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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Sep 30. 2023

일본바둑 위기의 전조(前兆)-더 이상 최고가 아니다

반상(盤上)의 신삼국지(新三國志)-한중일 바둑쟁패전 其6

<제1차 중일슈퍼대항전>에 출전한 일본기사들. 정말 세상에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었다. 기사들 간에도 서로 사이가 나쁜 사람들이 있다. “이봐, 고바야시 군. 자네 지난번 중국 가서 바둑 잘 두더구먼. 그렇게 져줬으니 자넨 정말 중국 사람들에게 인기 있겠어.. 큭큭큭” 하는 식으로 슬슬 긁어대며 놀리곤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금 더 심한 사람은 “에구, 아마추어들한테 깨지고, 그러고도 전문기사랍시고,, 쯧쯧.. 나 같으면 창피해서라도 못 돌아다니겠는데” 요런 식으로 놀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위로해 주는 척 하면서 속으로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해(1985년) <제2차 중일슈퍼대항전이 열렸다>. 일본 팀은 전년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비장한 각오로 대회에 임하였다. 1회 대회에서 지고 돌아온 선수들이 어떤 망신을 당했는지 뼛속으로 절절이 느꼈기 때문이다. 참가 선수들도 대폭적인 물갈이가 있었다. 
“자, 이제는 신켄 쇼부(眞劍勝負)다.” 
“이젠 절대 질 수 없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친선이고 나발이고, 이젠 절대 봐주는 것 없다.” 
“초반에 박살을 내버린다 ” 
라는 것이 일본선수단의 각오였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지난 1회 대회는 8:8의 승부였으나, 이번에는 9:9의 시합으로 바뀌었다. 시합에 임하는 일본팀의 결연한 의지는 곧바로 성적으로 연결되었다. 일본은 4장인 고바야시 사토시(小林覚) 8단이 5연승을 하는 등 파죽지세로 초반 중국을 압도해 나갔다. 그리고 5장으로 나온 카타오카 사토루(片岡聡) 8단이 중국의 8장 <마샤오춘>(馬暁春)에게 승리함으로써 드디어 중국을 막판으로 몰아넣었다. 이로서 일본은 5명의 초일류급 선수가 건재해 있는데 비해 중국은 주장 단 한 사람만 남겨놓고 모두 쓰러졌다. 일본의 승리는 이제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두고 있었다. 
 
이때 중국의 단 한 사람 남은 마지막 선수가 예의 주장 녜웨이핑(聶衛平) 9단. 녜웨이핑 9단은 등장하자마자 <카타오카 사토루> 8단을 쓰러뜨렸다. 이어 일본바둑의 다음 세대를 짊어질 것이라 평가를 받던 신예강자 야마시로 히로시(山城宏) 9단을 굴복시켰고, 노장 사카이 다케시(酒井猛) 9단마저 꺾어버렸다. 일본팀 선수는 순식간에 두 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순간 전년도 1회 시합의 악몽이 되살아난 일본팀으로서는 녜웨이핑의 예리한 칼날에 등골이 서늘한 한기(寒氣)를 느꼈을 것이다. 


다음 8장으로 나온 기사는 바로 우주류(宇宙流)로 유명한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 9단. 그렇지만 다케미야의 대우주도 녜웨이핑의 완력에 의해 유성처럼 사라져 갔다. 이제 단 한명 남은 일본팀 마지막 선수는 주장 오다케 히데오(大竹英雄) 9단. 바둑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에게는 미학(美學)이란 별명이 붙어있었다. 그는 바둑의 모양을 극도로 중시하여 “대국에서 지는 한이 있더라도 보기 싫은 수는 두지 않겠다”라고 하는 바둑의 탐미주의자로서,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에 걸쳐 일본바둑을 휩쓸었던 기사였다. 그렇지만 그런 <오다케>도 녜웨이핑 앞에서 벚꽃처럼 흩어졌다.  
 
이번에도 중국 우승. 
<녜웨이핑>은 그렇게 5명의 일본 기사들을 차례로 눕혀 버리고 다시 제2회 대회 우승컵을 다시 중국에 바쳤다. <녜웨이핑>은 지난해의 3연승에서 이번에는 무려 5연승을 기록한 것이다. 그것도 당시 일본의 최정상급 기사들을 상대로... 
 
중국은 열광하였다. <녜웨이핑>은 중국의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수천 년 전 중국인이 만들어낸 바둑이란 기예. 오랜 세월 동안 그 종주죽의 자리를 일본에 빼앗겨 있다가 녜웨이핑이란 한 사람의 기사에 의해 비로소 그 영예를 되찾아온 것이라 여겼다.
 
일본 기계는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이러한 결과를 두고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작년과 올해의 패배가 실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기 시작하였다. 중국 바둑이 어느새 일본의 턱 밑까지 따라온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예감이 들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일본 기계의 대세는 중국은 아직도 몇 수 아래이고, 이번 패배 역시 실수라고 보는 경향이 강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 다시 <제3회 중일슈퍼대항전>이 개최되었다. 일본 팀은 정말 비장한 마음으로 필승의 각오로 대회에 임하였다. 그러나 사정은 이전 두 해보다 더 좋지 않았다. 일본이 중국보다 먼저 막판에 몰렸다. 중국 팀 7장으로 나온 마샤오춘(馬暁春) 9단이 일본의 7장 타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 9단을 쓰러트리고, 일본의 주장인 카토 마사오(加藤正夫) 9단을 불러낸 것이다. 
 
그렇지만 대마 사냥을 원체 잘하여 살인청부업자(殺し屋, 코로시야)라는 별명을 가진 카토 9단은 만만치 않았다. 그 무시무시한 완력으로 마샤오춘을 제압하고, 중국팀 주장을 불러내었다. 일본팀 주장 카토는 다시 중국의 주장, 그 악마(惡魔) 같은 녜웨이핑(聶衛平) 9단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살인청부업자의 살수(殺手)도 녜웨이핑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결과는 녜웨이핑 9단 승. 
 
일본팀은 녜웨이핑(聶衛平)이라는 한 사람의 절대강자에 의해 중국과의 국가대항전에서 3년 연속 비참한 패배를 맛보게 되었다. 녜웨이핑은 일본기사들에게 공포의 상징이 되었다. 이리하여 일본 언론에 의해 붙여진 녜웨이핑의 별명이 “철(鐵)의 수문장(守門將)”. 1, 2회 대회에 이어 이번까지 3연속 패배를 맛본 일본팀이나 일본 기계에서는 이제 더 이상 일본의 패배를 실수나 이변으로 보지 않았다. 중국 바둑의 성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다음의 제4회 대회에서도 <녜웨이핑>은 2승을 추가하여, 그는 중일슈퍼바둑대항전에서 11연승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그렇지만 이해 우승은 일본으로 넘어갔다. 이후에도 중일슈퍼대항전은 계속되었다. <녜웨이핑>은 여전히 좋은 성적을 내었지만 전과 같은 압도적인 전적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중일슈퍼대항전 개막 이후 일본이 내리 맛본 3연패로 인해 일본 바둑인들의 머리에는 중국바둑의 성장이 선명히 각인되었다. 
 
일본 바둑계는 큰 충격을 받았고, 세계 바둑계에서 일본의 독주가 더 이상 지속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세계 바둑계에서 일본바둑의 신화가 조용히 막을 내리는 전주(前奏)였다.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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