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형 Nov 26. 2023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강자: 마샤오춘과 창하오

반상(盤上)의 신삼국지(新三國志)-한중일 바둑쟁패전 其16

지난 이야기 말미에  "홍어X"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잠시 옆길로 빠진다. 만만한 게 “홍어X“라는데, 홍어의 고추는 왜 세상에서 제일 만만할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설이 홍어는 암컷이 맛도 있고, 때깔도 좋아 어부들이 수컷 홍어를 잡으면 먼저 고추부터 베어내 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유력한 설은 홍어 고추에는 가시가 많아 그물을 꼬이게 하고, 잡은 후 작업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어부들이 홍어를 잡으면 먼저 고추를 베어 버린다는 설이다. 세 번째는 소수설로서 홍어는 먹이를 잡기 위해 고추를 어린 물고기를 유인하는 미끼로 쓴다고 하는데, 지나가는 물고기들이 모두 홍어 고추를 한 번씩 툭툭치고 지나가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마치 아구가 혀를 낚시 미끼로 써서 먹잇감을 유인하듯이.... 어쨌든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한국바둑의 최전성기, 이때 세계 최정상급의 바둑실력을 갖고 있으면서 때를 잘못 만나 스러져간 두 명의 중국 기사가 있었다. 
 
 바로 마효춘(馬曉春, 마샤오춘)과 창하오(常昊)이다. 
 
 동오(東吳)의 주유(周瑜)는 “왜 하늘은 이 주유를 낳고, 또 공명(公明)을 낳았는가?”라고 하늘을 원망했다지만, 마효춘과 창하오야 말로 “왜 하늘은 이 마효춘과 창하오를 낳고, 또 조훈현, 이창호를 낳았는가?”라고 땅을 치며 통탄했을 것이다. 마효춘, 창하오 둘 다 세계 최정상급 기사로서, 몇 번인가의 세계대회 우승 경험도 있다. 마효춘은 세계대회를 2회 우승한 바 있고, 창하오는 중국 국내바둑 대회를 석권하면서 세계대회 6연속 준우승을 하다가 제5회 응창기배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통산 3번 세계대회 우승을 하였다. 


그렇지만 조훈현과 이창호만 없었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세계 바둑사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였을 기사였다. 
 
마효춘이나 창하오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승승장구하다, 결승에서 꼭 조훈현이나 이창호를 만나 패퇴하였다. 그들이 결승에서 조훈현이나 이창호를 만나 패배할 때는 꼭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중반까지는 대개 압도적으로 유리한 바둑을 만들어놓고, 끝내기에 가서 한수의 실수, 정말 천려일실(千慮一失)로 승부가 역전되는 것이었다. 특히 이창호를 만날 때는 더하였다. 
 
그 당시 바둑 중계방송 해설을 회상해 보면, 우리나라 해설가가 말하기를 “승부는 이제 끝났다. 아무리 이창호라 해도 이제 도저히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없다. 이번에는 분명한 이창호의 패배다.”라고 단정 짓는 그 순간, 그때부터 바둑은 아주 조금씩 차이가 좁혀져, 결국 마지막에는 반집 차이로 이창호의 승리로 승부가 역전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대국이 어쩌다 한 두 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대국이 거의 그런 패턴으로 흘렀다. 그러니까 아마 두 사람은 미칠 지경이었으며, 자다가도 그 생각만 하면 벌떡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기가 이창호보다 실력은 훨씬 나은데, 매번 한 수의 실수로 진다고... 그들은 정말 그 수많은 억울한 승부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을 거다. 
 
마효춘은 하늘을 찌르는 재주를 가졌으면서 그렇게 쓸쓸히 퇴장하였고, 창하오는 지금도 여전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그의 시대는 가버렸다. 조훈현은 녜웨이핑을 보내버렸고, 이창호는 마효춘, 창하오를 날려 보내버렸다. 중국이 낳은 이 3인의 불세출의 기사들에게 있어 조훈현, 이창호는 정말 꿈에 만날까 두려운 무서운 악귀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조훈현, 이창호가 한풀 꺾여 이제 한숨을 돌리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다시 어디로 튈지 도저히 예상할 수도 없는 변화무쌍한 바둑을 두는 이세돌이란 새로운 어린 고수가 출현한다. 마효춘과 창하오는 진정 시대를 잘못 만났다고밖에 할 수 없는 불운한 천재들이었다. 
 
여기서 마효춘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잠시 옆길로 빠져 “마효춘의 굴욕”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 
 
미니 국제대회로서 「TV아시아 바둑선수권대회」라는 속기바둑대회가 있다. 우리나라의 KBS, 일본의 NHK, 중국의 CCTV는 모두 국영방송사인데, 각각 자국에서 속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TV아시아 바둑선수권대회」는 이들 각국 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한 기사 6명과 전년도 우승자 1명을 더하여 7명이서 벌이는 국제 속기 기전이다. 이 속기 전에서 마효춘 9단이 우리나라의 서능욱 9단을 만났다.  
 
서능욱 9단은 “손오공”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상상할 수 없는 괴초(怪招)를 좌충우돌 현란하게 구사하는 기사인데, 기관총과 같은 속기(速棋)이다. 속기라면 프로에서 은퇴한 김희중 9단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서능욱과 김희중이 공식 대국에서 만나 5분 만에 바둑 한판을 두어버렸다는 전설 같은 기록도 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서능욱 9단은 속기 전에서는 종종 실력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과거 프로기사들은 바둑 연습을 위해 1만 원을 걸고 10분 만에 끝내는 속기 내기바둑을 자주 두었다고 한다. 이런 내기바둑에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모두가 인정하는 당시 세계랭킹 1위인 최전성기의 이창호가 서능욱에게 말려들어 2점을 놓고도 졌다는 말이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여하튼 마효춘과 서능욱이 만났으니 그 결과는 눈에 뻔히 보였다. 마효춘은 세계 최정상급의 기사이고, 서능욱은 이미 국내에서도 정상급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러한 형편이었으므로 마효춘의 승리는 기정사실이었으며, 마효춘은 서능욱을 자기 보다  몇 수 아래의 하수로 생각한 게 틀림없었다. 예상대로 마효춘은 여유 있게 서능욱을 리드해 갔고, 중반전이 지나면서 승부는 거의 결정되었다. 


그렇지만 바둑이 불리하더라도 여간해서는 돌을 던지지 않는 것이 또한 서능욱의 특징이며, 바둑이 불리하면 온갖 꼼수를 다 동원해 보는 것이 그의 평소 스타일이기도 하다. 그는 완전히 진 바둑이었지만 기관총을 쏘듯 손가락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바둑돌을 놓고 있었다. 이에 열받은 마효춘, 같이 손 따라 기관총 응사를 하다가 그만 서능욱에게 말려들어 버렸다. 마효춘은 아마추어라도 하지 않을 실수를 하여 그 좋은 바둑을 역전패당해 버린 것이었다. 
 
늘 하던 대로 대국이 끝나 여자 아나운서는 두 대국자와 국후 소감에 대해 인터뷰를 하였다. 자기보다 몇 수 아래 하수로 생각되는 기사에게 말도 안 되는 실수로 져버린 마효춘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분통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승리한 서능욱과 인터뷰를 마친 여자 아나운서는 다 이긴 바둑을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져서 얼굴이 벌게져 있는 마효춘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마효춘 9단께서는 서능욱 9단으로부터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었나요?” 이 말을 들은 통역자, “윽!!”하고 당황하였다. 스스로 세계 최정상이라고 자부하는 기사에게 그보다 몇 수 아래인 2류 기사로부터 어떤 점을 배웠느냐는 정말 망발에 가까운 질문... 그렇지만 통역은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마효춘에게 전하였다. 큰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마효춘, 잠시 할 말을 잊고 멍한 상태로 있다가 겨우 하는 말이
“없는데요....ㅠㅠ”


(2016년 11월)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영화: 박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