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형 Jan 14. 2024

영화: JFK

케네디 대통령 암살 의혹을 조사하는 지방 검찰관

■ 개요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 달라스에서 암살된 지 이제 6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사건은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은 것 같다. 미국 FBI와 법원은 암살범인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오스왈드의 살해, 그리고 사건과 관련해 의혹을 받은 인물들의 연이은 죽음, 그리고 범행 증거들의 모순 등 수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어 지금까지도 이 사건은 다른 흑막이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 <JFK>는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에 거대한 음모와 배후가 있다고 믿고 있는 지방 검사 짐 개리슨(케빈 코스트너 분)이 암살사건에 대해 집념을 갖고 수사하며, 재판정에서 싸우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제64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촬영상과 편집상을 수상하였다. 케네디 암살사건과 관련하여서는 주로 오스왈드, CIA, 마피아 등과 거물 정치인들이 케네디 암살의 범인 혹은 배후라는 설이 떠돌아다니지만, 이 영화는 독자적인 설에 근거를 두고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이 독자설의 재료가 되는 배지먼 설은 이미 1980년대에 주장되었지만, 이 영화로 인해 대대적으로 알려졌다. 


■ 줄거리 


1960년 11월 존 에프 케네디 상원의원은 치열한 격전 끝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경쟁 상대인 닉슨과의 표 차이는 불과 10만 표라는 초접전이었다. 그렇지만 젊은 대통령 케네디는 아름답고 우아한 아내 재클린과 함께 1960대의 자유의 상징으로서 큰 변혁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 시대에는 “인간은 평등하다.”라고 킹 목사나 말콤 X가 부르짖고 있었고, 이에 따라 미국 도처에서 민권운동이 일어나 각지에서 충돌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케네디는 “몸과 마음 모두를 바쳐 세계 평화에 온 힘을 다하겠다.”라며 미국 시민과 세계를 향해 호소하고 있었다. 

케네디가 취임하자마자 연이어 위기가 발생하였다. 쿠바 혁명이 성공하자 미국 군부와 CIA는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공작에 나섰으며, 소련은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 하고 있었다. 이러한 난제가 연이어 발생하는 속에서 케네디는 이러한 위기들을 하나씩 겨우 수습해 나가고 있었다. 


1963년 11월 22일 낮 12시 30분,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려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미국의 35대 대통령인 케네디가 카 퍼레이드 도중 암살당한 것이었다. 케네디는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어 갔으나, 이미 숨은 끊어진 뒤였다. 암살 사건이 벌어진 지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오스왈드라는 인물이 암살범으로 체포되었다. 오스왈드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였지만, 댈러스 경찰 본부 주차장에서 호송되던 중 나이트클럽 주인 잭 루비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오스왈드는 열렬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카스트로 총리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암살에 사용된 총은 그의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그가 범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뉴올리언스 지방검사인 짐 개리슨(Jim Garrison)은 이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개리슨이 이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하면 할수록 사건에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결국 개리슨은 오스왈드는 미끼에 불과하며 진짜 암살범은 따로 있고, 암살범의 뒤에는 거대한 배후가 있다고 믿기 시작한다. 

개리슨은 처음부터 사건을 차근차근 수사해 나간다. 그렇지만 케네디 암살의 배후 미국의 정보기관, 군수산업, 마피아, 거물정치인 등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들이다. 그들은 언론과 권력을 앞세워 개리슨의 수사를 방해한다. 그리고 개리슨이 고전하면서도 새로운 증인이나 사건의 돌파구를 찾게 되면, 그 증인은 암살당하거나 제거되고, 새로운 증거는 사라진다. 개리슨의 수사팀에 대한 예산지원도 끊어지고, 수사를 중단하라는 압박이 각계로부터 들어온다. 이에 따라 개리슨은 사비를 들여 수사를 계속하려고 하지만, 팀원 가운데 몇몇은 이탈하고 만다. 


개리슨은 결국 전직 CIA 간부인 클레이 쇼를 케네디 암살의 배후의 한 사람으로 기소한다. 그러나 클레이 쇼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다. 개리슨은 CIA를 포함하여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거물정치인들이 모두 케네디 암살의 배후라고 믿었지만, 결국 그의 주장은 재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고 난 뒤, 동남아시아에서는 5만 8천 명의 미국인, 200만 명의 아시아인들이 죽었으며, 2,200억 달러의 전비가 소요되었고, 민간기에 의한 투하 병력이 1,000만 인, 투하폭탄 650만 톤에 이르렀다. 1976-79년 미국 의회의 조사에서 음모의 가능성이 발견되었지만, 법무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암살사건의 자료는 2029년까지 공개가 금지되고 있다.  

  


■ 약간의 감상


이 영화를 감상하면 케네디의 암살에는 정말 무시무시한 배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사실 암살사건의 처리과정을 보면 너무나 많은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 케네디 대통령은 과연 어떻게 암살당하였을까? 그 진실은 무엇일까?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지금까지의 공식 발표가 진실일 수도 있고, 이 영화를 비롯한 각계에서 제기되는 의혹이 진실일 수도 있다. 6년 뒤 암살 관련 자료가 모두 공개되면 진실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케네디 대통령은 너무나 미화되어 있는 것 같다. 그는 확실히 젊은 대통령으로서 미국민을 비롯한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렇지만 그가 추구하려고 하였던 정책이 정말 그가 말한 대로 세계평화를 위한 것이었고, 자유와 평등을 위한 것이었는지 단정하기 어렵다.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그의 짧은 집권기에도 쿠바 카스트로 정권전복 음모 등 미국의 “더러운 손”은 여전히 그의 승인 하에 자행되고 있었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문제는 그의 사생활이다. 아마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그처럼 여자관계가 문란했던 사람도 없을 것이다. 20년 전 클린튼 대통령이 여자관계로 곤욕을 치렀지만, 케네디에 비한다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케네디는 클린턴에 비해 아마 100배는 더 난잡하였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크림슨(진홍)의 해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