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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Dec 09. 2023

영화: 하나레 고제 오린(はなれ瞽女おりん)

홀로 북륙(北陸) 지방을 떠돌아다니는 젊은 맹인 여악사의 슬픈 일생

■ 고제(瞽女)에 대하여


의료 수준이 낮았던 과거에는 장애인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몸이 성한 사람도 살기 어려웠던 그 시절에 장애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여간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이들 시각장애인들이 일종의 조합(길드)을 만들도록 하여,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사업을 허용하였다. 시각장애인들의 조합을 "토도자"(當道座)라 하였다. 토도자에 독점적으로 허가된 대표적인 업종이 '안마사', 요즘식으로 말한다면 마사지사였다.


토도자에는 남자들만이 가입하였다. 그럼 여성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하였을까? 그녀들에게는 안마사란 직업이 적당치 않다. 성적인 트러블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여자의 몸으로 홀로 살아가기 힘들므로, 그녀들은 집단으로 모여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들은 거기서 샤미센이나 호궁 등 악기 연주와 노래 등을 익혀 잔치 등의 행사가 있는 곳에 불려 나가 흥을 돋워주고 그 대가를 받아 살아갔다. 그런 파티나 잔치가 자주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들은 무리를 지어 떠돌아다니며 공연을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예능을 하는 여성 시각장애인을 '고제'(瞽女)라 하였다. 아마 여자 맹인을 뜻하는 중국어 "고희"(瞽姬)에서 전래된 말인 듯하다. 고제 집단에서는 남자와의 성관계를 엄금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아마 장애를 가진 그녀들로서는, 아기라도 생기면 혼자 살아가기도 힘든 몸으로 감당이 안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리라. 아니면 장애를 가진 몸으로 남자들에게 버림을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더 큰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고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로서, 이 블로그에서 이전에 <이치>라는 작품을 소개한 적이 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다음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s://blog.naver.com/weekend_farmer/222973074466


■ 개요


<하나레 고제 오린>(はなれ瞽女おりん)은 미즈카미 츠토무(水上勉)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서, 1977년 일본에서 제작되었다. 미즈카미 츠토무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서 이 블로그에서 이전에 <기아해협>(飢餓海峽)이라는 영화를 소개한 바 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s://blog.naver.com/weekend_farmer/222716535388


“하나레 고제”란 무리에서 추방당해 홀로 떠돌아다니는 고제를 일컫는다. 영화 <하나레 고제 오린>은 5살에 고제의 무리에 들어간 “오린”이라는 소녀가 나이가 들면서 악기와 음악을 배워 고제가 되었으나, 남자와의 성관계를 이유로 무리에서 쫓겨 나와 홀로 떠돌아다니며 겪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오린은 북륙지방(北陸地方)의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여행하면서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리고 헤어진다. “북륙지방”이란 일본 중부지방의 북쪽 지대를 말하는 곳으로, 그쪽 해안은 우리의 동해, 일본인으로 말하자만 일본해에 연한 바다이다. 영화에서는 북륙지방의 아름다운 해안의 모습이 서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 줄거리


음악을 연주하면서 방랑하는 고제의 무리에 어떤 남자가 5살의 눈먼 소녀 “오린”을 데리고 와서는 고제의 무리에 받아달라고 사정을 한다. 오린은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살다가, 엄마가 죽는 바람에 의지할 데 없는 몸이 된 것이다. 이를 딱하게 생각한 근처의 약국 주인이 고제의 무리를 찾아와 오린을 받아달라는 것이었다. 고제의 우두머리인 테루요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 오린을 자신의 무리에 받아들인다. 고제들 속에서 마음 착한 우두머리 테루요와 언니들을 따라 각지를 돌아다니며 고제의 예의범절과 샤미센(三味線), 노래 등을 배워나가면서 오린은 한 사람의 고제로서 성장한다.  

오린이 속해 있는 고제의 무리는 모두 10명이 조금 못 되는 여자 시각장애인이 모인 집단으로 그녀들은 일이 없을 때는 함께 사는 집에서 생활하다가 잔치나 행사가 많은 계절이 되면 집을 나와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방랑을 하면서 연주를 해주고 돈을 모아서는 집으로 돌아온다. 시간은 흘러 오린은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고제들은 술판에 불려 나가 연주를 한다. 아름다운 오린을 본 남자들은 오린을 유혹한다. 오린은 그런 남자의 유혹을 거절하지 않는다. 남자와 자서는 안된다는 규칙을 어긴 오린은 고제의 무리에서 쫓겨나 혼자서 방랑생활을 시작한다.      


오린은 방랑생활을 하면서 남자들이 그녀의 몸을 요구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녀가 더 적극적으로 남자에게 다가가기도 한다. 그녀는 사람이 그리운 것이었다. 사람의 따뜻한 체온이 그리웠던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린은 헤이타로(平太郎)라는 남자를 만난다. 헤이타로는 탈영병이다. 때는 아마 일본 군국주의 시대였던 것 같다. 그 시대에 있어 군인의 탈영은 아주 큰 범죄였다. 헤이타로는 오린을 마치 여동생처럼 생각하며 그녀와 함께 북륙지방을 함께 여행한다.  


헤이타로는 오린과 함께 여행을 하지만 결코 그녀의 몸을 탐하지는 않는다. 외로운 오린은 헤이타로에게 자신을 안아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헤이타로는 오린을 여동생으로 생각한다며 결코 그녀의 몸에 손을 대려 하지 않는다.

헤이타로는 오린을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게다, 즉 일본식 나막신을 만들어 팔며 생계비를 번다. 오린은 그런 헤이타로의 장사를 도우며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헤이타로가 장터에서 게다를 늘어놓고 팔고 있을 때 야쿠자가 찾아와 자릿세를 내라고 요구한다. 헤이타로는 자릿세를 못주겠다고 하여 실랑이가 벌어지고 결국 싸움이 벌어져 헤이타로는 경찰에 끌려간다. 혼자 남겨진 오린을 함께 장사 다니던 약장소 벳쇼(別所)가 보살펴 준다. 그런데 벳쇼는 이전부터 오린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다. 덤벼드는 벳쇼를 피해 숲 속으로 도망쳤지만, 오린은 결국 벳쇼에게 몸을 빼앗긴다.


헤이타로가 풀려 나와서 오린이 벳쇼에게 몸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분노한 헤이타로는 벳쇼를 쫓아가 칼로 찔러 죽이고 만다. 냉정을 되찾은 헤이타로는 경찰에 잡힐 것을 두려워해 오린에게 사건이 진정될 때까지 잠시 헤어지자고 한다. 그들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헤어져 여행을 떠난다.


다시 홀로 된 오린은 자기와 같은 처지의 고제인 타마와 만나 함께 여행을 시작한다. 한편 살인 용의자인 헤이타로를 쫓고 있던 경찰은 그가 육군에서 탈영한 탈영병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오린은 타마와 함께 젠코지(善光寺)란 절을 참배하다가 다시 헤이타로를 만난다. 타마는 오린과 헤이타로의 행복을 빌며 조용히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서로의 사랑을 재확인한 오린과 헤이타로는 그날 밤 처음으로 맺어진다. 둘은 드디어 오린의 고향인 바닷가 마을에 왔지만, 그곳에서 헤이타로가 경찰에 체포되어 버린다.

고제는 경찰로부터 심문을 받자, 헤이타로를 보호하려고 살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다른 방에서 심한 고문을 받던 헤이타로는 오린을 위하여 살인을 자백해 버린다. 오린과의 마지막 면회를 허락받는 헤이타로는 철창 넘어 그녀의 손을 잡고는, 자신이 천애고아라는 사실은 거짓말이며 어머니가 살아있다는 것을 울면서 고백한다. 다시 혼자가 된 오린은 옛날에 살았던 고제 공동살림집을 찾아간다. 그러나 우두머리였던 테루요는 벌써 세상을 떠나버려, 쓸쓸한 그 집에서 오린은 고독에 흐느껴 운다.


세월은 흘러 바닷가 마을에는 선로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잠시 일을 쉬고 있던 노동자 한 사람이 반도의 끝에 있는 숲 속 나뭇가지에 빨간 천이 걸려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로 가 보니 그 아래에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샤미센과 사람의 해골이 놓여 있었다..


■ 약간의 감상


정말 감동적이며, 재미있고 좋은 영화이다. 일본 영화가운데 이 정도의 뛰어난 작품은 정말 오랜만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오린 역은 이와시타 시마(岩下志麻)가 맡았는데, 그녀가 출연한 작품을 여러 편 보았지만, 이 영화만큼 아름답게 나온 모습은 본 적이 없다. 혼자서 눈 덮인 숲과 바닷가를 방랑하면서 체온이 그리워서 애타게 사람을 찾은 오린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시리다. 그리고 고제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면서 서로를 북돋워가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영화를 감상한 후, 이 영화에서 느껴진 감정과 비슷한 느낌을 이전에도 경험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바로 우리나라 영화 <서편제>를 감상한 후의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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