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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Nov 06. 2023

한국바둑의 도약과 사천왕: "신산"(神算) 이창호

반상(盤上)의 신삼국지(新三國志)-한중일 바둑쟁패전 其14

요즘 금수저, 흙수저란 말이 유행처럼 쓰여지고 있는데, 한국바둑의 사천왕 가운데 서봉수와 유창혁이 흙수저 출신이라면, 조훈현과 이창호는 그야말로 금수저 출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창호는 바둑황제 조훈현의 유일한 내제자로서 정말 축복받은 환경에서 바둑을 수련할 수 있었다. 이런 좋은 환경과 타고난 천부적인 기재가 만나면서 이창호는 세계최고의 기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창호는 조훈현의 제자이긴 하지만 조훈현과는 기풍이 완전히 대조적이다. 조훈현이 경쾌한 풋워크로 화려하게 춤추며 잽을 날리고, 그리고 때로는 사나운 전신(戰神)이 되어 상대방을 몰아치지만, 제자 이창호는 느리고 둔하며, 온순하기 짝이 없는 바둑을 둔다. 승부에 대한 철저한 계산을 바탕으로, 화려하게 승리를 추구하기보다는 가장 이길 확률이 높은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스타일이다. 


처음 내제자로 맞이하였을 때 조훈현은 이런 이창호를 두고 기재, 즉 바둑에 대한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자기가 둔 바둑을 제대로 복기도 못하고, 또 두는 수에서 참신하거나 새로운 발상을 발견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평범하고, 둔하고, 느린 바둑으로 이창호는 이미 10대부터 한국바둑을 차근차근 점령해 나간다. 10대 중반부터 이창호는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였다. 그렇지만 이창호가 빼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기사들의 평가는 여전히 인색하였다. 


이창호가 승리하는 대부분의 바둑은 중반까지는 이창호가 불리하다가 끝내기 단계에 들어 상대방의 실수에 의해 이창호가 역전승하는 패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기사들이 이창호가 잘 두어서 바둑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실수로 운 좋게 이기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조훈현이나 유창혁, 서봉수는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수를 생각해 내고, 이를 통해 상대를 몰아치면서 승부를 이끌어 가는데 비해, 이창호의 바둑에서는 도무지 상대방을 압도하는 모습을 거의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철저한 계산, 그리고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길을 찾아내고, 상대방의 도발에는 굴욕적이라 생각될 정도로 물러서면서도 마지막 승리에 최종 목표를 두고, 그 길을 찾아가는 스타일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 전 소개되었던 조훈현의 인터뷰가 재미있다. 


조훈현이 이창호와 복기를 하고 있는데, 그 바둑 판세는 이창호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에 불리함을 깨달은 상대가 승부수로서 조금 무리한 수를 둬왔는데, 이창호는 상대의 도발에 맥없이 물러서는 것이 아닌가? 조훈현이 이창호에게 이 상황은 이창호가 압도적으로 유리하고, 또 상대가 무리수를 두어 왔기 때문에 이를 강하게 응징하면 승부를 쉽게 끝 낼 수 있는데, 왜 물러섰는지 질책하듯이 물었다. 


이창호가 대답하기를 

“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강력히 응징했으면 아마 간단히 바둑을 이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둔다면 싸움이 크게 번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제가 만에 하나 혹시 실수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제가 둔 것처럼 이렇게 물러서는 수는 최선의 수는 아니고 다소 손해이긴 하지만, 이렇게 둔다면 결코 지는 일은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조훈현은 그제서야 납득이 가서, 이 애는 정말 보통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듯이 이창호의 바둑은 오직 이기는데 모든 초점을 맞추고, 스스로의 승리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길을 찾아 그것이 둔하든, 느리든 한발 한발 초지일관 뚜벅뚜벅 걸어가는 방식이었다. 바둑 스타일이 이렇다 보니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창호에 대한 평가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창호가 10대에 이미 한국바둑을 휩쓸기 시작하자, 일본에서는 아무 특징도 없고 둔하기 짝이 없는 이창호가 한국바둑을 제패하는 것을 보고, 한국바둑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혹평하였다.  


1992년 <제3회 동양증권배 세계바둑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 결승에서 한국의 이창호와 일본의 임해봉(林海峰, 린하이펑)이 만났다. 임해봉이 누구인가? 대만출신의 기사로서 1960-70년대 일본바둑계를 호령했던 인물이 아닌가? <이중 허리>란 별명처럼 끈질기기 그지없고, 신중하며 아주 단단하게 대륙적인 기질의 바둑을 두는 기사로서, 1990년대 들어서도 여전히 일본 바둑의 최정상급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이창호가 그런 임해봉과 만났으니, 일본에서는 이미 승부가 끝난 게임이라 생각했다. 국내에서도 이창호가 국내기사들과의 시합에서는 상대방의 실수로 많이 이겼는데, 이것이 과연 국제무대에서도 통할까, 더욱이 임해봉은 신중하기 그지없는 기사라 그런 우려는 더욱 컸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기사”라는 것이 그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평가였다. 그러나 이 시합에서 이창호는 임해봉에게 3:2로 역전승하여 우승을 차지한다. 당시 만 16세, 최연소 세계바둑대회 우승 기록이다. 이창호는 이 승리로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도 건너지 않는 기사”라는 평가들 듣는다.  


이듬해 <제4회 동양증권배 세계바둑대회>가 개최되었다. 그 당시 일본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조치훈 9단도 이 대회에 참가하였다. 대회 참가를 위해 내한한 조치훈은 조훈현을 만났다. 이 당시 조훈현은 이창호를 상대로 승리의 맛을 보지 못하고, 연전연패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조훈현을 만나 조치훈은 

“이창호는 아직 바둑 정상에 설 실력도, 시기도 아니야. 너무 어린 나이에 일찍 정상에 서면 이창호 본인을 위해서도 좋지 못해. 지금의 이창호는 져야 할 때야. 그것이 본인에게도 약이 되는 거야. 이런 걸 생각할 땐 이창호에게 계속 지기만 하는 조훈현이 크게 잘못하는 것이야. 이창호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지금은 우리가 그를 이겨줘야 할 때야”

라고 질책하듯 말했다. 


이창호에게 연일 지고 있던 터라 조훈현은 이 말에 아무 대답도 못하고 씁쓸하게 쓴웃음을 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속으로는 “그래, 너도 한번 당해 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하고 볼 맨 소리를 삼키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 대회 결승에서 이창호와 조치훈이 만났다. 그러나 이창호를 단단히 교육시켜 주겠다던 조치훈은 이창호에게 도리어 3:0으로 참담한 스코어로 “참 교육”을 당하고 만다. 이러한 일이 있자, 일본에서도 이창호 바둑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의외로 강한 바둑일지도 모른다. “라는 의견이 일각에서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창호는 이후 호랑이가 날개를 단 듯이 국내대회는 물론, 세계대회를 향해 비상하고 세계를 제패해 나간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이창호는 거의 10년에 걸쳐 세계바둑을 제패하는데, 지금까지 전무후무한 일이다. 오직 승리에 초점을 맞추고 인내하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철저히 계산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그의 독특한 바둑스타일로 이창호는 석불(石佛)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중국에서는 그에게 신산(神算)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창호는 세계대회를 통산 21회 제패하였으며, 그 가운데 메이저 대회만도 17개가 된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그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록이다. 이창호의 뒤를 이어 자신의 시대를 만들었던 이세돌이 14회, 그리고 이세돌과 함께 세계바둑을 양분하였던 중국의 구리(古力)가 8회, 이세돌을 물리치고 2010년 중반대 세계의 패자로 등장한 커제(柯洁)가 8회, 역시 2010년 중반 커제의 왕국을 한귀퉁이에서 무너트리고 있던 우리나라의 박정환이 5회, 그리고 지금 세계 랭킹 1위로서 세계바둑을 제패하고 있는 신진서가 5회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창호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세계대회에서 우승권에서 멀어지자 아낌없이 프로 기사생활을 은퇴해버린 이세돌과 지금은 국내 랭킹 100위 언저리까지 떨어졌지만 꾸준히 기사생활을 하고 있는 이창호를 비교한다면 어느쪽을 더 평가할 수 있을까? 사람들마다 평가기준이 다르겠지만, 나는 옛날의 영광을 뒤로하고 지금도 열심히 바둑을 두고 있는 이창호에게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세돌이 한때 세계를 호령하였고, 그뒤를 이어 중국의 커제가 세계바둑의 일인자로 평가받았으며, 다시 신진서가 세계 최강자로 등극하였지만, 지금까지 이창호만큼 완벽하게 그리고 장기간동안 세계정상으로 군림하지는 못하였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신진서가 월등한 실력차이로 세계 1위로 평가받고 있지만, 과연 이창호만큼 철저히, 그리고 장기간에 걸쳐 세계 바둑을 제패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이창호의 기록을 넘어 설 기사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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