금지하였기 때문에 바둑을 생업으로 하는 프로기사가 생길 수가 없었지만, 우리나라는 1950년대에 프로기사 제도가 도입되어 바둑을 생업으로 하는 전문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일본과 비교한다면 그 실력차이는 엄청났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바둑 선각자들은 일본에 가서 바둑을 배웠고, 그들이 귀국하여서는 우리나라 바둑계를 휩쓸곤 했던 것이다. 

많은 한국기사들이 수업을 받았던 기타니 도장

그런데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물론 세계바둑의 본산은 일본인 것은 틀림없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바둑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면서 실력이 향상되기 시작하였다. 중국 또한 바둑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비록 프로 제도는 도입되지 않았지만, 실력 있는 기사들이 속속 배출되었다. 이렇게 한국과 중국의 바둑실력이 향상되자 바둑계에 있어 한중일 삼국 간에 불 뿜는 대결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히 앞서 간다는 일본을 한국이 따라잡았고, 다시 뒤이어 등장한 중국이 한국을 따라잡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가 세계바둑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우리나라에서 일대 바둑붐이 일어났다. 전국 곳곳에 어린이 바둑교실이 생겨 아이들은 태권도나 피아노를 교습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둑교실에 가서 바둑을 배웠다. 아마 부모들께서 바둑은 머리를 쓰는 게임이므로 바둑을 배우면 머리가 좋아지고 공부를 잘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서인 것 같다. 그렇지만 최근 10여 년 사이에 바둑의 인기가 줄어들어 바둑을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좀 아쉬운 마음도 든다.   


바둑은 이미 세계에 널리 보급되어 서양에서까지 바둑 애호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바둑 분야에 있어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국가는 아직도 한국, 중국, 일본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세계 바둑대회가 본격적으로 창설되면서 한중일 3국 간에 바둑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브런치에서는 20회 정도에 걸쳐 한중일 삼국 간의 바둑 쟁패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이 글은 7-8년 전에 필자가 고등학교 동기 밴드에 재미 삼아 썼던 글이다. 시간이 많이 지난 만큼 지금과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특별히 수정하지는 않고 그대로 업로드하려고 한다. 


바둑을 즐기시는 분들이 이 글을 읽는 것도 좋지만, 바둑에 대해서 모르는 분들도 재미 삼아 읽어주셨으면 한다. 이 글을 읽고 나시면 아마 친구들 사이에 바둑이야기가 나올 때 한 두 마디 씩은 거들 수 있을 정도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는 이미 이 브런치에 “바둑의 역사”에 대한 글을 12회에 걸쳐 연재한 바 있고, 그것을 “브런치북”으로 묶어두었다. 브런치북 <바둑의 역사>의 링크는 다음과 같다.    

https://brunch.co.kr/brunchbook/badu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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