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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Dec 26. 2023

영화: 죽음의 가시(死の棘)

불륜을 저지른 남편에 대해 광기 어린 심문을 하는 아내

■ 일본여자와 한국여자, 누가 더 무서운가?


한국여자와 일본여자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무서울까? 예를 들면 한국여자들은 부부싸움을 할 때 남편에게 온갖 악담을 퍼부으며 달려드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일본여자들은 그런 경우가 드물다. 남편이 화를 내면 다소곳이 물러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연히 길을 가다가 싸우는 장면을 보면 한국여자들이 펄펄 뛰며 욕설을 해대는 광경을 가끔 본다. 그렇지만 일본여자들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30년 전쯤 어느 일본인 작가가 쓴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이 작가는 일본의 술집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는 한국여자와 만나 결혼을 하였는데, 그 책의 내용이 대부분 자신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책에서 “한국여자와 일본여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무서운가”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들어 이야기해 주고 있다. 


자신이 결혼을 하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소한 일로 부부싸움이 시작되었는데, 아내가 달려드는 바람에 감당을 못하고 그냥 깨갱하고 주저앉았다는 거다. 얼마 후 또 의견 충돌이 생겨 부부싸움이 시작되었는데, 아내가 펄펄 뛰며 온갖 욕설과 악담을 퍼부으며 달려든다는 것이었다. 역시 자신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그날 저녁 “이젠 이 결혼생활도 끝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내가 그렇게 자신에게 온갖 욕설을 다 퍼부었으니, 내일은 당장 이혼하자고 달려들 것이라고 짐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웬걸, 다음날이 되니 아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웃으며 평소와 같이 행동하더란 것이었다.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난리를 쳤으면 당장 헤어지자고 달려들 텐데, 그 일을 까맣게 잊은 듯이 행동하니 혹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는 거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거다. 부부싸움을 할 때는 당장에라도 죽일 듯이 달려들다간, 조금만 지나면 금방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더란 것이다. 


그러면서 그 작가는 조금씩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내는 싫은 것이 있으면 금방 폭발해 버리고 화가 풀리면 그 일을 잊어버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즉 자신의 아내는 감정 표현이 바로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일본여자들은 다르다. 성격이 맞지 않아 다투는 일이 있더라도 폭발하여 거의 이성을 잃은 듯 달려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대신 얼마가 지나더라도 그 일을 잊지는 앉는다. 마음속에 꽁하니 두고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두고두고 그 일을 꺼내고 또 꺼내어 남자들을 압박한다. 그래서 그 작가는 처음에는 한국여자인 아내가 이상하게 생각되었지만, 차츰 살다 보니 오히려 그 성격이 도리어 좋게 다가온다는 것이었다. 즉 한국여자들은 외향적으로서 양(陽)의 기질이 강한데 일본여자들은 내향적으로 음(陰)의 기질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국여자와 살면서 한국여자가 아주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일본여자가 더 무섭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일본여자와 한국여자가 섞여있는 어느 술집에 가서 호스티스들에게 한국여자와 일본여자들 중 어느 쪽이 더 무서우냐고 물어봤더니, 대부분의 여자가 일본여자가 더 무섭다는 대답이었다고 한다. 다들 그 작가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한국 여자들은 감정을 바로 폭발시키고는 곧 잊어버리고 마는데, 일본여자들은 감정을 숨기는 대신 두고두고 그 일을 잊지 않으며 속으로 칼을 간다는 것이다. 


■ 개요 


영화 <죽음의 가시>(死の棘)를 감상하니 “일본여자의 무서움”에 대한 책이 생각났다. 이 영화는 시마오 토시오(島尾敏雄)가 쓴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 소설은 아주 걸작으로 평가되어, 일본문학상, 요미우리 문학상, 예술상을 수상하였다. 이 영화는 1960년에 제작되었는데, 상영시간이 무려 229분으로서 4시간에 가까운 긴 영화이다. 이 영화는 불륜을 저지른 남편에 대해 아내가 심문을 하듯이 조근조근 남편에게 잘못을 따져가면서 미쳐가는 모습과 광기를 더해가는 아내를 고치기 위해 애쓰는 남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남편의 불륜이 알려진 후 아내가 질책을 하자 남편은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아내에게 약속을 한다. 아내도 더 이상 따지지 않겠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내는 수시로 그 일을 꺼내며 마치 검사가 범죄자를 심문하듯이 조근조근 남편에게 불륜 사실에 대해 묻는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남편은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른다. 남편뿐만 아니다. 아내도 남편을 심문하다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고 다시 모두 잊기로 했던 옛날 일로 돌아가 따지고 든다. 그러면서 아내는 점점 광기가 더해진다. 남편은 처음에는 그런 아내의 행동에 거의 미칠 지경까지 몰리지만, 아내의 모습이 정상이 아니란 것을 알고는 다시 본래의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을 한다. 


■ 줄거리


때는 1950년대 후반 무렵, 전쟁 중에 만나 사랑에 빠진 토시오와 미호는 전쟁이 끝나자 결혼한다. 곧 아들 신이치와 딸 마야가 태어나 이들 4명 가족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결혼 10년째에 접어든 어느 날 토시오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미호가 알게 된다. 토시오는 결혼 직후부터 쿠니코(邦子)라는 여성과 바람을 피운 것이었다. 


남편의 배신에 충격을 받은 미호는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는다. 자신은 평생을 토시오에게 바쳤는데, 그 대가가 겨우 이것인가 하면서 남편에게 따진다. 죽으려고 하는 그녀에게 토시오는 무릎을 꿇고 연신 용서를 빈다. 미호는 “머리가 가마솥이 씌어진 것처럼 조여 온다”라고 중얼거리면서 머리를 좀 때려달라고 한다. 토시오는 그 말대로 미호의 머리를 두들겨 준다. 


미호는 있는 일 없는 일 다 꺼내며 “뭔가 숨기는 것이 있을 것”이라며 토시오를 심문한다. 미호는 토시오의 과거의 사소한 일까지 끄집어내어 이것저것 있는 것 없는 것 다 까발려 모든 죄를 다 밝히도록 하겠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토시오는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위축되고 만다. 어느 날 저녁 토시오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미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근처를 찾아보다가 보이지 않자 토시오는 쿠니코의 집에도 가본다. 토시오는 쿠니꼬에게 앞으로 관계를 끊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돌아온다. 

토시오가 집으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미호가 돌아왔다. 그리고는 “오늘이야 말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려고 했는데”라며 스스로를 책망한다. 다음날 부부는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한다. 미호는 억양 없는 목소리로 “당신이 말하는 이야기는 모두 믿을 수 없어요”라며 쏘아붙인다. 미호는 토시오가 쿠니코에게 초콜릿이나 속옷을 선물했다는 것도, 입원비용을 대주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화가 치밀어 오른 미호가 토시오의 뺨을 때리자, 토시오도 바로 미호를 때린다. 그리고는 부부는 앞다투어 집을 나가려고 한다. 미호는 10년 동안 참아왔는데 토시오를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다면서 울며 소리 지른다. 토시오는 다시 용서를 빌며 앞으로 10년 동안 오로지 당신만 바라보며 헌신적으로 당신을 위해 살겠다고 약속한다. 


토시오는 모든 노력을 미호에게 헌신하였다. 어디엘 가더라도 다른 곳에 가지 않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으며, 미호가 원하는 대로 집 담장도 새로이 정비한다. 그런 토시오에 대해 미호도 만족하는 것 같았지만, 언제나 무슨 일이 있으면 갑자기 토시오에게 심문을 시작한다. 몇 번이나 사과해도 과거를 들춰내어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미호에게 토시오도 점점 미쳐간다.  큰소리를 지르며 집을 뛰쳐나가기도 하고, 자살을 하려고도 한다. 그럴 때면 미호는 평정심을 되찾아 자신이 너무나 몰아붙이니까 토시오의 머리가 이상하게 돼 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중얼거린다. 


새해가 돌아왔다. 가족들 모두 신년을 맞이하여 연날리기를 하려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때까지 침착하게 있던 미호가 갑자기 역 플랫폼에서 “그년이 저기 있다!”라고 소리 지른다. 토시오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미호는 쿠니꼬를 미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토시오는 드디어 미호를 정신과 병원에 데리고 간다. 미호는 정신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화가 나 소리 지르지만, 강제로 입원시켜 버린다. 엄마가 없어지자 아이들도 동요하기 시작한다. 미호는 토시오에게 매일 문병을 오라고 요구하다가, 결국은 병원을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와 버린다. 

가족은 집을 시골로 이사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그곳에 쿠니코가 나타난다. 토시오를 포기하지 않은 그녀는 위로금을 전해주겠다는 명목으로 토시오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당연히 미호는 분노로 날뛰며 토시오에게 자기가 보는 앞에서 쿠니꼬를 때리라고 명령한다. 토시오는 그 말대로 쿠니꼬의 뺨을 때린다. 미호는 도망치는 쿠니꼬를 따라가 정원에서 그녀를 쓰러트리고 올라 타 그녀에게 폭행을 가한다. “토시오 씨 잘 봐요! 당신이 이렇게 한 거야!”라며 쿠니코가 울려 소리친다. 밤중에 갑작스러운 소란으로 경찰과 근처 주민들이 나타나자 둘은 조용해진다. 


미호는 결국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미호의 고향인 아마미오시마(奄美大島)에 있는 친정집에 맡긴다. 토시오는 미호의 간병을 하겠다며 병원에 남는다. 밤이 되자 미호가 갑자기 사라진다. 비상구를 통해 밖으로 나간 것 같다.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하고 토시오는 토시오는 말없이 연못 바닥을 장대로 확인해 본다. 다시 토시오가 병원으로 돌아오자 평온하나 얼굴을 한 미호가 복도에 서있다. 미호는 “토시오가 우니까 돌아와 버렸어”라고 말한다. 지속수면 요법에 들어간 미호의 병실은 어둠에 싸여, 색상등만이 미호와 토시오를 비쳐주고 있었다. 토시오는 미호가 잠들어 버리면 쓸쓸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미호는 “그러면 또 한 번 시끄럽게 해줄까요?”라며 웃는다. 


■ 약간의 느낌 


남편을 조근조근 심문하면서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여자의 광기가 무섭다. 그렇지만 4시간에 가까운 상영시간은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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