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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Nov 09. 2023

(2023-11-08) 좋은 가을날 군산 나들이

청암산 둘레길 산책과 비응도 낙조 풍경

대학 같은 과 동기인 친구가 친구들을 군산으로 초대하였다. 원래 군산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친구였지만, 우연한 경로로 망하기 일보 직전의 회사의 전문경영인으로 영입되어, 불과  몇 년 만에 회사를 완전 정상화시킨 것은 물론 초우량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유능한 친구이다. 지난번 동기 모임에서 한번 초대하겠다는 약속을 지켜 오늘 우리를 초대한 거다. 다른 부담 갖지 말고 몸만 가지고 내려오라고 신신당부한 친구였다.


여섯 명의 친구는 서울에서, 그리고 나는 세종시에서 군산을 향해 출발하였다.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군산에 놀러 가는데, 거의 다 자동차를 이용하였고 이번에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군산으로 간다. 오전 11시에 군산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해, 아침 7시 반에 집을 나섰다. 요즘은 늦잠으로 매일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일어나고 있어, 이렇게 아침 일찍 밖으로 나와 보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세종에서 군산까지 가기 위해선 대전복합버스터미널로 가서 시외버스를 타야 한다. 그것도 하루에 몇 대 없다. 대전 터미널까지 가는데만 1시간 반이상이 걸린다.


우리나라의 대중교통 여건이 아주 잘 되어 있다고들 아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물론 서울과 지방 사이의 교통여건은 아주 좋다. 그렇지만 지방에서 지방으로의 이동은 그렇지 않다. 세종시 집에서 군산까지 자동차로는 50분 남짓 걸리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3시간 반은 걸린다. 집에서 공주까지 20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대중교통으로 가자면 두 시간은 잡아야 한다. 그것도 차 시간에 잘 맞춰 갔을 때 이야기이다. 


시외버스 승객은 단 세 사람. 차창에 기대어 바깥 경치를 본다. 이렇게 느긋하게 바깥 경치를 구경하며 여행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도로가의 나뭇잎들이 누릇누릇해져 간다. 오늘이 11월 8일이건만 아직도 단풍이 제대로 든 것 같지 않다. 이전에는 남쪽도 10월 말이면 단풍이 절정을 이루었던 것 같은데, 이것도 지구온난화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니면 올해가 단풍이 특별히 늦은 건지. 

군산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서울서 출발한 친구들이 먼저 와 있다. 생각도 못한 그리운 얼굴을 만났다. 대학동기인데 증권회사에 다니다 젊을 때 고향인 익산으로 낙향한 친구이다. 졸업 후 처음 본 것 같은데, 머리만 하얘졌을 뿐 얼굴은 45년 전 그대로이다. 외지에서 찾아간 친구가 7명이라 우리를 초대한 친구와 함께 우리를 안내하겠다며 나온 거다. 


먼저 점심식사를 할 한정식집으로 갔다. 한정식이라면 역시 전라도이다. 온갖 요리가 나오는 푸짐한 상에 소맥을 몇 잔 들이켜니 기분이 알딸딸해진다. 특히 삼합 요리는 일품이었다. 나는 고향이 경상도이지만 삭힌 홍어찜이나 삼합 같은 전라도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라 이야기꽃을 피운다. 대부분 은퇴하였지만 저마다 즐겁고 알차게 산다.


먼저 계획에 따라 청암산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청암산은 군산 외곽에 있는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인데, 산자락에 있는 큰 호수를 따라 둘레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훨씬 큰 호수이다. 연천에 있는 산정호수보다 훨씬 더 넓다. 그 호수 옆을 따라 아주 편한 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아주 평탄하고 걷기 쉬운 길이다. 조금 걸으니 대숲이 나타난다 빽빽하게 우거진 대나무 숲 사이로 길이 계속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보기 힘들 정도의 굵은 대나무이다. 담양에 있는 대나무 테마공원인 죽녹원에 몇 번 가 본 적이 있는데, 그곳보다  여기가 오히려 나은 것 같다. 담양 죽녹원이 인공적인 것이라면, 여긴 좀 더 자연에 가깝다.


편하고 힘들지 않은 길이라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걷는다. 그런데 나이 70이 넘은 할배들은 어떤 대화를 나눌까? 젊을 때는 나이 든 사람들은 매우 점잖고 고상하고 달관된 대화를 나누는 걸로 생각했다. 그게 아니다. 젊으나 늙으나 친구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비슷하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특별히 더현명 해지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킬킬대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눈다. 다만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건강이나 가족 등에 대한 화제가 많은 편이다. 나는 내 경험에 비추어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사람이 특별히 더 현명해진다거나 하는 건 아니라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 가끔 신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100세 넘은 노철학자 분에 대해서도 그가 특별히 현명하다거나 대단한 경륜이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다 보니 산책길이 금방이다. 고관절이 아파 못 걷겠다던 친구는 펄펄 날듯이 앞서간다. "제일 빠른 길은 친구와 함께 걷는 길"이란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느새 목표지점까지 왔다. 이후 스케줄 때문에 호수 주위를 완전 일주할 수는 없으며 돌아가야 한다. 쉼터가 보이길래 잠시 쉬다가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왔다. 두 시간 이상 걸은 것 같다. 요즘 거의 매일 집에 들어박혀 있었는데, 오랜만에 많이 걸었다.


이제 저녁식사를 하러 가야 한다. 친구가 비응도에서 서해 낙조를 바라보면서 회를 즐길 수 있는 좋은 집을 예약해 두었다고 한다.  비응도로 가는 길에 넓은 도로 오른쪽으로 공단지대가 보인다. 그 가운데 아주 높은 굴뚝이 우뚝 선 공장이 보이는데, 바로 친구의 회사로서 종사자가 450명 정도에 매출액이 2천억 원 이상 된다고 한다.

횟집은 바닷가에 있는 새로 지은듯한 큰 건물에 있다. 바로 옆에 검은 모래의 작은 사장이 있고, 그 옆 산 위로는 잔도가 놓여져 비응도 등대까지 연결되어 있다. 시간이 조금 일러 잔도를 걷기로 했다. 바닷가 모래밭을 지나 잔도에 오르니, 길이 상당히 넓고 걷기 편하게 되어있다. 해는 어느덧 수평선 위로 가까워지고 있다. 등대까지는 거리가 제법 되지만, 워낙 걷기 쉬운 길이라 금방이다. 등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낙조가 시작된다. 동해 일출도 좋지만 서해 낙조는 그 이상이다. 일출은 햇빛이 강해 눈을 찡그려야 하지만, 낙조는 편하게 바라볼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낙조를 바라보면 뭐라 말할 수 없는 특별한 감정이 생긴다.


낙조를 감상한 후 횟집으로 올라갔다. 창문가 자리에 앉아 여명이 남아있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맛있는 회에 술을 곁들인다. 음식이 아주 좋다. 최근 몇 년 사이 속초, 강릉 등 동해안 일대 횟집에 여러 번 간 적이 있는데, 갈 때마다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값은 서울에 비해 거의 2배는 되는 것 같은데 음식의 양이나 질, 그리고 서비스는 너무 형편없었다. 그런데 여긴 달랐다. 회는 물론 나오는 요리 하나하나가 푸짐한 데다 깔끔하고 맛있었다. 가격은 친구가 신경도 쓰지 말라고 해 얼만지는 모르겠지만.


술잔을 나누며 떠들다 보니 어느덧 가야 할 시간이다. 두 친구가 우리를 익산역까지 데려다준다. 그리고는 선물이라면서 군산 명물 이성당 단팥빵을 한 상자씩 앵긴다. 오늘 우리는 입과 발만 가지고 군산을 찾아가 잘 놀고, 잘 쉬고, 잘 먹고 가족에게 줄 선물까지 챙겨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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